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의 마지막 주일에 경기도 A시에 살던 권사님이 우리 교회에 처음 나왔다. 온 가족이 시골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온 가족이란 삼대, 6명의 식구를 말한다. 김 집사님을 대동하고 우리 부부는 월요일에 권사님 댁에 심방을 갔다.
목사님이 권사님에게 물었다.
“A시에서 어느 교회에 다니셨습니까?”
“좋은 교회요.”
그 때 같이 간 우리 교회 김 집사님이 말했다.
“우리 교회도 좋은 교회입니다.”
방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하하하 웃었다. 그 때 권사님이 말했다.
“제가 다녔던 교회 이름이 좋은 교회라고요.”
내가 말했다.
“아! 교회 이름이 좋은 교회라고요? 거참 좋은 이름이네요. 하긴 아름다운 교회도 있고, 동행하는 교회도 있고, 사랑의 교회도 있고, 요즘에는 교회 이름도 형용사로 짓는 교회가 많더라고요. 어쩐지 좀 이름 하면 명사여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어서인지 좀 어감이 어색하긴 하지만, 뜻이 좋으니 뭐 좋겠지요.”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에 어느 노총각이 시골의 삶에 비전이 안 보인다고 서울로 갔다. 촌놈이 서울생활에 적응하기도 전에 여자를 만났다. 그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자기에게도 여자가 생기다니.그런데 그 여자는 환자였다. 정신이 온전치 않았던 것이다.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순진한 시골 노총각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우연히 만난 도시 처녀에게 쏙 빠졌다. 남자가 생긴 것을 안 처녀의 언니는 서둘러 결혼을 시켰다. 그 처녀는 부모가 돌아가시고 정신이 온전치 못하여 서울에 사는 언니가 돌보고 있었다. 결혼한 직후 남편은 아내의 상태를 하나씩 둘씩 알게 되었다. 아내는 임신했고 예쁜 딸을 낳았다. 행여 시골에 가서 살면 병이 나을까 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와서 둘째 딸을 낳았다. 아내는 살림이고 아이 키우??것이고 제대로 하는 게 없었다. 남편이 다 했다. 아내가 장애 1급이므로 먹고 살만큼의 보조금이 정부에서 지급되었다. 남편은 20년이 넘도록 오로지 아내를 돌보고 두 딸들을 키웠다. 큰 딸이 결혼을 해서 전주에 살게 되었다.
2012년 4월 어느 날, 언니가 전주에서 만나자고 했다. 언니는 가끔 동생에게 필요한 것들을 주었다. 이번에도 동생네에게 생필품을 줄 겸 동생 부부와 식사나 함께 할 요량이었다. 언니와 저녁식사를 하고 딸네 집에 들렀다 간다고 오는 길에 뒤에서 졸음운전을 한 택시가 와서 부딪혔다. 아내는 그 자리에서 죽고 남편은 3일 후에 죽었다. 대형교통사고인 셈이었다.
아내의 친정식구들은 모두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아내도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다. 시골에 내려와서 초기에는 교회를 다녔다. 그러나 곧 교회를 나오지 않았다. 아내는 정신이 온전치 않아서 감정의 변화가 심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가끔 그 집에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얘기를 나누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매우 좋아해서 딸들 얘기도 풀어놓곤 했다. 아내가 그러니 남편이 데리고 교회를 나오라고 하면 남편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말했다.
“하나님이 있으면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아내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고, 또 내가 무슨 죄가 있어 이렇게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하나님이 있으면 이럴 수는 없지요.”
그는 하나님께 대하여 원망이 많았다.결혼한 지 일 년 된 사위가 장례를 맡았다. 사위는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다. 가족 모두 그리스도인들 이었다. 사위는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장례를 집례해달라고 부탁했다. 화요일에 아내를 땅에 묻었다. 수요일 밤 12시경에 사위에게서 장인이 돌아가셨다고 또 연락이 왔다.
사위가 말했다. 자기 형이 수요일 밤 10시쯤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천국과 지옥을 얘기하고 예수님을 영접 하라고 했더니 순순히 승낙을 하여 영접기도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 위에서 죽기 직전에 구원받은 강도처럼 그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던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11시쯤 돌아가셨단다.
