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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의 드려야 할 이유와 써야 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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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시대의 십일조의 정의 현시대를 사는 성도들은 십일조에 관한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십일조는 내가 주인이냐 하나님이 내 주인이냐를 인정하는 것이다. 말로만 하나님이 주인이라 하지만 물질로도 주인의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서 십일조에 관한 문제를 자세히 검토해 보자. 구원받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의무 가운데 하나가 십일조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를 왜 드리도록 했으며 십일조는 어떤 곳에 써야 하는지 그 용도, 그 목적 등을 자세히 검토해 보자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를 원하며 땅에 있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사람이 번성한 후에도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고 그 주권을 인정하게 하기 위하여 에덴동산에 선,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두시고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대대로 내려오면서 만물을 하나님이 다 창조하셨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하신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이 자기를 창조한 창조주임을 알지만 그 후손들은 하나님을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자손들까지도 하나님을 알도록 하는 방법으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두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도록 한 것이다 

세 가지의 주권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주권을 인정하도록 하는 두 가지의 방법을 주셨다. 
그중 하나는 선악과요 하나는 안식일이다. 그리고 첫 소산물과 동물의 새끼와 첫 아들을 구별하는 것이 십일조다.


1. 모든 물질은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인정하는 표로 선악과를 주셨으며  
2. 모든 날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게 하기 위하여 안식일을 주셨다.

3. 모든 첫 것은 하나님의 것이이다. (유월절 사건을 기억하라)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죄를 범하게 되자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을 추방했을 지라도 멸망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구원의 계획을 주셨으며 계속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도록 십일조를 드리게 했고 날 가운데 하루를 쉬도록 하므로 계속적으로 아담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창조주임을 믿게 했던 것이다. 모든 날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모든 물질의 주인도 하나님이시다.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행위의 표인 것이다.

기록된 십일조의 기원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창14:20)


성경에서 최초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역사를 볼 수 있는데 아브라함은 조카 롯의 일로 전쟁을 하게 되었고 그 전쟁에서 승리하고 도라 올 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댁을 만나게 되자 자기가 얻은 것에서 십일조를 들였다 모세 이전에는 계명이 없었으나 아브라함은 계명을 지켰다고 기록되었으며 그는 멜기세덱을 만났을 때 십일조도 드렸다.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창26:5)
아브라함은 모세보다 400년 전의 사람이지만 그 때도 계명을 지켰다. 그러나 그 때에는 성문화 된 계명이 없었지만 계명을 지킨 것을 볼 때 아브라함 이전에도 하나님께 대한 여러 가지 규례와 계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모세 이전에는 아버지가 자녀에게 전해주는 방식으로  구전을 통하여 계명을 지켰는데 출애굽 후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을 받음으로 계명이 성문화된 것이다.

야곱의 십일조
계명이 없을 때도 야곱은 십일조를 드렸다(창28:20-22)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은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돌아가게 하시오면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반드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하였다. 십일조란 어떤 것인가 십일조란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요 또한 나를 지키시고 나의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시는 분이시며 나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이심을 인정하는 표다.   
  
(2) 십일조를 드리는 이유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신14:22)


십일조를 왜 드려야 하는가? 
첫째로 십일조는 하나님이 명하셨기 때문이다.                              
십일조는 자기가 수고하여 제물을 얻었으나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얻게 해 주심으로 얻었다고 하는 것을 인정하는 표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재물을 얻었을 때 어떻게 얻었다고 생각하는가?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일을 잘해서 얻었다고 생각하며 자기의 머리가 다른 사람보다 좋고 능력이 있어서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성경은 그런 일에 대하여 책망하고 있다.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신8:17)  그렇다 사람들은 돈을 벌게 되면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 우리가 재물을 얻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얻게 해 주셨기 때문에 얻은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 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신8:18)  그렇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제물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재물이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인정하는 표로 십일조를 드리도록 하였다. 

십일조는 누구의 것인가?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레27:30) 
그렇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 중에 아홉은 우리에게 쓰도록 하고 특별히 하나는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바치라고 한다.  소나 양의 십분의 일은 어떻게 드리는가? 짐승의 십일조는 막대기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째마다 드린다.


