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形象)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空中)의 새와, 육축(肉畜)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創造)하시되, 남자(男子)와 여자(女子)를 창조하시고”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天地)를 만드실 때, 식물(植物)과 동물(動物)은 각기 종류(種類)대로 만드셨으나, 사람을 만드실 때에는 하나님의 형상(形象)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模樣)대로 만드신 것을 볼 수 있다.
즉 인간의 모습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모습을 유추(類推)해 볼 수 있는 것 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生氣)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이 된지라” (창세기 2:7)
생령이 된 인간의 이름은 ‘아담’이며 남자(男子)였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命)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各種) 나무의 실과(實果)는 네가
임의(任意)로 먹되, 선악(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實果)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丁寧) 죽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 26-27)
상기 본문에서 그 사람이란 ‘아담’을 이야기 한다.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命令)을 하시는데, 아담의 아내인 하와는 이 명령을 듣기 전 이며 그 이유는 하와가 아담보다 나중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자유의지(自由意志)란, 간단하게 말해서 해야 할 일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아는 인격(人格)을 가진 자(者)가 어떤 명제(命題)를 앞에 두고, 그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判斷)하여, 행동(行動)으로 옮길 수도 있으며, 행동(行動)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속성(屬性)이신 인격(人格)을 인간(人間)에게
부여(附與)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격(人格)을 소유(所有)한 인간에게 자유의지(自由意志)를 주셔서, 인격을 가진 자의 자유로운
결정(決定)에 절대 간섭(干涉)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즉 사람의 인격을 절대적으로 존중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인격이란, 스스로 책임(責任)을 질 자격(資格)을 가진 독립(獨立)된 개체(個體)로서, 영혼(靈魂)이 있는 자(者)에게만, 하나님께서 특별(特別)히 부여(附與)하신 속성이다.
개나 돼지 같은 동물(動物)이나, 식물(植物) 등(等)은 영혼이 없기에 인격체(人格體)가 아니다.
영혼(靈魂)이 있는 존재(存在)인, 하나님과 인간(人間), 그리고 천사(天使)는 인격적인 존재이다.
천사장인 루시엘이 타락(墮落)하여 루시퍼가 될 때에도 하나님은 관여(關與)치 아니 하셨다.
그리고 아담이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으려 할 때에도 그것을 막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들을 하나님께서 인격체로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인격체가 자기에게 주어진 자유의지(自由意志)를 온전(穩全)히
사용(使用)하지 못하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을 계속(繼續)한다면, 이는 무엇 인가에 중독(中毒)
되었다는 것으로, 어떤 불순(不純)한 존재(存在)에게 자기 의지를 빼앗겼다는 것을 의미(意味) 한다.
예(例)를 들어, 담배를 끊고 싶은데도 끊지 못하고, 피우며 괴로워 할 수밖에 없는 처지(處地)라면, 이런 사람을 두고 ‘담배에 중독(中毒)’ 되었다고들 표현(表現)한다.
마약(痲藥)이나, 도박(賭博), 알코올 중독 등도 마찬가지 현상(現狀)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중독된 것이란 ‘어떤 일을 결정함에 있어서 선(善)한 자유의지를 사용치 못하고, 어떤 악한 존재에게 비참하게 끌려 다니는 현상’ 정도로 해석될 것이다.
본문(本文)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동산의 모든 나무 실과(實果)는 모두 먹어도 괜찮으나, 동산 중앙(中央)의 선악(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는 절대(絶對) 먹지 말 것을 지시(指示)하셨다.
그러나 뱀의 유혹(誘惑)에 넘어간 아담의 아내인 하와의 권유(勸誘)에 따라,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는 명령(命令)을 어기고, 아담이 선악과(善惡果)를 따 먹으면서부터, 인류(人類)에게 죄(罪)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
만약에,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으려 할 때, 하나님께서 이를
제지(制止)하셨다면,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며, 오히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죄를 짓도록 유도(誘導)하신 것처럼
오해(誤解)하거나, 아예,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선악과(善惡果) 자체(自體)를 만들어 놓지 않으셨으면, 인류(人類)가 죄(罪)의
고통(苦痛) 가운데서 고생(苦生)하지 않아도 될 것 이라며, 하나님께서 마치 병(病)주고 약(藥)주시는 분이신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도 사실(事實)이다.
물론, 죄(罪)가 인류(人類)에게 들어오게 된 계기(契機)만을 생각 한다면, 맞는 이야기인 것 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입장(立場)에서 바라본 극히 주관적(主觀的)이고, 단편적(斷片的)인 생각일 뿐, 인류의 조상 아담을 하나님과 동등(同等)한 인격자(人格者)로서 대우(待遇) 하시는 것을 망각(忘却)한 처사이다.
“내가 오늘날 천지(天地)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證據)를 삼노라.
