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 년 사이 '작은 교회 운동'이 가시화하고 있습니다. 단지 규모가 작은 게 아니라, 교회의 참모습을 구현하려 노력하는 교회들이 연대해 운동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뉴스앤조이>가 이런 작은 교회 운동을 취재했습니다. 각각의 교회를 소개하는 것이 아닌, 목회자의 입장에서, 교인의 입장에서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다섯 개의 기사를 연재할 계획입니다. 첫 번째로, 작은 교회 운동의 현장에 있는 김종일 목사가 작은 교회 운동의 배경을 이야기합니다. - 편집자 주 |
한국의 개신교 역사에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2년 남짓 남겨 두고, 작은 교회들이 생존의 몸부림을 넘어 대안적 교회 운동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대형 교회와 대형 교회를 꿈꾸는 작은 교회뿐이라는 자조적·자학적 도식을 깨뜨려 버리고 상상력과 창의력 그리고 자존감으로 충만한 작은 교회 개척자들이 조용하게 그러나 무시 못 할 그룹으로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또 하나 고무적인 것은 이런 작은 교회들이 개체화·고립화의 어리석음을 벗어나 연대와 협력 그리고 에큐메니컬적인 일체의 시도들을 겁 없이 저지르고 있다. 그야말로 한국교회 안에 신선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있는 것이다.
▲ 김종일 목사. ⓒ뉴스앤조이 이용필 |
이 작은 몸부림의 역사를 확인하기 위해 2007년이라는 멀지 않은 과거로 돌아가 보자. 2007년은 우리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보수 개신교단들은 기득권 세력과 함께 정부에 대해 비판자적 진영을 이루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의 국가보안법 철폐, 사학법 개정 등의 개혁 입법들은 사탄의 계략이며 반기독교적 정책으로 여겨져 극한 대치를 이루었다. 개혁적 정책에 대한 기독교의 반대 움직임이 커질수록 언론과 국민 정서 안에는 '안티 기독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과 많은 비그리스도인 사이에서 '개독교'라는 신조어가 나온 것도 이때부터이다.
한국교회는 세습과 대형화, 권력화에 목숨을 걸었다. 시대의 변화보다, 개혁 교회 본연의 변혁 지향적 DNA보다, 선교사들이 주고 간 부동산과 법인들 그리고 교회라고 '함부로 불리는' 저 시멘트 덩어리와 그 속의 사람들을 놓치기 싫어서였다. 그러는 동안 한반도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2007년, 한국교회는 '평양 대부흥 100년'을 선포하며 한껏 들떠 있었다. 줄줄이 열린 수많은 행사와 기념식 그리고 대부흥의 재현 열망은, 교계에서는 '신사도운동'이라는 영성 이벤트로 표현되었다. 정치적으로는 한국의 보수층과 똘똘 뭉쳐 '장로 대통령'을 뽑아 버리는 기염을 토해 내었다. 교회가 서울시 봉헌을 넘어선 대한민국을 통째로 신정국가로 만드는 울트라 슈퍼 파워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낌없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대선 운동에 버금가는 명설교가(?)들의 지원 메시지와 장로 대통령을 뽑아야 이 땅의 종북 좌파들이 박멸되고 경제 대통령을 뽑아야 선교도 더 잘할 수 있다는 최첨단 번영신학의 어젠다가 한국교회를 지배했다.
정교분리를 도그마처럼 외치면서, 선거철만 되면 청와대에서 찬송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앞뒤 안 맞는 논리가 교회에서는 여전히 먹혀 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2008년 정권 교체와 함께 한 대형 교회의 이름이 들어있는 '고.소.영'이라는 냉소적 유행어를 듣게 된다.
바로 그 같은 시간에 한국교회 안에서는 아주 작은, 그러나 의미 있는 움직임들이 시작되고 있었다. 대형 교회의 한계를 경험한 젊은 목회자들, 교회 개혁 운동에 헌신한 복음주의자들, 여전히 교회 개척이라는 미친 짓(?)에 도전하는 소수의 사역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작은 교회들을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안적 교회 운동을 해 보겠다는 소수의 무리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역사라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삶을 구현해 내기 마련이다.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 진리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과정을 밟게 되는 것이다. 정부의 경제·통일·환경 정책들이 전부 실패하고 국가 부채와 가계 부채는 나날이 쌓여서 젊은이들에게 '포기'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게 만드는 동안, 한국교회는 세습과 대형 예배당 건설, 대형 교회 목회자의 윤리적 파탄·비리 등으로 급속한 내리막길을 가게 되었고 지금도 그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치닫고 있다.