목사님은 부부의 장례를 마치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지금껏 한 사람을 데려가실 때마다 두 사람을 보내주신 하나님께서 과연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실까. 아내는 오래 전에 우리 교회를 출석했으나 근래 10여 년 동안은 교회 출석을 안 했으며 남편은 한사코 교회 출석을 거부하였던 부부였다. 그러나 목사님은 마음속으로 항상 그들을 교인으로 품고 기도해왔다. 꾸준히 심방도 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들 부부 대신에 2주 후에 5명에 뱃속에 있는 아기까지 하면 6명의 새로운 교인들을 보내주셨다. 삼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인 한 가정이 우리 구역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할렐루야! 신실하시고 우리에게 항상 차고도 넘치는 은혜를 부어주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어느 목사님이 청년들 10명을 데리고 인도네시아에 단기 선교를 나갔다. 목사님은 청년들에게 떠나기 전에 한 가지를 당부했다.
“다른 것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영혼에 심어주고 오자.”
인도네시아는 덥고 열악한 환경으로 여러 가지가 불편했다. 그러나 청년들은 목사님의 당부대로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선교활동을 했다. 네 교회를 방문하였다. 낮에는 어린이 주일학교를 운영하여 복음을 전하고 밤에는 어른들을 모아놓고 복음을 전했다. 첫 교회는 모슬렘 지역으로 선교하기가 수월치 않으리라 예상하고 잔뜩 긴장했으나 150여 명의 아이들이 모여들어 천장이 들썩거리도록 신나게 여름성경학교를 마쳤다.
둘째 교회는 쓰레기장 옆에 위치한 교회였다. 그 교회 목사님은 환경이 너무 안 좋은 탓인지 폐병에 걸려 있었다. 어느 한국의 선교사님이 사정을 딱하게 여겨 좀 떨어진 깨끗한 지역에 작은 아파트를 얻어 주었더니 며칠 후에 그 목사님은 짐을 싸가지고 다시 쓰레기장 옆에 있는 사택으로 돌아왔더란다. 왜 돌아왔느냐고 물었더니, 담임목사가 교회 옆에 살면서 성도들을 보살펴야 마땅하다고 하더란다. 셋째 교회는 화산 지역에 있는 교회로서 화산재가 날려 공기가 매우 나빴다.
세 교회는 성도의 수가 몇 되지도 않지만 모두 너무 가난해서 미자립교회로서 담임목사님들의 생활이 매우 어려웠다. 청년들은 자기네들이 풍족한 삶 가운데서 얼마나 나태하고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해왔는가를 깨닫고 많이 울고 많이 기도하고 많이 변했다.
마지막으로 넷째 교회를 방문했다. 그곳에서는 모든 프로그램을 마치고 성대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그 교회는 마치 한국의 대형교회와 같은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5명의 부목사들, 여러 명의 전도사들, 20명의 장로들, 수십 명의 권사들, 집사들. 잘 지어진 웅장한 교회 건물, 화려하고 멋진 인테리어, 넓은 주차장, 각종 부대시설들, 잘 갖추어진 음향기기, 미디어 매체들. 그들은 한국에서도 맛보기 힘든 다양한 요리로 가득 찬 뷔페로 식사 대접을 받았다.
식사를 마치고 그 교회 장로님 한 분이 선교단을 이끈 목사님에게 인사말을 해주시라고 했다. 목사님은 강단에 올라가 말했다.“교회의 아름다움이란 크기나 규모나 재정이나 성도의 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성도들의 참된 예배와 섬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이 교회가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다.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성도들의 참된 예배와 섬김이 변하지 않고 항상 존재하는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요, 곧 좋은 교회이다. 아무리 겉모습이 웅장하고 화려하며 온갖 요소들이 부족함 없이 잘 갖추어져 있다 해도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는다면, 그곳의 성도들이 자기의 의를 자랑하며 서로 높아지려고 경쟁하며 남보다 자기를 더 높이고 분쟁하는 육적인 그리스도인들로 채워져 있다면 그 교회는 좋은 교회라, 혹은 아름다운 교회라고 할 수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