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바다>
사람들은 바다를 좋아합니다. 넓은 바다. 푸른 바다. 탁 트인 바다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평온과 넉넉함으로 채워줍니다. 나도 바다를 좋아합니다. 특히 바다의 넉넉함이 좋습니다. 세상의 모든 오염된 물을 바다가 있어 정화시켜줍니다. 바다는 세상의 더러운 물을 더럽다고 거부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더럽힌 그 많은 물을 바다는 묵묵히 받아주고 깨끗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은 그 안에 소금이 있어 가능합니다.
세계 바다의 평균 염도는 3.5%정도라고 합니다. 물에 비해 소금의 양이 현저히 적지만 그러나 그 소금은 전 세계의 물을 정화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해 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소금은 항상 소수입니다. 그러나 큰 역할을 합니다. 사람들이 잘못된 길을 갈 때 우리는, 그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내가 3.5%의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 때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내가 소금이 되어 묵묵히 그들을 품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소금의 역할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나, 어떤 특정한 사람만 소금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소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때와 일이 있습니다. 그 때 그것을 회피하지 말고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가슴을 열고 세상의 허물을 품어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제일 중요합니다. 소금이 되는 사람들 말입니다. 소금이 제 역할을 하면 나머지는 해결됩니다. 세상은 항상 소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문제가 됩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있습니까? 그러지 마십시오. 잘못된 일이 우리 눈에 보이면, 그 때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비난이 아니라, 그 문제에 내가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변화됩니다. 세상은 바다처럼 시원케 됩니다. 특별히 교회가 소금이 없어 넉넉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교회에는 소금이 많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들어와도, 품어 주는 넉넉함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언제, 어떤 일에 소금이 되고 있습니까?
<이상한 교회>
어느 사람이 한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그 교회는 자그마한 동산 언덕위에 세워진 참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에 들어가니 사람들은 참 교양이 있어 보였고, 세련된 옷을 입었으며 친절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찬양단의 찬양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들보다 더 잘하는 것 같았습니다. 성가대의 하모니도 천상의 하모니를 이루었습니다. 더 이상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그런 교회. 완벽이라는 단어는 이런 때 쓰는 단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교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이겠는지요?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못난 사람들이 있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입니다. 못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교회의 사람들이 그 못난 사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못난 사람도 그 곳에서 자기 자신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사귐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좋은 교회는 모든 사람들이 교양 있게 행동하는 곳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도 어우러져서 함께 하는 교회입니다. 전에는 교회에서 부족한 사람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때문에 조마조마했습니다. 누군가 상처받을까 걱정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제는 조금씩 안심이 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부족한 사람의 말을 이제는 성도들이 조금은 용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리 교회가 허물이 없고, 이상한 사람이 없는 교회가 아니라 허물과 이상한 사람을 진실한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 넉넉한 마음을 가진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8%의 소금을 가지고 있기에 바다가 세상의 모든 오물을 다 받아들이고 다 정화시키는 것처럼 우리 교회도 소수의 넉넉한 사람들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왔을 때 처음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 것 때문에 놀라고, 그러나 더욱더 놀라는 것은 그런 이상한 사람들을 넉넉히 받아주는 사람들의 사랑과 배려의 마음 때문에 놀라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허물 있는 사람이 없는 교회가 아니라 허물 있는 사람을 안아주고 치유할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사랑 교회>
어떤 사람이 지방으로 전출을 간 후 교회를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고민 하였습니다. 다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느 교회를 가든 괜찮습니다. 그러나 어느 곳이든 교회는 하루를 다니더라도 바로 그 교회에서 내 몸과 마음과 뼈를 묻을 각오를 하고 다녀야 합니다” 현대는 이동이 많습니다. 그래서 1년도 다니지 못하고 교회를 옮길 수 있습니다. 또 직종에 따라서는 매주 주일을 지키지 못하고 격주로 지켜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구경꾼이 되기 쉽습니다. 구경꾼이 되어 교회를 중하게 여기지 못하고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가 함께 한 몸을 이루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교회를 예수님의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섬겨야 합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세상에 많고 많은 것이 교회요, 별볼 일 없는 것이 교회일 수 있습니다. 직장과 사회 단체와 친목단체에도 밀리는 것이 교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직접적으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유일한 기관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땅에 번성해야 합니다. 교회가 죽으면 복음도 죽습니다. 우리 모두는 교회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헌신해야만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여 섬겨야 합니다.