“소나 양의 십분 일은 막대기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째마다 여호와의 거룩한 것이 되리니” (레27:32) 
왜 우리가 십일조를 들려야 하는가? 우리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명하셨기 때문이며 둘째로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레27:30)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이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 그리고 십일조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 된다. 

십일조의 사용 처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기 위하여 십일조를 요구하시는가?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십일조는 회막에서 일하는 일꾼들의 보수라고 하셨다.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민18:21)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십일조를 통해서 살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십일조를 바치도록 하여서 그것으로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이 생활하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성소에서 일하는 일꾼들의 보수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누구에게 주셨는가?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준 고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민18:24) 하나님은 십일조를 성소에서 봉사하는 레위 인들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레위 인들은 육신의 기업이 없도록 하였다. 십일조를 받는 자들은 자기사업이 없으므로 전적으로 성전과 관계된 일만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레위인에게 십일조를 주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민18:21) 경은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어서 회막에서 수고한 대가를 갚는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십일조는 레위인들이 성전에서 봉사한 노력의 대가 곧 일한 것에 대한 대가란 말이다. “너희와 너희 권속이 어디서든지 이것을 먹을 수 있음은 이는 회막에서 일한 너희의 보수임이니라” (민18:31)십일조는 성전에서 일한 자에게 보수를 주시기 위해 제정한 것이다.

 

“회막에서 일한 너희의 보수”그런데 십일조를 받는 자들에게 한 가지 중요한 기준이 세워져 있는데 그것은 자기의 기업이 없어야 한다. 즉 목사는 육신의 사업장이 없는 사람이라야 된다는 말이다. 만약 목사가 육신의 사업장에서 수입을 얻을 경우 십일조를 받아서는 안 된다. 십일조는 성전에서 영적인 일을 한 것에 대하여 하나님이 대가로 주시는 것이다. 

십일조의 남용
십일조의 일부를 가지고 감사예물을 드릴 수 있는가? 
없다. 왜냐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지 자기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얻은 수입이라 할지라도 자기의 마음대로 십일조를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십일조를 건축헌금으로는 들일 수 있는가? 아니다 십일조는 건축 헌금으로도 들일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를 나누어 감사예물이나 건축예물로 드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십일조는 거룩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내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자기의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십일조를 가지고 감사예물이나 건축헌금이나 선교헌금을 해서는 안 된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건축을 위하여 십일조 외에 다른 예물을 드렸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일이 이러하니라 이르시기를,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및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드는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출35:4-9, 36:8)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의 예물들을 드렸다.


그러나 건축 헌금을 의무적으로 드린 것이 아니다. 모세는 저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라고 하셨다. 그렇다 건축헌금은 마음에 원하는 만큼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십일조는 마음에 원하는 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의무적으로 드려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성막을 지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지고 있는 좋은 것을 가져다가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데 들이라고 했다 그때 백성들은 자원하여 건축헌금을 들였는데 넘치도록 들였다. 그러나 십일조를 가지고 건축헌금을 드린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저들은 십일조 외에 별도의 헌금을 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가지고 건축헌금을 들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 십일조를 가지고 건축헌금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도적이다. 당신이 아버지가 어떤 곳에 쓰려고 하는 돈을 아버지 모르게 훔쳐다가 다른 곳에 쓴다고 가정해 보라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그렇게 해도 당신의 아버지가 당신을 좋아하겠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건축을 위하여 예물을 드릴 때에 어떤 마음으로 드렸는가?  그들은 자원하는 마음과 즐거운 마음으로 들였다  “백성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하여 가져오는 고로 성소의 모든 일을 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각기 하는 일을 정지하고 와서 모세에게 고하여 가로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의 명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모세가 명을 내리매 그들이 진중에 공포하여 가로되 무론 남녀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정지하니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 (출36:3-7)


이스라엘백성들은 십일조 외에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건축헌금을 들였는데 너무나 많이 가져와서 헌금을 중단시켰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가지고 건축헌금을 들이도록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 외에 별도로 건축헌금을 드리도록 하시며 그 헌금을 드릴 때에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기를 원하신다.
  
