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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과경배의 성경적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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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과 예배의 성경적인 이해”

 

PART #1 찬양

 

1. 찬양의 정의

 

찬양은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일상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일상 생활속에 들어있는 “칭찬”을 기억하면 쉽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넘어서 찬양은 “하나님께 방향을 맞추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표현하는 것이다.”찬양의 사전적 정의는 “칭찬하다, 갈채를 보내다, 존경 또는 인정함을 표현하다, 말이나 노래로 높이다, 크게 보이게 하다, 영광을 돌리다..”등이다. 찬양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하나님 자체에 대한 반응”이다. 찬양은 “어떤 모습이건 밖으로 드러나게 된다”오직 하나님의 기사를 묵상만하고 있는 사람은 아직 찬양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묵상은 찬양이 아니다.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월드컵 경기, 올림픽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후 모습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찬양은 기쁨과 칭찬, 박수와 탄성이 들어있는 Activity한 행동이다. 때로 찬양은 기분이나 감정과 반대로 움직이기도 한다. 찬양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고, 마음이 상해 있을 때에도 찬양을 해야 한다. 찬양은 명령이기 때문이다. 다윗이 자기 영혼에게 어떻게 말했는가를 보면 쉽다. 시편103편 1절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2. 찬양의 원형

 

성경안에 나타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거룩한 찬양의 원형은 두 곳에 잘 나타나있다.

 

1) 이사야서의 찬양

 

이사야 6:1-4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여기에 묘사 되어있는 스랍은 천사들의 서열에서 매우 높은 위치에 있는 천사이다. 이사야가 성전을 방문했을 때, 이런 스랍들이 보좌에 앉으신 주님께 서로 창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창화란 한쪽에서 부르고 다른 쪽에서 이어 답하는 주고 받는 형식의 노래를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엄청난 찬양은 “문지방의 터”를 흔들리게 하였다. 또한 우리는 그 집이 연기(주, 예배의 향기)로 가득찼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시편에서 찬양을 큰 소리로 외치는 것과 연관시켜서 말하고 있는 것이나, 신약에서 주의 재림이 “호령”과 함께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말씀은 조금도 이상한 말씀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에서 지른 함성에서부터(여호수아 6:20)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지른 큰 소리까지(에스라 3:11-13) 시편과 예언서는 예배의 한 부분인 “소리침”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물론 “그 앞에 잠잠할찌니라” (하박국 2:20)고 하시는 말씀도 있지만, 대부분 성경은 소리치는 것을 말한다.“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찌어다” (시47:1)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시5:11) 하나님은 소음을 좋아하시거나 권장하시지는 않는다. 그러나 위의 정의에서 말한 것처럼 사람은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소리쳐 나타낼 필요가 있다.

 

 

2) 요한계시록의 찬양

 

요한계시록에서는 예배하는 여러 가지 모습들이 나타난다. 네 생물들이 소리친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자라” (계4:8) 그들은 또한 “영광과 존귀와 감사”(계4:9)를 주님께 드리고 있다. 24장로들은 보좌 앞에 엎드려서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앞에 던지며 말한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라”(계4:11) 13절은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찌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창조물들과 사람들, 지음받은 모든 것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부르는 시편 148편과 잘 어울린다.

 

7장 9-10에서는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천사들과 장로들과 네 생물이 큰 소리로 함께 찬양하는 것이 나온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7:12)

 

또 19장에서 우리는 많은 무리가 소리치고 선포하고 엎드려 절하며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곳의 찬양이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요한은 그것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난처했던 것 같다.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19:6)

 

다시한 번 정리하면 성경에서 보여주는 찬양의 본성과 최초의 원형들은 소리내어 말로 표현하는 것이었으며, 대부분 큰 소리로 드리는 것이었다. 때로는 교창으로 때로는 합창과 독창으로 드려졌다. 찬양은 자주 노래로 나타났지만 그보다는 소리쳐 외치는 외침으로 더 많이 나타났다. 그리고 거기서는 일어서거나 손을 들거나, 절하거나, 엎드려 절하거나, 월계관을 벗어던지는 등의 행동들을 수반하는 것이 드물지 않게 나타났다.

 

 

3) 찬양의 주소

 

“해 돋는 데서부터 해지는 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시113:3) 이 구절에서 말하는 해돋는 데서 해지는 데까지는 단순히 아침과 저녁을 의미하는 것 뿐 아니라 해뜨는 땅에서 해지는 땅까지 즉 온 열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실 것을 말하고 있다. 성경은 분명히 어떤 특별한 장소만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곳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모임에서 일어나는 찬양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중 가운데서 찬양할 때 기뻐하신다. 많은 시편의 구절들이 이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시22:22)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26:12) “내 발이 평탄한 데 섰사오니 회중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시35:18) “내가 대회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많은 백성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성도들의 모임중에서 찬양하기를 원하시도 하시지만 특별히 원하시는 장소가 있다.

