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나는 꼼수다'라는 팟캐스트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뉴스앤조이> 독자들도 한 번쯤은 들어 보셨을 텐데요. 이후 기독교계에서도 팟캐스트 방송이 하나둘 등장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유명 목사들의 설교 방송이 주를 이루긴 합니다만, 한국교회의 회복이라는 담론을 다루는 방송의 청취자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뉴스앤조이>는 유명 목사의 설교 방송이 아닌, 이런 팟캐스트에 주목했습니다. 기존의 방송 매체 대신 팟캐스트라는 대안 미디어를 택해 소통하는 기독교인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소개합니다. △ 목사들이 운영하는 팟캐스트 △ 팟캐스트를 듣고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모색하는 청취자들 이야기 △ '내가 복음이다' 양희삼 목사 인터뷰 등을 차례로 연재합니다. - 편집자 주 |
앞선 기사에서 새로운 이야기, 상식적인 이야기, 개혁적인 이야기를 풀어놓는 기독교 팟캐스트를 살펴보았다. 방송을 들으면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시원해진다. 내가 하지 못하는 얘기를 남이 대신 해 주는, 누군가 총대를 메고 해 주는 비판적인 메시지에 수백, 수천 명의 마니아층이 형성됐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한 번 소비되고 버려진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청취자들이 방송을 들으면서, 상식 이하의 교회·목사를 욕하고 '쯧쯧' 혀 한 번 찬 후 이어폰을 빼 버린다면 말이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서 사람들이 방송과 기사를 소비하듯, 기독교 팟캐스트도 그렇게 하나의 가십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단순히 '속 시원함'을 넘어 팟캐스트를 통해 신앙생활에 변화를 경험한 청취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전 기사에서 소개한 '내가 복음이다', '내가 목사다', '황 목사의 비밀 해제' 청취자들과 만나고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이들에게 팟캐스트는 진짜 신앙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었던 발판이었다.
상식을 말하는 팟캐스트, 비상식적인 신앙을 깨다
카타콤라디오 '내가 복음이다' 청취자 30대 허지영 씨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집 근처의 순복음교회를 다녔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목사님 말씀이 나라법보다 더 위에 있는 줄 알고 살던 사람이었다. 마음 한 편에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20년 가까이 순종해 온 목사님에게 토를 단 적은 없었다. 그는 평소 종교 이야기를 자주 나누던 가톨릭 신자인 지인의 권유로 '내가 복음이다'를 듣게 됐다.
"1화를 들었는데, 회개에 대한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 부분에서 확 꽂혔어요. 저희 교회 목사님은 '죄의 문제는 하나님과 해결하면 된다'고 했거든요. 그렇게 배우기는 했는데, 항상 마음에 찝찝한 구석이 있었어요. 그런데 방송에서는 죄를 지은 상대방과 나의 관계를 먼저 회복하고 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얘기하지 않는 이유는, 그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고 성도들도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라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들으니 답답한 구석이 확 풀렸어요."
방송을 계속 들으면서 허 씨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를 알게 됐고, 교회에서 교육받아 온 '기복신앙'이 기독교 신앙과 거리가 멀다는 것도 알게 됐다.
▲ 9월 초, 한창 공사중이던 '내가 복음이다' 스튜디오에서 청취자와 진행자들을 만났다. 세 사람은 팟캐스트를 듣게 된 계기, 방송하게 된 계기를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방송 내용에 공감하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반응을 보여 왔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
일산에 사는 '내가 목사다' 청취자 40대 박서현 씨도 방송을 들으며 시원함을 느꼈다. 그는 원래 대형 교회의 집사였다. 교회에서 갈등이 있던 건 아니었지만, 교회의 일방통행식 의사 결정 구조와 목사의 말에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방식에 '이건 좀 아니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왔다.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목사 중심으로 한 방향으로 밀고 가는 상황들에 대한 부담감이었어요. 교회가 무슨 결정을 내렸을 때 비판이나 반대를 하면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문화가 있어요. 그런 것을 팟캐스트가 지적해 주니 공감이 많이 됐죠. 방송이 저를 위로해 주는 느낌이었어요. 시원하고 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내가 복음이다'의 진행자 중 한 명인 신명환 전도사는 원래 청취자였다. 그도 팟캐스트를 듣고 '외로움'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신 전도사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신학대를 가고, 전도사 생활을 시작한 '전형적'인 크리스천이다. 그는 강남금식기도원에서 음향 엔지니어를 하면서 신학적인 고민에 빠졌다.
"1년이면 5,000명이 설교하러 와요. 대부분 기복신앙, 반공 얘기 등을 주로 하죠. 그 사람들 설교를 들으면서 '저건 잘못된 얘긴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어요. 뭐가 맞는 걸까 생각하면서 성경 공부도 더 열심히 해 봤어요. 뭐가 맞는 말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감은 왔는데, 그래도 외롭더라고요. 누구와 함께 '이런 건 잘못됐다, 옳지 않다' 얘기할 사람이 없었으니까요.그러던 차에 방송을 듣게 됐어요. 어느 날 아내가 '여보, 평상시 당신이 하던 얘기를 하는 방송이 나왔어'라는 거예요. 1~2화 두 편을 들었는데, 딱 감이 왔어요. 정말 나만 그런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저랑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방송 두 편 듣고 무작정 만나 보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어요."
