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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심(落心), 어떻게 다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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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심(落心)은 한자의 의미로는 떨러질 ‘落’ 마음 ‘心’, 즉 어떤 일로 인하여 마음이 절벽에서 떨러지듯 떨어져서 기운을 잃은 상태를 말한다. 또 다른 한자 용어로는 “절망(絶望), 낙담(落膽), 낙망(落望)” 등의 유사 용어들이 사용된다. 삶의 소망을 잃어버려 마음이 좌절을 경험하는 것으로서 희망과 기대가 없을 때, 인간은 낙심하게 된다. 영어로 낙심은 discouragement라고 하는데 이는 ‘아니다’ 또는 ‘반대'를 의미하는 접두어 dis와 용기를 뜻하는 courage가 합해져서 생긴 단어로 용기를 잃어버리는 것이 낙심이라는 의미이다. 

구약성경에서 낙심이라는 단어는 욥기 23장 16절에서 “하나님이 나로 낙심(마음, 중심)케 하시며....”에서 발견된다. 또 신명기 1장 28절에 “우리가 어디로 갈꼬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로 낙심(녹다, 소멸하다)케 하여 ....”라고 기록하고 있다. 욥기 6장 29절에는 “거기 와서는 바라던 것을 부끄리고 낙심(부끄러운 마음이 들다)하느니라.” 다니엘 11장 30절 “그가 낙심(슬퍼하다. 무서워하다)하고 돌아가며 ....” 민수기 32장 7절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으로 낙심(피하다)케 하여서 ....” 예레미야 애가 3장 20절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가라앉다)이 되오나 ....”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신약성경에서는 낙심은 골로새서 3장 21절에 아듀메오(낙심하다. 실망하다. 정신이 없다), 누가복음 18장 1절에 엑카케오(약하게 되다. 나쁘게 되다. 실망시키다), 히브리서 12장 3절에 카메테(노력해서 지치다. 싫증으로 지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신구약 성경에서 발견되는 의미로 낙심은 “노력을 하여 어떤 일을 기대하며 했으나 원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결과를 얻게 됨으로써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의욕을 잃고 슬퍼하며 실망하는 마음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낙심하게 되는 원인은 수고한 것에 비해서 또는 기대한 것에 비해서 성과를 얻지 못했을 때, 낙심하게 된다. 국어 사전에 보면 낙심은 “바라던 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마음이 상하게 되는 상태”라고 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바라던대로 다 이루게 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낙심은 자신의 삶에 있어서 전혀 발생해서는 안될 일이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것은 크게 착각하는 것이다. 문제를 해쳐나갈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고통과 슬픔이 너무 극심할 때, 낙심하게 된다. 마귀는 사람의 마음 속에 낙심하게 하여 사람을 쓰러뜨린다. 누구든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예외없이 절망하게 되는 일들이 생길 것이다. 

미국 Ohio(오하이오)주립대학교 정신과와 심리학과 공동연구팀은 미국의 건강의학전문지 “성격과 사회심리”에 비관적 염세성이 인간의 만수무강에 훨씬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표했다. 이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중년을 상대로 조사한 이 팀의 결론은 걱정과 스트레스를 줄이고 건강하게 살려면 비관적 생각을 피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낙천성과 비관성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낙천적인 성격도 비관적 부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무조건 잘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믿기보다는 사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줄이는 것이 정신적 건강에 이르는 길이다. 연구팀은 우선 대상자들의 낙천적 사고와 비관적 사고의 정도를 측정하고 1년 후 행복의 정도를 재보았다. 결과는 비관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스트레스와 불안에 시달리는 경우가 낙천적 사고를 하는 사람보다 더 많거나 건강이 나쁘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았다. 종래 일부 학자들은 타고난 성격이 낙천적이라면 환경이 어렵더라도 계속 그런 생각과 태도를 유지한다고 생각했지만 이 연구팀은 낙천성은 고정된 성격적 특성이 아니라 환경의 영향을 받아 바뀔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포기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도 자신을 포기하게 되면 뇌에서 특수한 호르몬이 분비되어 면역체계의 기능을 저하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현재 상황에서는 아무리 낙천적인 사람이라도 우울, 불안, 적응장애가 나타날 수 있으므로 열등감, 패배감에 집착하지 말고 노력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 방법으로 (1)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도록 노력하고 가능하면 장점을 살리는 쪽으로 미래를 설계한다. (2)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이 아니라면 부정적 비관적 생각이 찾아들 때, 가벼운 운동이나 가족 또는 친구와의 대화로 환경을 바꿔본다. (3) 실패는 새로운 도전과 발전을 위한 기회임을 명심한다. (4) 가장이 어려움에 처했다면 가족 모두가 지지와 격려를 보낸다. 짙은 가족애는 역경을 헤쳐나가는 가장 큰 힘이 된다. 