내가 생명(生命)과 사망(死亡)과 복(福)과 저주(詛呪)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子孫)이 살기 위하여 생명(生命)을 택(擇)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順從)하며, 또 그에게 부종(附從)하라.” (신명기 30:19-20)
신명기의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일방적(一方的)으로 주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이 그것 중 자기가 원(願)하는 것을 택(擇)하라는 것이다.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生命)과 복(福)과 사망(死亡)과
화(禍)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命)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行)하며, 그
명령(命令)과 규례(規例)와 법도(法道)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生存)하며 번성(繁盛)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福)을 주실 것임 이니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誘惑)을 받아서 다른 신(神)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宣言) 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亡)할 것이라.” (신명기 30:15-18)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의 명령(命令)과 규례(規例)와
법도(法道)를 지키면, 생명(生命)과 복(福)을 받지만, 만약 마귀(魔鬼)의 유혹(誘惑)을 받아서, 다른 신(神)들에게 절하고,
우상(偶像)을 섬기면, 사망(死亡)과, 저주(詛呪)를 자초(自招)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선악과(善惡果) 사건(事件)과 같아서,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분의 명령(命令)을 지키면 복(福)을 받지만, 이를 알고도 어기면, 화(禍)를 면(免)키 어렵다는 것이다.
오로지, 그 선택(選擇)은 인격(人格)을 가진 인간이 스스로 하는 것이다.
절대(絶對), 하나님께서 이래라 저래라 간섭(干涉)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이다.
간섭(干涉)하신다는 것은 인격(人格)을 무시(無視)하는 일이다.
세상에서도, 네가 알아서 하라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일의 결과(結果)에 자기가 전적(全的)으로 책임(責任)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것이든 중독(中毒)되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이 담배든, 술이든, 마약(痲藥)이든, 도박(賭博)이든, 인터넷 게임(Game)이나 섹스(Sex)나 운동(運動), 종교(宗敎)나 사상(思想)이든 간에, 거기에 몰입(沒入)되거나 인(印)박힘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여 그만 두려고 해도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 끌려 다니는 어리석은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결국 자기를 파멸(破滅)에 이끌 것이라고 판단(判斷)하면서도, 거기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나아가서 자기만 망(亡)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까지 이끌어 들여, 결국 이웃까지 망하게 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본다.
이것이 중독의 속성이요, 악(惡)한일의 속성인 동시에 마귀의 속성이다.
나는 마귀에 의해 나 자신이 농락당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고상(高尙)한 인격을 소유한 사람이, 자유의지를 선(善)하게 사용(使用)하길 원(願)하시며,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관심(關心) 있게 보시고 계시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안 믿고도 전적(全的)인 선택(選擇)사항(事項)이다.
예수를 믿어야 죄(罪)에서 해방(解放)되어, 영생(永生)에 이른다고, 전도자(傳道者)들이 누누(累累)히 설명(說明) 하건만, 도무지 받아 드리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예수를 믿고 안 믿고도 자유의지에 속한다.
하나님께서는 절대(絶對) 억지로 믿으라고 강요(强要)치 않으시는 분이시다.
나에게 주어진 자유의지(自由意志)를 사용(使用)하여, 예수님을 나의 구주(救主)로 영접(迎接)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일은 자유의지를 사용해야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重要)한 일이라고 하나님께서는 여기시는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 인터넷기사를 보다가 종교 이야기나, 기독교에 관련된 기사, 특히 예수님에 관한 기사(記事)가 뜨면 얼마나 반응(反應)이 뜨거운지 놀랄 정도이다.
반(反)기독교인이 사용하는 표현을 보면 얼마나 격렬히 기독교를 욕하고, 예수 믿는 것에 대하여 반대(反對)하는지 감히 댓글 달기가 망설여질 정도이다.
예수님을 옹호(擁護)하거나, 예수를 구주(救主)로 영접(迎接)하는 일 만이 영생(永生)을 얻는 유일한 길이라고 댓글을 단다면, 이후 쏟아지는 욕설과 저주(詛呪)가 어느 정도일까?
아마 대단할 것이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기독교(基督敎)에 대하여 부정적(否定的)인가?
물론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모범적(模範的)인 모습을 보이지 못한 일부 크리스챤들의 잘못을 인정(認定)한다.
그러나 일부 기독교인들의 잘못된 행동(行動)을 가지고 그렇게 격렬(激烈)히 반기(叛旗)를 드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여기에는 반드시 영적(靈的)인 문제가 개입(介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근본(根本)인 영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렇게 격렬히 반향(反響)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는 선(善)하게 사용되어져야 한다.
그 자유의지가 자기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영원히 하늘나라에서 살아야 하는 일에 사용되어지기를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원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나 마귀는 그 자유의지를 악(堊)한 것에 사용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예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중독 시켜 버리려는 것이다.
술과, 담배와, 마약과, 도박과, 게임과 이단(異端)사설에 중독 시켜, 아예 파멸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기에 무엇이든 중독된다는 것은 매우 경계(警戒)해야 할 일이다.
어쨌든 정도(程度)가 지나쳐, 어디에 몰입(沒入)되는 것은 조심해야 할 일이다.
생활이란 끊임없는 선택(選擇)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