  특수한 십일조
이스라엘백성들은 일반적으로 드리는 십일조 외에 어떤 십일조를 드렸는가?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신14:28)  이스라엘백성들은 수입이 생길 때 마다 십일조를 드리는데 그 외에 3년에 한 번씩은 특별한 십일조를 들였다. 이 십일조는 무엇 하기 위하여 드리도록 하였는가? 이 3년에 한번씩 드려지는 십일조는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특수하게 들였다.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14:29)  


“제 삼 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신26:12)  


많은 사람들이 십일조의 사용에 대해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위에서 보는바와 같이 십일조를 가지고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십일조는 3년에 한번씩 드려지는 특수한 십일조이다. 이 3년에 한번씩 들여지는 십일조는 특별히 성중에 우거하는 객이나, 고아나. 과부, 가난한 자들과 기업이 없는 자들이 누구나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우리가 드리는 십일조는 3년에 한번씩 드리는 십일조가 아니라 매년 드리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3년에 한 번씩 특별한 십일조를 드리도록 했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들여지는 십일조가 아니다. 특별한 십일조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가지의 십일조만 드린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십일조를 드렸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성전에 드리는 십일조 외에 어떤 십일조를 드려야 했는가?
우리가 국가에 세금을 내는 것 같이 이스라엘은 국가를 위해서도 십일조도 들였다.  삼상 8:10 사무엘이 왕을 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일러 가로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가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취하여 그 병거와 말을 어거케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그가 또 너희 딸들을 취하여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굽는 자를 삼을 것이며 그가 또 너희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의 제일 좋은 것을 취하여 자기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취하여 자기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너희 양떼의 십분 일을 취하리니 너희가 그 종이 될 것이라(삼상8:10, 17)


사무엘은 하나님이 반대에도 불구하고 왕을 기어이 세우려는 자들에게 너희가 왕을 세우면 일반 십일조 외에 국가에도 십일조를 내야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왕을 세운 후에 너희가 국가를 위하여 십일조를 이중으로 내게 될 때 못살겠다고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응답치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 십일조는 레위인에게 주는 십일조가 아니라 국가를 위하여 왕에게 내는 십일조 인 것이다. 그래서 사무엘은 이렇게 부담스러워도 왕을 세우려면 세워라. 그러나 너희가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기어이 왕을 세우므로 이중 삼중으로 십일조를 내야 했던 것이다.


그러면 국가에 내는 십일조는 누가 쓸 것인가? 
 “너희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취하여 자기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삼상8:15)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 하면 똑같은 것인 줄 알고 성경에 고아와 과부들을 위하여 쓰라고 했다고 하면서 십일조를 가지고 구제를 해야 한다고 하는 자들도 많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잘 모르는 무지에서 온 것이다. 성경에는 세 종류의 십일조가 있다.


 하나는 모든 수익의 십일조인데 그것은 레위인들이 성소에서 봉사할 때 그 일한 보수로 주는 것이며, 두 번째는 3년에 한번씩 들이는 십일조인데 그것은 나그네와 객과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자들을 위한 것이며, 세 번째는 국가의 세금으로 바치는 십일조인데 그것은 왕으로부터 시작하여 정부에서 일하는 모든 관리들이 쓰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이 없는 자들은 십일조하면 똑같은 것으로 알고 십일조를 가지고 구제나 건축이나 여러 종류의 곳에 쓰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모든 십일조가 똑같은 것이 아니다. 분명히 십일조가 구분되어 있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이스라엘은 국가 자체가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요, 왕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국민에 이르기 까지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하신 성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국가에 바치는 세금이나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한 모든 자금을 특수하게 내는 십일조를 가지고 사용하도록 하였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이스라엘은 세 종류의 십일조를 드렸다.
성전을 위한 십일조, 구제를 위한 십일조, 국가를 위한 십일조 
그러나 구제나 국가를 위한 십일조는 성전에 드리는 십일조의 것을 떼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별도로 십일조를 정해서 구제나 국가를 위해 드렸던 것이다. 즉 국가를 위한 십일조는 일종의 국세를 말하는 것이며 3년에 한 번 드리는 십일조는 구제 헌금이다.


만약 레위인을 위해 드리는 십일조를 나누어 버리면 레위인이 살수가 없다. 그리고 국가를 위한 십일조나 구제를 위한 십일조는 마음대로 쓸 수 있지만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는 성막에서 봉사한 수고의 대가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는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곳에 쓰는 것은 주어야할 인금을 가로채는 행위요 횡령인 것이다.

