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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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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1장 2절에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라고 통곡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날 부모들의 통곡인 듯도 합니다. 오늘날 부모님을 공경하며 존귀하게 여기는 자식들이 몇이나 될까요? 자식들은 부모를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무시합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관심은 심한 간섭으로 여겨져 자식에게 힐난을 받습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님도 거역하고 멸시하는 시대에 하나님께 대해서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오늘날 교회에 청년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디모데후서에서는 말세에 사람들이 부모를 거역한다고 했습니다. 대체로 자식들 가운데 많이 가르쳐 높은 학식과 좋은 직장을 가진 자식이 더 부모를 멸시하고 거역하는 일이 많습니다. 옛말에 ‘못난 자식이 효도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가 부모자녀관계입니다.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이 어머니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엄마”이고, 어렸을 때 넘어져 무릎을 다쳤을 때에도 “엄마”를 부르며 웁니다. 친정집에 들어서는 다 큰 딸은 미처 문을 열기도 전에 “엄마”하고 부릅니다. 장성한 아들이 오랜만에 집에 와서 “엄마”하며 현관에 들어섭니다. “엄마”와 “어머니”는 얼마나 아름답고 따뜻한 말입니까? 어머니가 없는 집안은 싸늘합니다.

 

  대체적으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번듯하게 성장하지만 홀아버지 밑에서는 아이들이 잘 성장하지 못한 예가 많습니다. 그래서 ‘모성애가 강하다’라는 말은 흔히 쓰이지만 ‘강한 부성애’라는 말은 희귀한 모양입니다.

 

  오늘은 모성애의 힘에 대하여 글을 씁니다.

 

  첫째, 모성애 속에는 창조의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뱀 가운데 독이 강하다는 살모사의 탄생을 보면 모성애가 얼마나 강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살모사는 다른 뱀과는 달리 몸속에서 새끼를 기릅니다. 새끼들은 어미의 몸을 먹으며 자라서 다 자라면 밖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새끼들이 태어난 후에 어미는 껍질만 남습니다. 그렇게 지독하게 생명을 얻은 것이라서 몸속에 강한 독을 지니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편에서는 독사라서 징그럽지만 그들의 편에서 보면 모성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하겠습니다.

 

    어머니들은 해산의 고통을 겪은 자들입니다. 해산의 고통에 대해서는 남자들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어머니들만이 알고 있습니다. 나는 첫 아이를 낳을 때 너무 고통스러워서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니까 그 고통의 느낌은 사라지고 형제가 없이 홀로 자라면 여러 가지로 좋지 않다는 세간의 말을 귀담아 듣고 네 살 터울로 둘째를 낳았습니다. 그러니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어리석다고도 하고 그 인내가 고귀하다고도 합니다.

 

  둘째, 모성애 속에는 인격을 길러내는 교육의 힘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은 일곱 살 때까지 어머니의 품안에서 자라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성장이 완성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려서 엄마의 품 맛을 모르고 자란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도 어른아이가 되는 모양입니다. 세상에는 덜 자란 어른아이들이 많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인격이 미숙하다는 말입니다. 어머니 품 속 교육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맞벌이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유아기에는 어머니의 젖을 빨지 못하고 우유병을 빨며 잠이 들고 돌이 지나면 아침 일찍 유아원에 맡겨졌다가 오후에 부모님이 퇴근할 때에 집에 와서 잠만 자고 다시 일어나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고 있습니다. 나도 직장생활을 한답시고 두 아이들을 품안에서 잘 양육하지 못했습니다. 모유도 충분히 먹이지 못했습니다. 특히 둘째 아이는 세 살 때부터 유치원에 맡겨 4년 동안이나 유치원을 다녔습니다. 나는 지금 그것을 후회하며 내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엄마들이 자기 아이를 너무 일찍 유치원에 다니게 하는 것을 나는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아이는 어머니가 기를 때 가장 안전하고 행복합니다.

 

  어느 집사님은 사십이 넘었는데 지금도 남편에게 폭언을 들으며 맞으며 삽니다. 주변 사람들이 왜 그런 사람과 사느냐 하면서 차라리 이혼을 하라고 권유합니다. 그러면 그 집사님은 말합니다.