이런 피드백은 무수히 많다. '내가 복음이다' 제작자 김지명 PD는 "제일 많이 들어오는 피드백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같은 생각을 하는 방송이 있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 '내가 목사다'의 초창기 방송 리스트. 호기심 가는 직설적 제목과 방송 내용에 많은 사람들이 호응했다. '내가 목사다'는 지난해 팟빵에서 종교 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팟빵 내가 목사다 갈무리) |
새로운 신앙생활로, 새로운 공동체로
단지 10년 묵은 체증이 넘어가는 것 같은 느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런 팟캐스트는 청취자들의 신앙생활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교회에서 조용하게 생활하던 사람도, 교회가 싫어 떠났던 사람도 신앙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착실한 순복음교회 신자였던 허지영 씨에게 찾아온 변화는 컸다. 청취자들과 모여 얘기하면서 다른 교회, 다른 형태의 신앙생활도 알게 됐다. 교회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됐다. 이전까지 화요 찬양 집회 외에는 다른 예배를 가본 적도 없는 허 씨였다. 그는 이제 청취자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예배에 참석한다. 방송을 듣고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상태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했다.
"그전까지 다른 교회들은 하나도 몰랐어요. 들을 데가 없었으니까요. 방송 들으면서 충격을 받은 부분도 많고,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게 있을 수도 있구나 싶었죠. 그러면서 나쁜 교회, 좋은 교회 다 알게 되고, 권위적인 목사의 모습만이 다는 아니다라는 것도 알게 됐고요. '나는 나와 관련된 일만 알면 된다'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죠."
팟캐스트는 교회를 떠난 '가나안 성도'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댈러스에서 '황 목사의 비밀 해제'를 방송하고 있는 황순기 목사는 <뉴스앤조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메일 등으로 오는 피드백들을 보면 청취자 중에 교회에 실망하고 떠난 사람들이 많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어느새 방송이 가나안 성도들의 공동체가 된 느낌이다."
가나안 교인들은 방송을 제작하는 목사들의 교회로 직접 찾아오기도 한다. '내가 복음이다'에서 파생한 내복단교회를 찾아온 사람만 약 2년 반 동안 100여 명이다. '내가 목사다'를 방송하는 김종현 목사의 더채플커뮤니티교회를 다녀간 사람도 20명이 넘는다.
박서현 씨는 평소 가나안 교인들과 함께하는 공동체를 구상하고 있었다. 팟캐스트는 이를 실현하는 기폭제가 됐다고 했다.
"원래는 '징검다리 예배 처소'라는 걸 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어쩔 수 없이 가나안 교인이 된 사람들이 같이 모여 예배하고, 서로 목사님 설교 추천해서 들어 보는 모임이에요. 지역 교회 정보를 공유해서 지역 교회들도 긴장시키고, 좋은 교회가 있으면 그쪽 지역 교인을 연결해 주기도 하는 것들을 구상하고 있었어요."
박 씨는 구상했던 공동체를 김종현 목사와 함께 시작했다. 그는 '더채플커뮤니티 일산'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에서 5~10명의 가나안 교인들과 함께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이제 막 시작했다. 그가 바라는 교회 상(像)은 무엇일까.
"아무 흠이 없는 '완전한 교회'를 만들지는 못하겠죠. 그래도 서로 팟캐스트 들으면서 공감하는 부분들이 있으니까 잘 살리려고 해요. 이전에도 기존 교회 교인들에게 제직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는 얘기는 많이 했어요. 그런 부분들을 일산 공동체에 잘 반영해서, 평균 점수는 넘는 교회를 만들려고 해요. 교인들과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함께 의논하고 고민하면서 민주적인 방식으로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내가 목사다' 청취자들의 경우, 일산뿐 아니라 분당·죽전·청주·평택 등 전국 각지에서 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 시작 단계라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두 명만 모여도 모임을 진행할 생각이다.
'황 목사의 비밀 해제' 황순기 목사도 얼마 전 '작은자교회'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교회를 시작했다. 서울을 비롯해 창원·부산 등 지방에서도 모임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 방송을 들은 교인들의 피드백은 단순히 '소비'를 넘어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찾는 데까지 이른다. '황 목사의 비밀 해제'나 '내가 목사다'의 운영자들 모두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모색하고 있다. (팟빵 황 목사의 비밀 해제 댓글 갈무리) |
팟캐스트를 들은 교인들이 새로운 신앙생활에 눈을 뜨게 되거나, 기성 교회를 벗어나 새로운 공동체를 꿈꿨다. 또 다른 청취자인 목사·전도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교인들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이해한다는 것이다. 서울 강북 지역의 한 20대 전도사는 교인들이 어떤 것을 원하고 속 시원해하는지 팟캐스트를 꾸준히 들으며 알게 됐다고 말했다.
"교회 내에서는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분위기도 있고 해서, 사실 교인들의 불만을 감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바깥에서는 교회의 어떤 부분이 잘못됐다고 말이 많이 나오는데, 정작 내부에서는 말이 없으니 교회 지도자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방송을 들으면서 교인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반성도 하게 됩니다. 솔직히 신학교 다닐 때부터 사회나 교회에 대한 특별한 생각 없이, 그냥 관습대로 하니까 실력 없이 권위로만 목회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목회자들이 교인들 수준이 많이 높다는 걸 깨닫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