(시96:3) “그 영광을 열방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중에 선포할찌어다”

(시40: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린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 지하리로다”

(시57:9) “주여 내가 만민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열방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이 구절들을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오직 성도들을 위한 것만이 아님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역사가 만민에게 전달되고 하나님의 영화로운 찬송이 불려지며 하나님의 찬송이 불신자들과 온 세상에 선포되기를 항상 원하신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찬양들과 만날 시편 40편 3절에서는 그들이 두려워하고 여호와를 의지 할 것이라고 말한다.

 

찬양의 주소는 광장이란 말을 많이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성도들뿐 아니라 저 공중권세 잡은 자들이 결박하고 있는 세상의 한 가운데서 찬송되어지고 높임을 받으신 다고 상상해보자.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찬양의 주소가 광장이라는 사실에는 숨겨진 비밀같은 엄청난 능력이 있다.

 

 

3. 찬양의 모델

 

1) 유다, 찬양의 모델

 

성경에 “찬양”이라는 단어가 처음 쓰인 곳은 그 이름이 “찬양”을 뜻하는 유다의 탄생과 관련된 창세기 29:35이다.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하고 이로 인하여 그가 그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야곱의 눈을 속이고 결혼한 레아는 네 번째 아들인 유다를 낳고서야 비로서 야곱과 완전한 연합을 이룰 수 있었다. 이 완전한 연합 속에서 자라 그의 이름인 “찬양”으로 불리는 유다는 한 가족, 한 부족, 한 나라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위대한 다윗왕이 나오고, 그 보다 더 위대한 예수님이 탄생하셨다. 유다라는 이름이 발견되는 성경의 어디서나 그 이름이 “찬양”을 의미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 “유다”가 발견되는 몇 개의 성경을 더 찾아보도록 하자

 

 

2) 오경에서의 유다

 

성경의 맨 처음에 나오는 다섯 책인 오경에슨 유다라는 이름이 40번도 더 나온다. 창세기 49장에서는 야곱이 유다에 대한 예언을 하며 그에게서 메시야, 그리스도가 나올 것을 말한다. 민수기 2:2-3에 따르면 유다의 장막은 떠오르는 태양과 성막에 들어가는 하나뿐인 문을 모두 다 바라볼 수 있는 동쪽에 위치해 있었다.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을 맨 먼저 보는 것은 언제나 찬양하는 사람들이었다. 신명기33:7절에는 유다에 대한 축복이 있다. 모세는 유다지파에게 “여호와여 유다의 음성을 들으시고 주께서 도우사 그로 그 대척을 치게 하소서”

 

 

3) 역사서에서의 유다

 

역사서 안에서 우리는 실천하는 유다를 볼 수 있다. 여호수아 14장에서 가나안땅을 정찰하러 보낸 정탐꾼 중에는 유다지파의 한 사람인 갈렙이 있었다. 사사기 1:1-2에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올라갈찌니라 보라 내가 이 싸움을 그의 손에 붙였노라 하시니라”는 말씀이 나타난다. 찬양은 싸움의 선봉이 되어 나갈 것이다. 역대하 20:21절에 여호사밧은 모압과 암몬이 쳐들어왔을 때 노래하는 자들을 군대 앞에 보내어 주님께 찬양하게 하였다. 그리고 승리하였다. 주님을 위해 전투를 하기 원하는 사람들을 찬양을 배워야 한다.

 

 

4) 시가서에서의 유다

 

다른 시가서들은 모두 찬양을 매우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시편은 유다를 찬양의 모델로써 말하고 있다. “유다의 딸들은 즐거워할찌어다”(시48:11) “유다의 딸들이 인하여 기뻐하였나이다”(시97:8). 찬양의 사람들은 기쁨과 즐거움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보다는 하나님 자신과 더 많이 교제하며 관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유다 성음들을 건설하시리니 무리가 거기 거하여 소유를 삼으리라”(시69:35) “유다는 그의 성소가 되고”(시114:2)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시22:3) 찬양의 사람들은 거할 곳을 얻게 되고, 또한 그로 인하여 그곳을 하나님의 성소로 드리게 된다.

 

 

5) 예언서에서의 유다

 

유다에 대하여 예언서는 290이 넘게 언급하고 있다. 호세아 10;11절은 “유다가 밭을 갈고”라고 말한다. 찬양이 씨를 뿌릴 수 있도록 먼저 땅을 갈아 엎어준다고 예언자들은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요엘 3:18은 “그날에...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고 약속하신다. 매마른 곳에 물을 대주는 성령의 새로운 샘물은 찬양의 사람들 속에서 흘러나온다. 찬양은 단순한 성령의 충만이 아니라, 성령의 흘러아노는 원천이며 근원이다.