 

  “남편은 어려서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러는 거예요. 만약 내가 그의 곁을 떠나버리면 그는 아마도 폐인이 될 것입니다. 내가 좀 참고 살아야지요. 그의 인생이 불쌍해서요.”

 

  그 남편은 어려서 비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욕심이 많고 편집적이었습니다. 남편에게도 폭언하고 폭행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늘 어머니 앞에서 쩔쩔 매며 살았습니다. 아들은 주눅이 든 아버지를 보며 자라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내는 늘 패서 꽉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대꾸라도 한 마디 할라치면 먼저 주먹이 올라가고 살림을 쳐부수곤 합니다. 그들의 삶을 보면서 어머니가 자상하고 따뜻하고 온화한 성품을 갖고 어린 자녀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머니>라는 말 속에는 따뜻함과 자상함과 사랑이 배어 있는 것 같습니다. 모질고 악하고 거친 것들은 어울리지 않지요. 모든 어머니들이 남편과 자식들에게 늘 자상하게 따뜻하게 온화하게 대한다면 아마도 가정이 평화로울 것이라 생각됩니다.

 

  셋째, 모성애 속에는 사랑의 힘이 들어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희생의 사랑입니다. 아기를 열 달 동안 몸속에서 기를 때의 인고는 아버지들은 모릅니다. 사람은 생겨날 때부터 엄마의 탯줄에 연결되어 어머니의 것을 먹고 살지요. 태어나서 일 년 동안은 엄마의 젖을 먹고 삽니다. 엄마의 가슴에 안겨 엄마의 심장 박동을 들으며 엄마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해 받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거의 어머니를 가장 많이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아기는 어머니가 키울 때 가장 정상적으로 키우게 되는 것입니다.

 

   교사생활을 할 때 담임하는 반에 여러 아이들이 조부모가정을 가진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가정에서 그다지 배고프게 사는 집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부모가정 아이들은 대부분 식탐이 많습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다 차지 않는 것처럼 점심시간에 음식을 탐합니다. 그것은 음식에 대한 기갈이 아니라 아마도 엄마의 사랑에 대한 결핍에서 온 사랑의 기갈이 아닌가 생각되곤 했습니다. 어려서 어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은 그의 삶에서 사랑결핍증이 반드시 나타납니다.

 

  넷째, 모성애 속에는 인내의 힘이 들어 있습니다. 위대한 사람들의 배후에는 언제나 위대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모세의 배후에 요게벳이, 디모데의 배후에 유니게가, 사무엘의 배후에 한나가, 어거스틴의 배후에 모니카가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어머니의 자녀는 혹 젊어서 방황하다가도 반드시 가정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봐왔습니다. 기도는 곧 인내입니다. 모니카가 20년 동안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지요. 다른 사람은 포기할지라도 어머니는 자기 자녀에 대해 포기하지 않는 법입니다. 삼십대에 세 아이를 두고 남편이 죽은 어느 여자가 있습니다. 두 아이는 유치원생이고 막내는 젖먹이 아기였습니다.

 

    친정어머니와 형제들, 주변 사람들이 아이들을 시댁에 맡기고 인생의 새 출발을 하라고 성화를 댔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세 아이들을 희생시켜 자기 인생을 찾느니 차라리 자기 인생을 희생할지언정 아이들의 눈에서 눈물을 빼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혼자 세 아이들을 기르며 험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제는 오십대 중반이 되어 아이들은 잘 자랐습니다. 아이들은 고생하는 불쌍한 과부 어머니를 생각하며 다른 아이들보다 공부를 더 열심히 했습니다. 이제는 그 인내의 삶을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라는 격언도 있지 않습니까?

 

  결론을 맺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잠언 1장 8절에서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낳아준 부모의 훈계와 법을 청종하는 자는 어긋난 길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한 사회의 심장부가 가정이라면 가정의 심장부는 어머니의 품입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품안에서 사랑을 먹으며 자란 자식은 탈선하지 않습니다. 이 사회가 바르게 되려면 가정이 먼저 정상적인 부모가정이 되어서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 특히 어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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