혹 하루 후에 교회를 옮기더라도 그 하루를 지금 그 교회에서 헌신하며 섬겨야 합니다. 그 하루를 그 교회에서 나의 영혼과 몸과 뼈를 묻을 각오로 열심히 사랑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이 땅의 교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주님이 그 분의 피값으로 교회를 사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교회를 그렇게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를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를 위해 인내하며 사랑해야 합니다.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교회에서 헌신하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믿음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믿음의 빛을 진 사람입니다. 빚진 사람이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빚을 갚아야지요.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열심히 사랑하십시오. 오늘 교회에서 우리의 뼈를 묻을 각오로 사랑하며 섬기십시오.
<영적 병원 같은 교회>
세상의 병원에 가보면 온통 아픈 사람들 밖에 없습니다. 팔이 부러진 사람, 발이 부러진 사람, 간이 상한 사람 등 그들의 병명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아픈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병원은 당연히 아파서 온 곳이기 때문입니다. 병원에서는 그 아픈 곳을 드러내놓고 치료하는 곳입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자기가 아픈 곳을 숨기고 있다면 그것은 가장 어리석은 환자일 것입니다. 병원은 아픈 곳을 드러내놓고 치료받고 치료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영적인 병원과 같은 곳입니다. 사람들 안에 아픈 곳 곧 죄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 모습들이 교회에 와서 치료받아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드러내놓지 못하고, 세상에서는 깨닫지 못했던 죄를 교회에서 드려내 놓고 깨달으며 자신의 죄를 치료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새 교회가 병원의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죄 없는 거룩한 사람들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교회는 죄를 치료하는 곳이지 죄 없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죄를 지적하자 죄가 치료된 것이 아니라 숨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제 교회는 죄 없는 사람들의 모임인 것처럼 보입니다. 자신의 죄를 드러내놓는 것을 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죄를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허물이 있으면 그 사람은 숨으려하고, 사람들은 허물이 있는 사람을 보면 정죄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서로 적당한 선을 지키며 서로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100M 의인이 되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의인인데 가까이서 보면 죄 투성이 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더 이상 죄를 치료하지 못하고 죄에 굴복당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죄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 죄가 드러나야 합니다. 그런데 죄를 드러내기 위한 전제는 용납입니다. 죄가 자랑하지 않는 한 우리는 죄를 용납해야 합니다. 그래야 치료라는 다음단계로 넘어 갈 수 있습니다. 교회는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받아들이고 사랑으로 치료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용납해주고 감싸고 있으면 치유는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교회는 사랑하면 됩니다. 그러면 주님이 치료해주십니다. 교회에서 자신의 죄가 드러나도 사람들이 사랑으로 용납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수치스러운)죄를 걱정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드러내놓고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받으면 그 사람은 치유가 될 것입니다. 사랑은 가장 강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까? 아니면 교회입니까? 교회의 구성원이 되지 못하고 단지 교회에 다니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다니는 곳이 아니라 교회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다니기만 하는 사람들도 믿음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자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교회의 참된 유익을 얻지 못하고 단지 예배드리는 정도에서 그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회를 주신 것은 단지 예배드리는 곳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배드리는 곳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가정이 잠자는 곳은 맞습니다. 그러나 잠자는 곳이기만 하면 그것은 가정이 아닙니다. 그것처럼 교회가 예배드리는 곳이기는 하지만 예배만 드리는 곳이라면 그곳은 교회가 아닐 수 있습니다. 교회는 성도의 교통이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무기체가 아니라 유기체이어야 합니다. 예배드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의 짐을 지며, 슬픔과 기쁨을 나누는 곳이어야 합니다. 악한 세상을 이기는 유일한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교회이어야 합니다. 가정을 세우고, 우리의 삶을 사랑으로 채우며, 풍성하고 유익한 삶을 위해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 다니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마십시오. 교회는 하나님의 다양한 은헤와 풍성한 인도하심을 맛보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함께 느끼며 함께 사역하며 함께 웃고, 함께 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의 상한 마음을 치료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다니는 신앙에서 이제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십시오. 교회가 되어 교회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몸으로 느끼는 신앙이 되십시오. 교회를 통해 임하시는 하나님을 보며 교회에서 꿈을 보십시오. 교회안에서 비젼을 보며, 교회안에서 나의 역할을 깨닫고 사랑하며 섬기는 사람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