신약의 십일조
구약시대에는 성막에 봉사하는 레위인들이 있어서 십일조를 드렸지만 신약시대에도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신약시대는 십자가로 율법이 다 폐지됐는데 무슨 십일조를 드리느냐고 한다. 그러나 신약에서도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


왜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가? 
1. 예수님이 드리라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마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예수님께서는 바리세인들을 책망하시면서 너희가 십일조는 잘 드리면서 더 중한 믿음은 버렸다고 하셨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믿음도 행하고 십일조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므로 신약시대에도 역시 성경에서 명한대로 십일조를 들려야 됨을 말씀하셨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십일조를 드려야한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오셔서 율법을 다 패하셨기 때문에 십일조를 드릴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사상이다. 
왜 신약에서도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가? 신약에서도 구약에서와 같이 성전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있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 십일조는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들이 자기의 기업이 없이 성전의 일을 하기 때문에 그 대가로 십일조를 주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도 역시 목사님들이 자기의 기업이 없이 오직 복음만을 위하여 일해야 하기 때문에 십일조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믿음도 가지고 십일조도 버리지 말라고 하셨다.


구약시대에 성전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은 것 같이 신약시대에서도 하나님의 성전에서 복음을 위하여 일해야 하기 때문에 성전에서 나는 십일조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도 반드시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율법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 끝났는데 왜 십일조를 드려야 하느냐고 반문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신약시대에도 하나님만을 위하여 일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십일조를 드려야 된다고 명하셨기 때문에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 
마10:10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자기의 사물을 가지지 말고 가라고 하시면서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은 마땅하다고 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사역자들이 주머니나 두벌 옷을 가지면 안된다 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사역자들이 복음을 위하여 일하고 있다면 지기의 것을 가져다가 쓰지 말고 성도들이 주는 것을 먹고 일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목사는 두벌 옷도 없이 가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구약의 레위 인들은 백성들보다 20%를 더 쓰도록 하나님께서 책정 하셨다.


십일조란 평민은 10에서 1을 뺀 후 9를 먹고 레위인들은 열한 지파가 드리는 11을 먹었다 그러므로 레위인들은 일반 백성들보다 더 먹도록 하나님께서 법을 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목사는 두벌 옷도 가지지 말고 가난해야 한다는 논리는 잘못된 논리다. 예수님께서 지팡이나 두벌 옷을 가지지 말라 하신 말씀은 목회자들은 자기의 기업을 가지지 말고 성도들이 주는 것을 먹으라는 말씀이다. 그러기 때문에 십일조의 제도에서 레위인은 기업이 없을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의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준 고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민18:24) 그렇다 레위인은 육적인 기업이 없다. 레위인들은 하나님이 기업인 것이다. 그러므로 먹을 것을 인하여 염려해서는 안 된다. 사역자들은 하나님이 주실 것을 믿고 확신을 가지고 일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먹이실 것이다.   

십일조에 대한 권고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십일조를 드리도록 명하셨으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을 때 하나님은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자를 도적이라고 하였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말3:8)


말라기 선지자는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자를 도적이라 했다. 그렇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도적이다. 왜 도적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십일조는 내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죄가 되는 것이다. 십일조가 하나님의 것이므로 드리지 않을 때 도적이라고 한다면 십일조를 잘못 쓰는 것도 도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일조에 대한 중대한 문제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드려진 십일조를 어떻게 쓰느냐하는 것인데 십일조가 하나님의 것이므로 드리지 않을 때 도적이라 한다면 드려진 십일조를 잘못 쓰는 자는 무엇이라 해야 하는가? 그것도 역시 도적이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십일조가 하나님의 것이므로 드리지 않을 때 도적이라 한다면 십일조를 잘못 쓰는 것도 도적이다. 그러면 십일조는 어떤 곳에 써야 하는가? 십일조는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주는 보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다른 목적에 쓰는 것은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주어야 할 노임을 횡령하는 죄가 되다. 

