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선교사,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지병을 앓다 세상을 떠난 선교사 데이비드 브레이너드(1718-1746)의 삶을 영광보다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는 여덟 살 되던 해 아버지를 여의고, 얼마 후에는 어머니마저 하늘나라로 보내야만 하였다. 그의 신학교 입학 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이를테면 결핵에 걸려 심하게 고통당한 것-결국에는 요절에 이르게 된-이라든지 대각성 운동(Great Awakening)에 대한 학교 측과의 견해 차이로 인해 퇴학을 당한 일 등은 그에게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그의 일기 곳곳에서 발견되는 우울한 측면과 이들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아로새겨진, 그 누구도 앗아갈 수 없고 변개할 수도 없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사랑의 법이 이 두려움을 언제나 넉넉히 내쫓았다는 것을 그의 선교 사역과 글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는 1738년 7월 12일, 다메섹 도상의 바울처럼, 이루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한 후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기로 결심하였다. 비록 짧은 생애였지만, 수많은 인디언들이 브레이너드를 통해 그리스도를 영접하였고 조나단 에드워즈나 존 웨슬리 같은 동시대 인물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명자들의 그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고난을 통해 그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에 전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어둠 가운데 그가 만난 하나님의 광명한 빛으로 인해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받을 수 있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었으나 외려 브레니어드는 진정한 자녀의 길로 이끌려졌고, 질병으로 고통받았기에 더욱 하나님만의지할 수 있었으며, 퇴학을 당해 목사가 될 수 없었으나 이 때문에 그는 인디언 선교사의 길로 갈 수 있었다.
브레이너드 선교사는 이 모든 고난을 고난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가 극도의 고통 가운데 죽기 직전 남긴 다음의 기록만을 보아도 그렇다. “나는 당신(그를 간호해 주던 조나단 에드워즈의 딸 예루사)과 함께 지내고 싶습니다. 나는 훌륭한 친구들과 나의 사랑하는 동생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그들을 사랑하거든요. 그러나 나는 그들을 하나님께 모두 맡겼어요. 그러므로 그들을 이곳에 두고 하나님께 갈 수 있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이 세상의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로 인해 그는 필연적으로 고난을 겪었다. 하지만 그가 당한 세상에서의 고난은 세계에 대한 방기가 아니라 적극적인 사랑, 영혼 구원으로 연결되었고, 이와같은 성령의 사역은 이 세상의 모든 영역을 새롭게 하는 데까지 이르게 하였다. 심지어 그는 프린스턴 대학과 다트머스 대학의 설립에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
그가 짧은 생애 동안 한 일은 지극히 작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브레이너드는 때로는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깊은 슬픔 가운데 빠지기도 하고, “고난받는 종”처럼 병을 달고 다녔던 사람이다. 그는 당시 법으로 인해, 퇴학을 당한 후 오랫동안 안수를 받지 못했던 사람이며, 심한 경제적 어려움과 외로움도 겪어야 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윤동주 시인이 그의 시 “팔복”을 통해 노래한 것처럼, 영원히 슬퍼했던 사람이었다. 브레이너드는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참으로 무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며, 징계를 받고 근심하는 자였다. 그러나 실상은 유명한 자요, 징계를 당하지 않으며, 항상 기뻐하고,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한 자였다(고후 6장 9-10절). 그래서일까?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행복했던 선교사, 데이비드 브레이너드가 이 시대에 몹시 그리워진다.
글 : 목회자 진하규
/아름다운 이야기 회지
[출처] 선교사 열전 / 행복한 선교사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작성자 하나님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