낙심을 오래 간직하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는 낙심의 인격이 자리 잡게 된다. 그러므로 낙심이 자신의 생각에 자리 잡지 않도록 빨리 떨쳐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사단의 인격이기 때문에 계속 가지고 있다가는 누구든지 사단의 인격을 형성한 후, 멸망하고 말 것이다. 사단은 이것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좌절의 늪에 빠뜨리고, 자살하게 하고, 죽였는지 모른다. 

낙심하게 되면 사단은 그 사람의 생각 속에 낙심으로부터 헤쳐 나올 길이 없다는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여 인생을 좌절과 파멸로 몰아 넣게 하므로 절대로 사단의 거짓말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된다. 그리고 낙심으로부터 헤어나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한다. 로마서 12장 12절에는 “환난 중에 참으로 기도에 힘쓰며....”라는 말씀대로 낙심 상황에서 하나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도우심을 받기 위하여 겸손히 기도하는 데서부터 치료가 시작된다. 

낙심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낙심의 자리를 박차고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 누구도 자신의 낙심된 마음 상태를 일으킬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자기 자신이 일어나지 않으면 못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낙심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말하기를 “스스로 못 일어나니까 문제지요!” 그러나 누구도 그를 대신 일으켜 줄 사람은 없다. 행복과 불행의 감정은 어떤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행복을 주셔도 자신이 불행이라고 생각하면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낙심이다. 

우리는 누구나 낙심하게 되는 상황이 있다. 자신의 삶에 낙심할 일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생각이며, 자신만이 낙심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외로움과 괴로움이 더욱 가중될 것이다. 내적으로 많은 상처를 받은 사람은 내적 치유를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담자가 찾아왔을 때, 깊은 수렁에 빠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내담자를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담자가 겪는 것과 동일한 경험을 해 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커다란 차이가 있게 된다. 상담에서 가장 힘있는 말은 “저도 전에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라는 말일 것이다. 그 자체가 내담자를 위로하며 치료와 회복을 유도하는 힘이 된다. 

미국에서 낙심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광고문이 신문에 실려있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초등학교를 중퇴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시골에서 구멍 가게를 개업했지만 곧 파선했고, 빌린 돈을 갚는 데만도 15년이나 걸렸으며 상원의원에 입후보했지만 2번이나 낙선했고, 하원의원 선거에도 2번씩이나 떨어져 신문은 그를 형편없는 사람으로 악평한 바도 있었지만 그가 죽은 지 100년이나 흘렀지만 전 세계의 사람들이 그에게서 용기를 얻고 있다. 그 사람이 바로 Abraham Lincoln(에이브라함 링컨)이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은 링컨을 생각할 때, 다소간의 위로를 얻을 것이다. 낙심했던 상황을 극복한 사례들을 접하게 되면 많은 위로가 되는데 이러한 사례는 성경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우리의 신앙의 선진들도 한결같이 낙심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대표적으로 욥을 꼽을 수 있는데 그는 아내가 자신을 떠나가 버리고, 자식들이 모두 사고를 당하여 세상을 떠나고, 가진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병들어서 기왓장으로 몸을 긁는 상황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친구들이 욥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욥은 병든 자였다. 그는 스스로 고백하기를 “왜 내가 태어났던가? 어머니 뱃속에서 사산되어 태어날 껄 ....” 이라고 낙심했었던 자였다. 