잘못된 십일조의 사용
십일조는 원래의 하나님이 제정하신 그대로 바른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하여야 하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십일조를 다른 목적에 쓴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죄가 된다. 십일조는 성전 건축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요, 구제를 위해 쓰는 것도 아니다. 성경에 건축을 위해서는 건축헌금이 따로 있었으며 구제를 위해서도 구제헌금이 따로 있다. 그러기 때문에 십일조는 십일조의 원래 목적을 위해 사용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큰 교회에서 십일조를 다 쓰지 못하면 작은 교회 사역자들을 위하여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거의 100%가 다른 목적에 사용되어지고 있다. 어떤 교회는 그것을 가지고 땅을 사고, 어떤 교회는 그것을 가지고 건축을 하는 등 제멋대로 쓰고 있다.이 세상에서 어떤 회사 사장님이 사원들의 인건비를 가지고 마음대로 써버린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사장이라도 제멋대로 노임을 사용했다면 그것은 횡령죄가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이 목회자들도 성소에서 봉사하는 자들의 노임으로 지불할 십일조를 제멋대로 사용하는 것은 횡령이다. 만약에 십일조를 원래의 목적대로 바르게만 사용했다면 이 세상에 복음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전파되었을 것이며 앞으로 그렇게 십일조를 쓴다면 이 세상에는 신속히 복음 사업이 마쳐질 것이다.    

온전한 십일조
1. 하나님은 어떤 십일조를 원하시는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온전한 십일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물질이 없어서 우리에게 십일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십일조는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들을 위하여 구별해 놓으셨기 때문에 성도는 온전하게 십일조를 들려야 하며 사역자들은 십일조를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다.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말3:10) 성경은 십일조에 과하여 말씀하시기를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 고 하셨다. 그렇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집 곧 성전의 양식이다. 성전의 양식이란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먹는 양식을 말씀하는 것인데 성전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일꾼들은 다른 기업이 없으므로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어야 한다. 만약 성전에 양식이 없다면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이 없게 되고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없게 되면 성전은 폐허로 변하고 성전은 버린바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성전의 양식을 풍족하게 만들어서 복음을 위하여 일하는 자들로 하여금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위하여 일하도록 하기위한 것이다. 성전에서 일하는 사역자들이 생활에 얽매이면 복음을 위하여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십일조를 드려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양식이 풍족하도록 하고 복음을 위하여 일하는 자들로 하여금 자유로이 일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교회의 실정은 어떠한가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넘쳐야 하는데 현재 그렇지가 못하다. 왜 그런가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되어야 할 십일조가 엉뚱한 곳으로 세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재 우리는 십일조가 바르게 쓰여 지도록 개혁을 해야 한다. 

양식이 떨어지면 파산한다.  
  십일조는 하나님 집의 양식이라 했는데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이 생활해야 할 양식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는 십일조가 창고에 넘쳐야 한다. 만약 십일조가 없을 때 어떤 문제가 일어나는가? 그것은 가정에 양식이 떨어졌을 때 일어나는 현상과 똑 같은 것이다.


어떤 가정이든지 양식이 떨어지면 그 집은 활동능력이 마비되며 양식이 떨어지면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마비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집은 일할 기력이 없으므로 파산하고 만다. 느해미야 당시에도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없으므로 성전에서 봉사하던 일꾼들이 모두 흩어져 버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은 버린바 되고 하나님을 찾는 백성들은 모두가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어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 내려졌다. 

양식이 없을 때 어떤 문제가 생겼는가?
“내가 또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의 받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그 전리로 도망하였기로”(느13:10) 느헤미야 당시에 하나님의 성전에는 제사장들이 없으므로 성소에서 제사 드리는 일이 마비되었다. 그 이유는 백성들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아 성전에서 일해야 할 레위인들이 먹을 것이 없으므로 성전을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생계를 위하여 성전을 떠났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집 성전에 양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십일조를 드리지 아니하므로 성소에서 일해야 할 레위인들이 하나는 상업차로 하나는 밭으로 모두가 떠나 버렸다. 제사장의 무리들은 스스로 먹고 살기 위해서 노동을 해야 했다. “받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이 각각 그 전리로 도망하였다. “田리란”고향 밭으로 돌아갔다는 말이다.


