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전 종교개혁의 출발점이 됐던 마르틴 루터는 성직자일 뿐 아니라 당시 비텐베르크 대학의 신학부 교수였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주창하면서 일평생 가톨릭 신학자들과 치열한 논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쳤던 교육자였기 때문이다. 신학교육은 루터에게 있어 종교개혁을 실험하고 실천하는 현장이었다.
루터가 신학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후배이자 동역자였던 필립 멜란히톤을 신학부로 데려오기 위해 무척이나 애쓴 데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방면에 유능했던 멜란히톤을 신학부로 영입하기 위해 당시 작센의 프리드리히 3세를 동원하기까지 했다.
멜란히톤이 신학부로 진출하지는 않았지만, 루터와 멜란히톤은 신학과 신앙적 실천을 융합하는 데 힘을 모았고 상당한 성과와 발전을 이뤄냈다.
루터는 당시 신학교육이 스콜라주의 철학에 근간을 두고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논쟁을 벌일 때 ‘오직 성경’을 주창했다. 루터와 종교개혁가들에게 신학교육 개혁은 핵심가치이면서, 이후 유럽에서 빠르게 종교개혁이 확산되어 신학 개혁의 전통도 계승되게 만들었다.
신학교육 질적 하락, 구조개혁부터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 유럽의 신학교육은 질적 저하가 상당했다. 학위 없이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성직자가 될 수 있었고, 신학교육의 수준도 높지 않았고 형식적이었다. 심지어 ‘천사가 바늘 끝에 몇 명이나 올라갈 수 있나’를 논쟁할 정도로 소모적이었다고 한다.
루터가 ‘오직 성경’을 강조하면서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길 수 있었기 때문에 개신교 신학교육의 발전이 이뤄질 수 있었다.
종교개혁 시기와 마찬가지로 한국교회 안에서도 신학교육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루터대학교 말테 리노 교수는 “공부를 못하는 학생도 돈만 있으면 신학대학교를 다닐 수 있고, 최하 수준의 학생들에게 교수들이 F학점을 주지 않는다. 25년을 한국에서 살면서 본 신학교육 질적 수준은 심각한 문제이며, 이는 3년 동안만 신학공부를 하는 것도 이유가 된다”고 뼈아프게 지적했다.
결국 한국교회 신학교육의 문제는 교회 내 만연한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나 신학교육을 받고 졸업해서 목회자가 될 수 있는 구조적 한계는 종교개혁이 필요했던 당대와 다를 바가 없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장신대 양금희 교수는 “루터의 비텐베르크 신학부는 스콜라주의나 철학이 아니라 성경을 바탕으로 개신교 교의학을 발전시켰고,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신학교육에서 지속될 수 있었다”며 “루터와 함께 바뀐 비텐베르크 신학교육의 패러다임이 오늘의 신학교육을 바꾸는 데 길라잡이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신학교육 개혁을 위해서는 우선 신학교의 구조개혁을 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국내 신학교육 기관이 400여 곳에 달하는 실태에서 신학교 구조개혁은 피해갈 수 없는 주제이다.
예장 통합총회가 교단 산하 신학교들을 하나로 엮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정원감축을 시도하는 것도, 예장 대신총회가 무자격 지방 신학교들을 정리하고자 노력하는 것도 신학교육 구조개혁의 필요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부가 집계하고 있는 신입생 입학 통계에서 국내 유수의 교단 신대원들이 큰폭의 경쟁률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미달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결국 학교 운영을 위해 신학교들은 자질이 부족한 학생들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고, 종교개혁의 정신과 다른 길을 가는 사역자들이 양산되고 마는 것이다. 결국 신학교 구조개혁은 신학교만의 노력으로는 불가하며, 신학교의 책임으로 전가할 일이 아니다. 소속 교단의 노력과 교회의 관심이 모일 때 가능하다.
향상교회 정주채 원로목사는 “자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을 길러낸다면 교회를 타락시키는 부작용만 더 커질 수 있다”며 “목사안수를 받아도 부임할 교회가 없는 세태 속에서 신대원 졸업생만 배출할 것이 아니라 질 좋은 신학교육을 받은 목회자 후보생들이 많이 배출될 수 있도록 교단과 신학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학교육 사변화(思辨化) 절대 안 된다”
사변(思辨)의 사전적 의미는 “경험이 아니라 사고나 이성만으로 인식에 도달하려고 하는 일”을 뜻한다. 신학의 사변화는 목회자 양성이라고 하는 본연의 사명에서 벗어나 학문 자체에 천착하고 있는 현상을 일컫는다. 우리의 신학교육에서 이러한 현상이 만연되고 있고, 이것이 지금 또 하나의 핵심적인 신학교육 개혁과제라 할 수 있다.
백석대 설립자 장종현 박사가 개혁주의생명신학을 주창한 것도 신학이 사변화 되면서 목회 현장과 무관하게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장종현 박사가 “기독교가 살고 죽는 것은 신학자들에게 달려 있다”면서 “성경대로 살자는 개혁신학이 우리 신학교에서 가르쳐져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살아 숨 쉬게 하는 개혁주의생명신학이 목회 현장과 접목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장종현 박사가 “신학자들이 학문을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을 한 시간 읽는다면 성경은 두 시간 읽고, 기도는 세 시간 해야 한다”고 한 것은 성령에 충만한 목회자를 양성해야 한다는 신학교와 신학교수들의 본래적 사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신학교육 현장이 그러하지 못하다는 것은 신학생들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신학을 공부하지만 성경을 배울 수 없고 기도를 배울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본지가 신대원생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이는 확인됐다.
‘신학생들에게 학교에서 더 강화해 주었으면 하는 교육 과제’를 묻는 질문에 ‘성경강해’가 35.7%로 가장 많았고, ‘영성훈련’은 27.7%로 뒤를 이었다. 이는 학생들이 성경 자체와 성령충만에 대한 열망을 느끼지만, 신학교가 이를 충족시켜주는 데 한계를 보여주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신학생 본인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루터대 말테 리노 교수는 “목사안수를 받기 위해 불과 3년간 신학을 공부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학부에서 신학을 배운 경우 석사과정에서 다시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문제도 개선돼야 한다”며 “목사안수를 위한 전제조건을 바꾸고 신학교육을 5~6년 대학 대학원 통합 커리큘럼을 개발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신학교육 현장에서 학문 뿐 아니라 인성을 함양하는 교육도 중요하다. 한국교회 목회자 윤리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부분도 신학교육을 받을 때부터 이 부분이 간과됐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호남신학대학교 전 총장 노영상 박사는 “신학교육을 실시할 때 인성교육 과정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면서 “무엇보다 성직자로서 손색없는 인재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검증하고 학문적 성과만큼이나 바른 인격을 길러낼 수 있도록 신학교육 현장이 변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종현 박사는 “종교개혁 정신을 계승하고 5대 솔라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대속사역을 진정으로 믿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복음은 십자가와 부활”이라며 “신학자부터 개혁돼 모든 교회들이 예수님의 생명으로 풍성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