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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도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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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타니 오사무’의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란 내용 중의 ‘괜찮아’란 글입니다.

"저, 도둑질한 적 있어요."
괜찮아.
"저, 원조교제했어요."
괜찮아.
"저, 본드 했어요."
괜찮아.
"저, 죽으려고 손목 그은 적 있어요."
"저, 공갈한 적 있어요."
"저, 학교에도 안 가고 집에만 처박혀 있었어요."
괜찮아.
어제까지의 일들은 전부 괜찮단다.
"죽어버리고 싶어요."
"죽어버리고 싶어요."
하지만 얘들아, 그것만은 절대 안 돼.
오늘부터 나랑 같이 생각을 해보자.

도둑질 한 놈이 정말 나쁜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의 실 수 일 수 있습니다.
본드하고, 마리아나 피우고... 정말 나쁜 아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의 실수로 나쁜 꾐에 빠져있을 수 있습니다.

이들이 모두 다 우리의 아이들인 것입니다.

이들이 보고 느끼고 생활하는 것들이 모두다 ‘다’그런 것들인데, 어디서 배우겠습니까?
마음에 감동이 없고, 이기적인 모습들만 가득 들어있는데 어떻게 선한 것들이 나올 수 있습니까?

우리는 어느덧 어른이 되어서 우리 아이들 보다 더 나쁜 짓을 많이 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괜찮다’고 말을 합니다.
자신은 마음의 무서운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눈에 보이는 아이들을 나무랍니다.

지금 죄에 걸려든 사람들 보다 나는 깨끗하다 자만할 수 있습니까?
스스로 마음의 도둑질을 얼마나 많이 저질렀는지, 혹시 잊고 사는 것은 아닙니까?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삶, 예수님을 알지 못한 인생은 어떻게 살아도 잘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몰라서 그런 것인데,. 몰라서 인생을 아무렇게나 살아가려고 하는 것인데, 그들의 인생을 누가 잘못되었다고만 질타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눈이 왜 희 자위와 검은자위로 되어있는지 아십니까?
사람이 물체를 보는 것은 흰 자위가 아니라 검은자위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 눈의 검은 부분을 통해서 물체를 바라보게 하셨는지, 유대인의 탈무드에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너의 인생이 어두울지라도, 너희 현실이 눈동자 같이 캄캄하다고 할지라도 결코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라, 오히려 그 어두움을 통해서 밝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우리의 인생을 바리올린의 현과 같다고 했습니다. 현이 느슨해지면 아무소리를 내지 못하지만 그것을 팽팽하게 조여 두면 아름다운 음색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인생의 멜로디를 만드는 것,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왜 내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합니까?
아름다운 음색을 내기 위해서 줄을 조여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낙심하지 말라, 배부른 돼지보다, 고민하는 소크라테스가 더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다 한번의 실수를 저지르면서 살아갑니다.
걸려든 사람만이 죄인이 아닙니다.
오늘도 지금 내 마음의 도둑질을 하고 있으면서도 잊고 사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제발 보이는 것만 문제 삼지 말고, 내 마음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보세요, 여기에 작은 쇳조각이 놓여있습니다.
이 쇳조각이 누구의 손에 들려있느냐에 따라 그 모양과 가치와 용도는 달라질 것입니다.
이 쇳조각은 사람을 죽이는 총알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을 살리는 메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품으로 창조된 인간들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있지 않으면 사단의 손에 붙잡혀 더러운 우상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손에 붙잡히면 영원한 찬양악기가 된 다는 사실입니다.

[이 게시물은 Wise man님에 의해 2012-12-18 00:05:41 게시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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