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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목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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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 마당엔 나만 아는 예쁜(?) 상처 하나가 있습니다. 지난 봄 어느 주일 아침, 교회 수돗가에서 점심을 준비하던 아내가 하수도관이 막힌 것 같다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된 아내의 손에는 길고 가느다란 대나무가 들려 있었습니다. 나를 찾기 전에 나름대로 애를 써본 것이지요. 

나는 양복저고리를 벗어놓고 대나무로 하수도 입구를 쑤셔봤습니다. 꽤나 긴 대나무였지만 거침없이 쑤욱 들어갔습니다. 머리를 갸우뚱거리는 나에게, 아내는 마치 1급비밀이라도 알려주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몇 주 전에 설거지하던 Y 집사님이 부엌칼을 놓쳤는데 그 속으로 들어갔다고 그러더라구요. 그 이후로 물이 잘 안 빠지는 것 같아요.”

직경 5센티미터 남짓한 관에 부엌칼이 들어갔으니 물이 잘 빠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아무튼 대나무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만은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주일예배 후, 점심식사를 끝낸 남자 집사님들에게 이 일을 알린 뒤, 의견을 들어보았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이 하수도 뚫는 일을 하는데 한번 부탁해 볼랍니다.” 
“아예 기존의 관을 묻어버리고 그 위로 관을 새로 묻으면 어떨까요?” 
“그렇게 하려면 일이 복잡하니까, 수돗가 앞쪽으로 배수로를 새로 만들도록 하죠?” 

집사님들은 몇 가지 의견을 내놓았고, 그중에 하수도 뚫는 사람에게 맡기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 I 집사님으로부터 하수도 뚫는 일을 하시던 분이 얼마 전에 그 일을 그만 두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렇게 두어 달이 흘러 어느덧 여름이 되었고, 급기야 주일마다 교회 마당으로 물을 버리는 상황이 재현되었습니다. 그것을 본 성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빨리 손을 봐야 되겠다”며 한 마디씩 거들었지만, 선뜻 나서서 일을 하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더 이상 성도들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교회 재정이 넉넉지 않은 형편에 기술자를 쓰는 것도 그렇고 해서, 나는 짐짓 철물점에서 5밀리미터짜리 굵은 철사 15미터와 해머 한 개를 구입한 뒤, 공사(?)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하수도관 양쪽에서 철사를 찔러 넣어 살펴본 결과 하수도관이 중간에서, 그것도 마당에 있는 맨홀 가까운 곳에서 굴절된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그 지점을 짐작으로 표시한 뒤, 해머로 힘껏 내리쳤습니다. 그동안 집사님들로부터 교회 마당을 포장할 때 레미콘 3 대분을 갖다 부었기 때문에 콘크리트 두께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말을 수차례 들은 터였습니다. 그리고 보면 집사님들이 “하수도관을 새로 묻자” “배수로를 다른 쪽으로 내자”고 한 이유도 다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상 외로 콘크리트의 두께는 그다지 두껍지 않았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지금 파고 있는 곳이 정확한 굴절지점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확했습니다. 서둘러 굴절부분을 둘러싼 고무와 연결호스를 걷어내고 보니, 부엌칼뿐만 아니라 숟가락 젓가락, 그리고 작은 플라스틱 장난감과 관에 빼곡히 들어찬 소나무 잎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렇게 공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온 몸은 땀에 젖고 피곤하기는 했지만, 마치 앓던 이를 빼낸 것처럼 시원했습니다. 

문제는 이 일이 있고 난 뒤, 교회를 오가면서 새로 바른 시멘트 자국이 선명한 그 자리를 볼 때마다, ‘우리 교회엔 일꾼은 없고 구경꾼만 가득한 것 아닌가?’ ‘이런 성도들이 어떻게 교회사랑 운운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고개를 불쑥불쑥 쳐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나오다가, 그 자리를 다시 본 순간, 주님께서 이렇게 속삭이셨습니다.
“정수야! 나는 이 일을 네가 손수하기를 원했고 기다렸다. 그리고 네 스스로 이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런데 너는 어찌해서 성도들에게 서운한 감정을 갖는단 말이냐? 오히려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준 성도들에게 감사해야 옳지 않겠느냐? 기뻐해야 옳지 않겠느냐?” 

내가 이 일을 통해 깨달은 것은 이것입니다. 목회자 스스로 ‘성도 사랑’을 자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목회자의 바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성도들에 대해 오히려 감사하고 사랑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 일을 통해 나를 향한 하나님의 큰 뜻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요구요 바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보면, 내가 고친 것은 하수도관이 아니라 나 자신임을, 아니 하나님께서 하수도관을 통해 나를 치유하셨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교회 마당에 선명히 찍힌 새로 바른 시멘트 자국을 볼 때마다, <좋은 목사>가 되고자 하는 목회자로서의 다짐을 늘 새롭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김정수 목사 -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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