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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4. 미갈의 경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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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seman
댓글 0건 조회 287회 작성일 22-01-22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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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4. 미갈의 경멸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삼하 6:16, 20)

다윗의 아내 미갈은 다윗이 법궤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광경을 보았다. 하나님의 구원과 인도와 명령을 받은 사람들과 함께 흥겹게 어우러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미갈은 이 일로 다윗을 업신여겼다. 나중에는 경멸했다.

미갈로서는 다윗이 좀 더 왕다운 품위를 지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나라 왕들이 하는 것처럼 왕이 섬기는 신상을 세우고 화려하고 장엄한 궁궐을 짓고 왕답게 보일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갈에게 하나님은 단지 사회적 편의 장치, 정치적 통합 조직의 구심점에 불과했다.

미갈은 다윗의 춤을 보고 처음에는 당황했고 나중에는 경멸했다. 다윗의 춤이 막춤이 아닌 최신 유행의 춤이었다면 미갈의 평가가 달랐을까?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다. “귀먹은 이들은 언제나 춤추는 이들을 경멸하게 마련이다” 음악 없이, 추임새도 없이 춤사위만 본다면 어떤 춤이라도 우스꽝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생명을 접하지 못한 미갈,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지 못한 미갈은 귀먹은 사람과 다름없다.

만약 미갈이 웃사와 함께 법궤 옆을 걷고 있었더라면 흡족했을 것이다. 품위 있고 고상하게 한편으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걷고 있는 웃사, 그러나 사실상 죽어 있는 웃사와 미갈은 같은 사람이다. 미갈은 법궤 앞에서 춤추는 다윗을 경멸했다. 아무것도 개의치 않고 신경 쓰지 않고 염려하지 않고 그저 전심으로 찬양하는 다윗, 참으로 살아있는 다윗을 경멸했다.

다윗은 그런 미갈에 대해서 뼈아픈 말을 한다.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삼하 6:21)

우리는 사람이나 하나님을 조종하려고 하면 안 된다. 근엄하고 고상하게 누군가의 관리 책임자 행세를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만물을 관리하고 다스리라고 한 것에서 인격적인 존재는 포함되지 않았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충만히 살아 있으면 되고, 동료 인간에 대해서는 협력과 돌봄, 존중으로 함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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