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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독교가 변질되어가고 빛을 잃어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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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기독교가 변질되어가고 빛을 잃어가는가?
 
 
 
  
 
     오늘날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이 매스컴을 통해서 연일 구설수에 오르며 거센 도전에 직면해 개혁의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빛을 발하여야 할 교회가 세속화와 기복신앙으로 물들어 가고 윤리의식이 약화되어지는 것은 복음의 빛, 생명의 빛을 잃어있기 때문입니다.
 
    왜 하필이면 개신교에만 이단이며 사이비가 많을까요? 물론 기독교가 명품인 참이기에 가짜인 짝퉁이 많은 것은 당연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복음의 문을 닫게 하고 예수님을 제2, 제3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행1:8)고,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마5:13-14)고 말씀하고 있으나 세상에 밟히고 복음의 문을 닫게 하고 주님을 욕되게 하는 것(히6:6)은 주님의 뜻과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으로 참으로 중차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율법과 선지자 시대나 예수님 당시, 사도 시대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있었기에 선지자나 예수님께서도 책망을 하였습니다. 그 책망을 수용하고 돌이키는 것이 주님의 말씀의 외침이며 오늘날 주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의 울부짖음입니다.
 
    교회의 참모습을 회복하기 위하여 각 교단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회개 기도를 해야 한다는 막연하고 대안 없는 세미나는 일시적인 방편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자기신학이 없는 방편에서 나오는 방법일 뿐입니다. 한국교회가 위기를 맞고 부패하게 된 원인은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를 기본으로 하는 부활생명’을 모토로 하는 생명복음 신학의 부재와 비진리인 기복적 번영을 추구하는 잘못된 신학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분명히 축복은 받습니다.
 
   그러나 잘 먹고 잘살고 출세하는 물질의 축복 개념은 세상 종교의 핵심교리이며 기독교의 핵심교리는 아닙니다. 잘못된 기복신앙이 이 땅에 사는 기독교인의 눈을 가리게 하고 참된 결단과 헌신, 섬김을 빼앗아 간 것입니다. 밤에 보이는 수많은 십자가의 불빛을 자랑하지 말고 그 안에 비추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등불을 더 밝게 밝혀야 할 때입니다.
 
   마지막 때에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것이 기갈이라’(암8:11)고 외쳤던 아모스 선지자의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기독교가 본질의 모습에서 변질되어가는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가장 큰 원인은 하나님의 의도와 뜻, 성경적인 생명복음의 비밀의 실제를 듣지 못하여 결국은 성경의 근본적인 본질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은 시대의 때를 알고(마24:45) 비진리와 짝하는 음녀교회에서 나와 생명의 양식을 분별하여 주님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5)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 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원두밭의 상직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사1:2-10)
 
    성경은 말씀의 본질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이라(사1:2-10), 경건의 능력으로 돌아서라(딤후3:5)고 말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주인의 의도를 모르고 무서운 죄를 저지르고 변질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돌아오라고,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나 사도들을 통해서, 심지어는 주님이 직접 오셔서 이스라엘 백성 유대인들을 향하여 외친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묵시가 없어서 방자히 행하기(잠29:18) 때문입니다. 주님은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너희가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며(마13:17), 불러도 대답이 없으며 내 말을 청종하지 않고 내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사66:1-4),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도 없으며(렘5:1), 입술로는 나를 존경한다고 말하면서 실상은 나를 헛되이 경배하고(마15:7-10), 천국 문을 닫고 배나 더 지옥 자식을 만들며(마23:13-15), 차라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말1:6-10),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라(사65:10)고 말씀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께서 마음이 아프면 그러하시겠습니까? 호세아 선지자는 내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호4:6)고 했습니다. 오늘날 교인들의 신앙은 라오디게아 성도들처럼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계3:15-17)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신앙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느냐(마3:7-10)고 물어도 깨닫지 못하는(마13:17) 것이 오늘의 믿는 자들의 현실적 모습이며 교회 모습들입니다. 주님은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계3:2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례요한, 예수님처럼 진리를 저버린 것에 대해 분노하는 그 심정으로 외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귀가 있거든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예수님이 대속해 주신 공로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아무리 악해도 믿기만 하면 천국가고, 예수님 믿으면 잘산다고 하는 비진리로 십자가의 진리를 물질, 부자, 성공, 출세, 행복, 축복과 연결하여 말씀하신 것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잘 먹고 잘 살고 부자되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구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비진리인 이단사설을 전통적인 복음인 양 전하는 교리로 만연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교회를 망하게 하고 부패하게 만드는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위험과 위기는 곧 기회를 뜻합니다. 복음적 신앙의 정체성을 재발견하는 기회이며 신앙의 회복을 위한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어디서 옵니까? 진리의 성령님으로부터 옵니까?(요16:13) 아니면 마귀로부터 옵니까?(약3:15) 위로부터 오는 지혜는 순수하고 화평하고 친절하고 양순하며 자비와 선한 열매들로 가득하고 편견이 없고 위선되거나 거짓이 없어야 한다(약3:17)고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도와 뜻을 모르는 무지에서 오는 것이 번영신학이며 사람의 계명이나 교훈으로 가르치는 비진리가 오늘날 기독교가 변질되게 한 원인입니다. 그것 때문에 신앙인이 삶의 빛과 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온 맘과 온몸으로 응답할 때입니다. 주님께서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마24:45-46)라고 하셨습니다.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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