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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과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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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과 신앙

 

며칠 전 수요 저녁에서는 마태복음 6장 19-24절을 본문으로 다루게 되었고 제목을 그냥 '재물'이라하였다.

나는 이 본문을 다루며 오늘이라는 날들에 이 재물, 즉 돈의 문제는 훨씬 복합적이라는 사실을 새삼 드려다 볼 수 있었다.

 

중요한 가름 점은 우리가 소유한 물질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하는 것이다.

어떤 이가 물질주의에 젖어 있다고 할 때, 또 돈의 노예라고 불리울 때- 그것은 그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물질에 대한 그의 자세가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이다.

만일 저기에 50평 아파트를 두 채씩이나 가진 부자가 있다고 하자. 그리고 나는 겨우 15평 아파트에 전세 사는 형편이다. 이때 나의 오매불망 사모하는 것은 아파트를 사는 것, 넓직한 아파트를 장만하여 저 부자 보란 듯이 떵떵거리고 사는 것이다. 저 사람 거드럭거리는 꼴 못 보겠다. 나도 이를 갈며 살아보리라... 하고 있다면? 내가 저 부자보다 더 물질주의에 젖은 자라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가난한 집 애들이 더 공부 잘했다. 요즘은 오히려 여건이 나은 집 아이들 , 유복한 집 애들이 보편적으로 우수하다고 한다.

 

그런 시대적 기류가 신앙생활에도 미치고 있다. 전에는 가난한 달동네 사람들이 더 예수를 잘 믿었다. 가난한 동네의 교회가 더 잘되었다. 그러나 요즘은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차라리 좀 안정된 사람들, 반듯한 직장을 가진 사람들의 신앙이 더 안정적이다.

이 시대를 보라. 부자의 교만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가난한 이들의 집착이다.

그들에게 돈이 신이 되고 있다. 다른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사치스런 짓이다. 그럴 여유가 없다. 그 '다른 것들' 중에 신앙이 들어가기도 한다.

 

돈이 하나님보다 우선된다. 분노와 시기심에 사로잡혀 생을 살아가기도 한다. 기도의 주제도 오직 기복에 맴돌기 일쑤이다. 주일에 하나님 앞에 나오기보다는 장사를 우선시 하기도 한다. 성도의 교제를 위해 시간을 낸다거나 영적 실력을 위해 성경 공부를 한다는 것은 딴 동네 얘기로 치부하기도 한다.

이들은 다 상대적 빈곤의 희생물이다. 굶어서가 아니다. 나도 저들처럼 더 누리고 저들 앞에서 기죽지 않고 살기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낮이고 밤이고 돈벌러 다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이 재물에 대한 분명한 신앙적 자세 확립하지 못하면?

그것을 가졌기에 범죄 한다.

또 그것을 가지지 못했기에 범죄하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우리 교우들에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우리 교우들이 그렇게 여유로운 삶을 사는 층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도 밤10시, 11시 대중없이 퇴근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이들이 많다. 주일에도 일하러 나가야 되고 주중에도 분요하다. '먹고 살아야지'라는 명제 앞에 다 기가 죽어버린 형국이다.

우리 성도들이여! 우리는 다시금 일어서야 한다.

우리는 단지 먹기 위해 사는 이들이 아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는 멋있는 삶을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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