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중 신체 장애인 헬렌켈러 여사가 쓴 글 “내가 3일간 눈을 뜰 수 있다면” 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만일 이 세상에서 삼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 나는 그 삼일 동안에 볼 일들을 이렇게 정리하겠다.
내 눈을 뜨는 그 첫날, 나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준 예쁘고 인자한 나의 스승 에나 설리반을 찾아가겠다. 내 손가락 끝으로 만져서 알던 그의 인내심 많은 얼굴 모습. 그가 입고 있는 아름다운 옷. 그리고 그의 늘씬한 몸매. 이 모든 것들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그의 인상을 내 가슴 속 깊이깊이 간직해 두겠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도 집에 모이게 하여 얼굴 모습 하나 하나의 특징도 내 마음 속 깊숙이 간직해 두겠다. 그러다 어느덧 오후가 되면, 나는 들로 산보를 나가겠다. 아름답게 피어 있는 오색찬란한 꽃들과 신비스럽게 생긴 여러 가지 형태의 나무들. 그리고 형형색색의 풀들을 보고 싶다.
그러다 저녁이 되면 나는 나의 손 끝 감촉으로 아무리 만져서 알려 해도 알 수 없었던 황홀하게 타오르는 저녁노을을 보고 싶다.
그 다음 둘째 날, 아침엔 일찍 일어나서 뒷산에 올라가 밤과 낮이 구별되는 장엄한 일출을 보고 싶다.
산을 내려오면서 진주알처럼 영롱한 아침 이슬과 하늘 높이 나는 종다리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집에 와 아침을 먹고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으로 가겠다. 그 곳에서 선사시대의 공룡들과 인류의 찬란한 유적을 보고 오후가 되면 미술관으로 가겠다.
유명한 화가들이 그려 놓은 아름다운 그림들, 조각품들, 내 손가락 촉각으로 아무리 알려 해도 알 수 없었던 신비한 색깔의 하모니를 감상하겠다.
그러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나는 나의 영혼의 씨앗을 싹틔워 준 매력적인 책들을 보고 싶다.
신기하게 나열된 알파벳의 조화나 그 속에 간간이 끼어 있는 컬러 사진들을 보다가 또 하루가 지날 것이다.
마지막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새로운 아름다움의 계시와 새 즐거움을 발견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처음에 나는 바쁜 거리의 골목에 서서 사람들이 어떻게 그들의 일상을 시작하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들을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겠다.
사람들의 입가에서 미소를 본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고
사람들의 얼굴에서 심각한 각오를 본다면 나는 자랑스러울 것이고
사람들의 얼굴에서 슬픔을 본다면 나는 동정을 금치 못할 것이다.
다음에 나는 뉴욕 번화가인 5번 가로 걸어 나와 어떻게 특별한 목적도 없이 단지 색깔의 요지경을 보고 싶다.
내가 확신하건대 군중 속에서 움직이는 여성들의 옷 색깔은 내가 결코 지치지 않을 탐스럽고 어지러운 장면이 될 것이다. 나는 또 외국 여행을 대신 하여 외국인 주거지에 가서 관광을 하겠다.
나는 그곳에서 우리와 다른 그들의 문화와 생활 습관을 배울 수 있을 것이고 더 깊게 그들의 문제를 탐구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덧 오후가 되면 영화관으로 뛰어가겠다. 영화관에서 나는 유명한 배우들의 멋진 연기를 보겠다. 내 손가락 끝으로 아무리 만져도 알 수 없었던 대형 화면에 비추어지는 총천연색 화면들을 감상하고 싶다.
그러다 밤이 되면 나는 찬란한 네온사인이 반짝거리는 건물 숲을 걸으며, 쇼윈도에 진열된 아름다운 상품들을 보면서 집에 돌아 온 후, 내가 다시 눈을 감아야 할 시간이 되면 지난 삼일 동안만이라도 이 세상을 볼 수 있게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영원한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헬렌켈러는 그녀의 소원에도 불구하고 단 3일의 볼 수 있는 기회마저 신으로부터 부여받지 못했으나 그의 글과 생각은 두 눈을 다 가진 사람보다 더 예리하게 사물을 관찰하고 그리고 있다.
헬렌켈러는 오히려 두 눈을 다 가지고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충고를 하고 있다.
“마치 내일이면 눈이 멀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당신의 눈을 사용하도록 하십시오. 이러한 방법은 당신이 지닌 다른 모든 감각들에도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즉 내일이면 귀가 멀 지도 모른다는 듯이 음악을 감상하고, 새들의 노래 소리를 듣고 오케스트라의 멋진 하모니를 음미하도록 하십시오.
내일이면 촉각이 없어져 버릴 듯이 조심스럽게 모든 물건들을 만져 보십시오. 내일이면 이제 다시는 냄새도 맛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꽃들의 향기를 맡아 보고 온갖 음식의 한 숟가락 한 숟가락을 맛보도록 하십시오. 모든 감각을 최대한으로 사용해 보십시오.
그리하면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과 기쁨과 그 안에 깃든 하나님의 영광이 당신 앞에 드러날 것입니다.”
헬렌켈러는 다 가졌으면서도 가진 것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을 오히려 불쌍하게 생각했다.
“때때로 나는 볼 수 있는 내 친구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물어 보곤 해 왔다. 최근에 나는 한참 동안 숲 속을 산책하고 방금 돌아온 친구에게 무엇을 발견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녀는 "별로 특별한 게 없었어."라고 대답했다. 한 시간 동안이나 숲 속을 산책하면서 아무것도 주목할 만한 것이 없었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하고 나는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았다.
아무것도 볼 수가 없는 나는 단지 감촉을 통해서도 나를 흥미롭게 해 주던 수많은 것들을 발견한다. 나는 잎사귀 하나에서도 정교한 대칭미를 느낀다. 나는 손으로 은빛 자작나무의 부드러운 표피를 사랑스러운 듯 어루만지기도 하고 소나무의 거칠고 울퉁불퉁한 나무껍질을 쓰다듬기도 한다. 봄이 되면 자연이 긴 겨울잠을 깨고 나오려는 첫 번째 몸짓인 새 싹과 새 눈을 찾아보려는 희망으로 나는 나무줄기들을 더듬어 본다. 이따금씩 매우 운이 좋은 경우 조그만 나무 가지 위에 살며시 손을 대었을 때,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새들의 행복한 떨림을 느낄 수가 있다.”
** 그녀는 앞도 못보고 듣지도 못하고 말도 하지 못했던 사람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모든 기관을 다 기진 사람을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한 삶을 살았으니 행복이란 무엇을 가졌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