 

구약을 마감짓는 말라기는 확언한다. “그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헌물이 옛날의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말3:4). 찬양이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기쁨이 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찬양의 모델이요 본보기인 유다! 그는 불완전하고, 때로는 반역하고, 가끔은 성급하고, 가끔은 게으르지만 주님께 찬양을 드림으로 주님의 기쁨이 되려 하였다.

 

 

6) 예배의식과 찬양

 

구약의 예배의식은 과거를 기념하며 현재를 바라보며 미래를 기대하는 축제들이었다. 따라서 찬양하는 사람들의 찬양에도 세 가지 측면이 있다. 먼저 우리는 그 분이 과거에 하신 일들을 기념하며 찬양한다. 그리고 그분이 현재 하고 계신 일들로 인하여 찬양한다. 그리고 장차 이루어질 예언적이 비전과 희망 때문에 찬양한다. 뒤를 보든지 주위를 보든지 앞을 보든지 항상 우리에게는 주님을 찬양할 동기가 주어진다.

 

세 가지 예배의식을 기억하자. 먼저 “전제“이다. 이것은 출애굽기 29:40에 나타난 것처럼 포도주 4분의 1힌을 부어 드리는 제사의 한가지다. 두 번째로 “거제”이다. 이것은 히브리어로 “선물, 선사”를 뜻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꺼이 드림”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요제”이다. 이것은 빵, 과자 혹은 어린 양의 어깨등을 주님 앞에서 흔드는 것을 말한다. 출애굽기 29:24-25절에서는 주님앞에 흔들어진 요제물은 그 후 제단 위에서 주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로 태워진다고 말한다. 전제는 우리의 영의 흘러나옴을 예시하고, 거제는 우리의 혼의 응답하는 자유의지를 보여주고, 요제는 우리의 육체를 포함시킨다. 즉 찬양은 우리의 영과 혼과 육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4. 찬양의 사람들

 

성경속에서 예배하고 찬양하는 자들은 수 없이 많이 있다. 지금은 그중에서 특정한 그룹이나 계층의 사람들로 나타난 몇몇 사람들에 대하여 살펴보자.

 

1) 모세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끌면서 홍해를 건너고 계속되는 적의 군대들을 물리친 다음, 모세는 목소리를 높여 선포와 예언이 담긴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 출애굽기 15:1-2절은 선포하고 있다.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이 모세의 노래는 요한계시록 15:3절에서 우리가 완전한 승리를 얻어 천국에 이르면 유리 바다위에서 많은 무리와 연합하여 모세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세의 찬양은 우리들의 구원의 노래가 될 만큼 충분히 위대한 것이다.

 

 

2) 멜기세덱

 

창세기 14:18-20절에는 살렘왕 멜기세덱의 찬양이 나온다.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하나님께서 멜기세덱의 찬양을 통해 성직의 수락을 계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3) 드보라

 

사사들의 대부분은 그들이 승리할 때마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다. 그 중에서도 바락과 함께 가나안을 물리치고 감동적인 승리를 한 드보라의 찬양이 가장 뛰어났다. 그것은 사사기 5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2절과 9절이 그 노래의 절정을 이룬다. “이스라엘의 두령이 그를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내 마음이 이스라엘의 방백을 사모함은 그들이 백성 중에서 즐거이 헌신하였음이니라 여호와를 찬송하라”

 

 

4) 다윗

 

찬양과 예배에 관한한 다윗이야말로 유대와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왕이었다. 그의 시편은 오고 오는 세대들로 하여금 찬양케 해 주었다. 시편 34:1-3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 내 영혼이 여호와로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가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 이름을 높이세” 그는 자신이 찬양하는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함께 주님을 찬양하자고 권고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주님을 찬양하도록 노래하는 자들을 가르쳤고, 성가대와 오케스트라를 훈련시켰으며, 그들에게 24시간 온종일 주님을 찬양하는 예배를 드리라고 지시하였다. 그는 찬양의 사람이었다.

 

 

5) 이사야

 

이사야서는 찬양으로 가득차 있다. 그는 처음으로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았고, 거룩한 찬양을 목격하였다. 이사야 12장은 전체가 찬양의 장이다. 이어 25장 1절에서, 35장 10절에서, 42장 10절에서, 그리고 잘아는 43: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선포하고 있다.

 

 

6) 하박국

 

하박국은 하나님의 방법에 대한 비판과 “어느 때까지” “어찌하여”라는 질문들로 흔들리는 그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대답을 들으려고 기도탑으로 올라간다. 그러나 그는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어다”(2:20)는 말로 2장을 끝맺는다. 그리고 그는 3장에서 소리내어 찬송하고 있다.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3:3)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3:18-19)라는 고백으로 끝을 맺고 있다. 하나님을 고소하기를 더 좋아하던 그가,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거한 후로는 하나님께 찬양을 외치는 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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