  공동번역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동안 레위인들은 받을 몫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레위인들은 제사 때에 해야 할 일을 버리고 저마다 밭이 있는 곳으로 가 버리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안 느헤미야는 새로운 개혁을 단행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 시대마다 하나님은 개혁자를 세우신다.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아 성전이 황폐하자 개혁이 필요한 시기에 느헤미야가 믿음으로 개혁을 단행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안 느헤미야는 새로운 개혁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시대마다 하나님은 개혁자를 세우신다.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아 성전이 황폐했는데 이런 때는 강한 개혁을 필요로 하는 시기이다 그러므로 그때 느헤미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개혁을 단행했던 것이다.
  
느헤미야의 개혁
성전의 일을 해야 할 레위인들이 성전을 떠났을 때 느헤미야는 어떤 조치를 취했는가?
“내가 모든 민장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그 처소에 세웠더니” (느13:11)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아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을 해야 할 제사장들이 다 나가버린 것을 알고 “민장” 즉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책망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십일조를 바치도록 하였다. 그때 느헤미야의 책망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가 다 십일조를 내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성전에는 양식이 채워지게 되었다.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느13:12)
느헤미야는 이스라엘백성 들로 하여금 십일조를 드리도록 하고 그 드린 십일조를 효과 있게 쓰기 위하여 특정 인물들을 세웠는데 그 이름은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 브다야였으며 그들로 창고지기를 삼고 성전에서 일하는 형제들에게 양식을 분배하는 일을 하게 하였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내 하나님이여 이 일을 인하여 나를 기억 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나의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 (느13:13-14) 하며 기도했다.


느헤미야의 개혁을 단행한 사건에 대하여 공동번역을 보면 “어찌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내버려두었느냐 하고 관리들을 꾸짖고 레위인을 다시 불러 들여 복직시켰다. 그러자 온 유대인들이 곡식과 술과 기름의 십분의 일을 일제히 창고에 가져다 바쳤다.


  느헤미야는 유대인들이 십일조를 내지 않아 성전에서 일하던 레위 인들이 성전을 버리고 모두 자기의 일터로 나감으로 황폐한 성전을 보고 유대 지도자들을 꾸짖었다. 그리고 레위 인들을 다시 불러들여 복직시키고 그들의 양식을 위하여 십일조를 바치도록 하였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십일조를 모두 바치게 되었고 성전을 떠나갔던 레위 인들이 돌아옴으로 무너진 성전은 다시 회복되었다. 이것은 현대에 사는 기독인들에게 놀라운 교훈이 되는 사건이다. 이 시대에 우리 한국에도 이러한 사명 자가 요구된다. 누가 이 일에 나설 것인가? 

개혁이 필요한 현대교회 
지금 한국의 기독교는 어떠한가? 십일조를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므로 목사님들은 생계를 위하여 육적인 일터로 나가버렸고 사역자가 없으므로 문을 닫는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가? 열려져 있던 교회 문들이 다시 닫쳐 버리고 있다. 이 시대에도 느헤미야와 같은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누가 느헤미야와 같은 개혁자가 될 것인가? 현재 우리 한국에는 이런 개혁자가 꼭 필요하다.


그러나 한 가지 지금의 우리 한국교회 실정은 느헤미야 당시의 교회 상황과는 조금 다르다. 느헤미야 당시는 백성들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므로 성전에 양식이 없어서 일꾼들이 떠났으나 지금 한국교회는 성도들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나마 성도들은 십일조를 잘 드린다. 그런데 문제는 드려진 십일조를 큰 교회들이 잘못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성전이 문을 닫고 있는 것이다. 우리 한국에 지금의 교회 형태가 어떠한가?

 

큰 교회는 십일조를 넘치게 축적해 있고, 작은 교회는 창고가 텅텅 비어서 말라 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한국 교회에도 느헤미야 당시와 같은 개혁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그때는 “민장들을 꾸짖었으나 지금은 교회의 민장 곧 대형교회의 장로나 목회자들을 꾸짖어야 한다. 현재 얼마나 많은 사역자들이 자기의 일터인 성전을 떠나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목사님들이 성전을 떠나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헤매고 있는가? 그것은 현재 십일조가 잘못 사용되어 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전에 성경에서 요구하는 올바른 십일조의 개혁이 일어났다면 한국의 교회 상황은 지금과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현재 거의 모든 목회자들은 성도들에게 십일조를 내라고 강조만 하지 드려진 십일조를 바르게 써야 된다고 하는 자는 거의 없다. 성도들이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도둑이라고 책망한다. 그러나 십일조를 잘못 쓰는 것을 보고 도둑이라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또한 그것을 도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한사람도 없다. 그렇지만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을 도적이라고 한다면 십일조를 잘못 사용하는 사람도 도적이다,