다윗도 낙심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시편 42편 5절에 고백하기를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라고 고백했다. 

낙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마음과 소망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다. 고통은 영원히 가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은 잠시 잠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미국의 경제공황 시기에 있었던 일로, 한 의사가 병원을 개업했는데 경제가 너무나 어려워서 환자들이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치료비가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던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병원 문을 닫어야 했던 의사가 있었다. 그는 좌절과 절망 가운데 있었는데 어느 날 밤에 그의 두 자녀가 그의 품에 안기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빠! 거리가 어두워질 때까지 별은 볼 수 없지요? 그렇지요?” 이 말이 그의 마음 속에 와 닿기 시작했다. “그렇다! 나는 지금 어두워진 환경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밤과 같은 자신의 환경 속에서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빛을 발견하고 비로소 일어설 수 있었다는 간증을 들어 볼 수 있었다. 

낙심할 때, 위를 바라보면, 즉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면 새로운 빛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위엣 것은 하늘의 신령한 것이다. 낙심될 때가 바로 위엣 것을 찾을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이다. 이럴 때에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마음에 두고, 하늘을 쳐다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낙심이라는 단어를 성경에서 주목하여 보면 상황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낙심은 마음에 관한 문제이다. 그래서 성경의 잠언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잠언 4장 23절에서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기록했다. 

다윗도 낙심했던 적이 많이 있었다. 시편을 보면 그의 고백의 대부분은 그가 처한 환경에 대해서 고백적으로 표현한 것들이다. 그는 사울에게 쫓기어 고난의 연속 가운데 젊은 날의 오랜 기간을 힘든 여정 속에 보냈다. 그의 고백을 보면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런 힘든 고백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렵고 힘든 상황 가운데 안주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가운데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내 하나님이여!” 낙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쳤다. 

사도 바울은 낙심할만한 것들이 그에게 많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고린도전서 4장 8절에 기록한 것과 같이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라고 고백하면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을 확신했다. 또한 바울은 건강의 문제가 있었는데 성경에 분명한 진술이 없어 잘 알 수 없지만 간질병이라는 학설이 있다. 그는 이것을 해결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여러 차례 기도해 보았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바울은 낙심할만한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여 낙심을 극복했다. 

낙심을 적극적으로 물리치기 위해서는 찬송해야 한다.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 때, 찬양함으로써 옥문이 열렸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찬송할 때에 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암울한 세력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써 낙심을 대적해야 한다. 이 때, 낙심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면서 낙심을 물리쳐야 한다. “하나님! 제가 낙심하게 되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시지요? 제가 낙심하지 않고 늘 용기를 갖고 살기를 원하시지요?” 주님의 뜻을 물으면서 낙심하지 않고 건강하며 용기를 갖는 자신의 모습을 마음 속으로 그려야 한다. 아울러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 5:8-9).” “너희는 열매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엡 5:11).”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는 말씀대로 자신의 마음을 낙심으로 인해서 흔들어 놓으려는 악한 영(evil Spirit)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하고, 책망하며, 물리쳐야 한다. 

하지만 한 번 낙심을 대적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음에는 더 고차원적이고 지능적으로 사단이 우리를 위기에 빠뜨려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을 분산시키고 하나님으로부터 이격시킬 것이다. 낙심에 압도되어 하루 하루를 살다보면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모습이 흐려지고 그 음성도 점점 작아지게 된다. 그럴 때, 마다 계속적으로 낙심을 대적해야 한다. 이것은 대단히 실제적인 것이어서 마귀를 대적할 때에 낙심의 마음이 물러가게 될 것이다. “나를 낙심하게 하는 영! 나는 그리스도의 평안과 용기를 가질 권세가 있다. 이것을 앗아가는 영! 나를 낙심하게 하여 쓰러뜨리려는 너의 궤계에 나는 빠지지 않을 것이다. 너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묶임을 받고 쫓겨날지어다!” 이와 같이 마음이 낙심될 때마다 외치고 선포하며 대적하면서 성령을 의지해야 한다. 이러한 논박과 대적이야말로 낙심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성경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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