그 속에서 작은 교회를 시작한 목회자·사역자·운동가들은 각자의 목양지에서, 실패한 정부 정책의 파편에 맞아 피 흘리는 성도들을 보게 되고, 대형 교회에 염증이 나서 스스로 '가나안 성도'가 되어 떠다니는 영적 방랑자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작은 교회의 사역자들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거짓 약속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를 목격할 수 있었다. 성경보다 목사의 말을 더 절대시하는 '목사교', 하나님의 나라보다 교회에 매여 있는 자들을 충성된 자라고 속이는 '교회교'에 속아 고통받는 자들을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제 내가 섬기는 이 작은 교회를 속히 대형 교회로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 이 작은 공동체가 미완성의 미자립 교회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한 영혼을 품고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는 하나님의 공동체로 존재할 수 있음을 보게 된 것이다.
작은 교회의 흐름은 그래서 정권과 이 나라의 권세자들이 무시하는 작은 자들에게 귀를 기울인다. 용산참사의 현장을 지켜 주고, 4대강의 녹차라떼를 사진 찍어 알리고, 세월호 가족들과 뜻을 함께하며 금식하고 목소리를 모아 준다.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광화문에 천막카페를 지어 찾는 이들을 위로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일을 한다. 박람회를 열어 작은 교회를 알리고 모금을 하여 정신대 문제를 환기시키고 할머니들을 위해 함께 기도한다.
여기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고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컬이라는 구분이 무의미하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이 세상에서 함께 그분의 뒤를 따르며 그분의 영이 하시는 일을 목도하며 그리스도의 왕 되심을 선포하는 일이 바로 교회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생명의 소생이 있고 평화의 울림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 대형 교회를 목표하고 교회 성장이 모든 한국교회의 지상 과제가 되는 동안 이 세상은 딱 그만큼 어두워지고 타락하고 또 교회를 멀리해 왔다. 예수께서 그토록 공생애 동안 가르치시고 심지어 부활하신 후에도 남은 40여 일을 오로지 하나님의 나라만을 강조하셨건만,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이 던진 마지막 질문은 이스라엘의 회복이었다. 하나님나라 선포자로 부름받은 기억은 도통 없고, 이제 하늘로 올라가실 주님께 묻는다는 게 로마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이었다. 입으로는 천국이니 선교니 하면서 맨날 미국 눈치 보고 미국에 잘 보여야 안전하다는 소위 '말씀의 종'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성령이 계시지 않은 증거다. 쓰러지고 웃고 토하고 증상은 대단한데 결국은 번영만이 바람인 것이다.
작은 교회 운동을 대형 교회 비판하며 반사이익이나 바라는 것이라 폄하하지 말라. 강남의 문제 터진 교회 한편에서 초대받아 가서 설교했더니 바로 날아든 문자가 이런 내용이다. '작은 교회 운운하면서 대형 교회 기웃거리는 웃기는 목사'. 뭐 어떻게 보든 상관없다. 전방위 선교라는 말이 있다. 선교에 전방 후방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지역·영역·세대를 초월한 선교의 시대라는 거다. 전방위 목회의 시대 역시 왔다는 느낌이다. 내 교회, 네 교회 따질 때가 아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은 하나의 보편적 교회가 아닌가?
청년 실업, 삼포를 넘어 칠포세대, 세계 최고의 자살률, 동북아의 여전한 핵 위기, 죽음을 넘어 부활로 가지 못하고 있는 세월호 사건, 급감하는 개신교 신도 수…. 경고등은 이미 켜졌고 대형 교회는 자신들의 문제도 해결하기 버거워하고 있다. 교단? 총회? 가스총이 나오고 지금도 돈 봉투 타령이다. 교회마다 교단마다 사람 많고 돈도 많고 힘도 많은데 자체의 문제는 전부 로펌과 서초동에다 읍소하는 지경이다. 세월호, 메르스, 터지고 터져서 이제 백성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말, "이게 정부인가?" 똑같이 교우들이 교회를 향해 묻고 있지 않는가? "이게 교회인가?"
교회가 건물에 관심을 갖게 될 때 진정한 교회 구성원인 영혼들은 피폐해져 간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보다 세상 권력에 의존하고 제국의 눈치나 보려고 하면 세상이 조롱한다. 교회가 하나님보다 맘몬의 힘을 따르려 할 때 교회의 권세는 한없이 추락한다. 작은 교회를 시작해 보라. 그리고 아무것도 없고 부족하고 모자라서 불편함을 경험해 보라. 놀라운 하나님의 상상력을 키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창의적인 공동체가 세워질 것이다. 세상을 향해 보냄받은 제자의 무리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아무것도 없어서 하나님만 바라게 되는 것이,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보다 훨씬 낫다. 지금 그렇게 작은 교회들을 시작하게 하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부디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김종일 / 동네작은교회 목사, 교회개척학교 숲 코치, 교회2.0목회자운동 실행위원, <뉴스앤조이>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