 

그렇다! 십일조를 잘못 사용한다면 그것은 십일조를 안 내는 사람보다 더 큰 도적이다. 즉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자가 바늘 도둑이라면 십일조를 잘못 쓰는 자들은 소도둑이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성경적 원칙에 따라서 바르게 사용되어 져야 한다.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은 온전한 십일조를 원하신다. 온전한 십일조란 양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합당하게 드리는 십일조를 말한다. 즉 수확에 따라서 많이 얻었으면 많이 드리고 적게 얻었으면 적게 드리는 것이다. 십일조는 적게 드린다고 미안하게 생각 할 것이 없으며 많이 드린다고 과시할 것도 없다. 십일조는 정당하게 드리고 드려진 십일조도 정당하게 사용되어야만 온전한 십일조가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십일조의 액수가 많이 들어 왔다고 해서 그것을 가지고 자기들의 마음대로 써서는 안 된다. 왜냐 십일조는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그저 우리는 하나의 청지기로서 정확한 십일조를 드리고 또한 그것을 정확하게 사용할 의무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가 십일조를 드린 후 그것이 어떻게 쓰여 지는지 하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성도가 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릴 따름이다. 십일조를 드리는 자들은 드리는 것으로 끝나고 마치 자기의 돈인양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십일조의 사용은 하나님과 십일조를 쓰는 목회자와의 관계이지 드리는 성도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의 것을 주인에게 전달한 사람이 전달한 후에까지 간섭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청지기로서 하나님이 맡긴 물건을 전달하는 것 뿐이며 그것을 간섭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바치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 사사건건 간섭하지 말고 너희의 의무나 성실히 이행하라. 십일조는 일반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 성소에서 일하는 일꾼들의 몫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한다.  

조건적인 십일조
십일조로 ‘복을 받기 위해서 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가 그러한 사상은 바꿔야 한다.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돌리는 것 뿐이라는 확고한 사상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그러한 생각으로 드렸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약속했기 때문에 십일조를 정확하게 드리는 사람들을 축복하신다. 심지어 예수를 안 믿어도 십일조를 잘 드리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를 안 믿으면서도 하나님께 십일조를 철저하게 드리므로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복을 전제로 십일조를 드려서는 절대로 안 된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가지 깨달아야 할 것은 십일조나 감사예물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지만 십일조를 자기의 마음대로 나누어서 감사예물로 드려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을 희롱하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목적에 쓰려고 구별해둔 돈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자기의 맘대로 선심을 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십일조는 선심을 쓸 수 있는 종류가 아니며 타인이 자기의 마음대로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십일조는 한 목적을 위하여만 사용 되어져야 한다.
  
공식을 벗어난 하나님의 주권
우리가 수학적인 공식으로 볼 때 10에 1을 빼면 반드시 9가 된다. 그러나 십일조는 10에서 1을 빼도 9가 되지 않고 10도 되고 100도 되고 만도 된다. 십일조는 숫자를 분명히 뺏는데도 수가 더 많아지는 것이다. 누구든지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 보라. 그리하면 당신의 계좌에 들어있는 돈이 수학적인 원칙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즉 십일조를 드리고 나중에 결산하면 그 수가 더 늘어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반대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면 원래 계산상의 수자가 더 줄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세상 물건을 도둑질하면 정죄 받고 감옥에 간다. 세상에서 남의 것을 도둑질하면 반드시 처벌을 받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십일조를 도둑질하는 사람들도 반드시 처벌을 받게 됨으로 십일조를 자기의 마음대로 쓸 때는 처벌이 있음을 각오를 해야 한다.


십일조를 잘 드리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말3:11)


  성경은 십일조를 잘 드리는 사람들의 사업에 황충을 금하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해 주신다고 하셨다. 그렇다! 십일조를 잘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있게 되면 성전에 일꾼들이 머물러 있게 되고, 그들이 성소의 일을 잘 하게 됨으로 백성들은 복을 받게 되며 하나님께서 모든 재앙을 막아 주셔서 복이 임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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