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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꿈의 함수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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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꿈의 함수관계



- 권혁승 교수 (서울신대 구약학)

 

“요셉이 그들에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창 42:9)


평생토록 무흠하게 경건한 삶을 산 성경적 인물로는 요셉이 대표적이다. 성경에 소개된 인물들 대부분은 위대한 요소와 함께 약점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요셉에게는 그런 양면성이 전혀 없다.


요셉의 신앙과 삶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젊은 시절 그가 겪었던 극심한 고난 때문이다. 요셉의 삶은 마치 악취 나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값진 향기를 피우는 한 송이 장미꽃과도 같았다. 요셉의 생애와 신앙 속에 담겨 있는 위대한 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음 세 가지 관점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로, 요셉은 견디기 힘든 박해의 고난 속에서도 자신을 신앙으로 고고하게 지켰다. 형들에 의하여 애굽으로 팔려가는 노예 신세로 전락하였을 때, 그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묵묵히 인내하였다. 그뿐 아니라 그는 극한의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성을 보여 주었다.


둘째로, 젊은 나이에 외로운 객지 생활을 하고 있던 요셉에게는, 피하기 어려운 여자의 달콤한 유혹도 있었다. 그것은 주인인 보디발의 부인에 의한 것이었는데, 무서울 정도로 집요하였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눈짓으로 접근해 오던 그 여자의 잘못된 연애 감정은, 급기야 요셉의 옷을 붙잡고 동침을 강요하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요셉은 이러한 유혹을 단호히 거절하면서, 옷을 버려둔 채 스스로 그 자리를 피했다(창 39:12).


요셉은 보디발의 부인에게 자신과 관련된 두 가지 관계성을 명확하게 밝혔다. 하나는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 뿐이다”(창 39:9)라는 주인과의 관계성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 있겠는가”(창 39:9)라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이다. 기준이 분명하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


셋째는, 요셉이 모든 고난을 딛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애급의 총리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다른 모든 백성들과 나누는 삶을 살았다. 그의 신앙은 개인주의로 빠지지 않고, 주신 은사와 복을 모두와 나누는 공동체 지향적이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활용하여 7년의 풍년 동안 식량을 충분히 저장시켰다. 그리고 그것으로 7년의 무서운 기근을 극복할 수가 있었다. 요셉의 지혜로운 정책으로 애굽은 물론 주변 여러 나라 백성들까지도 기근의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창 41:56-57).


가나안 땅 역시 기근을 피할 수가 없었다. 양식을 구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애굽으로 내려온 요셉의 형들은, 동생 요셉이 그곳의 총리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때 형들은 요셉의 보복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두려워하며 떨었다. 그러나 요셉은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면서 지난 일을 모두 용서하였다(창 45:5).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자신의 유익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훌륭한 인격과 신앙의 소유자였다.


과연 무엇이 요셉으로 하여금 그런 위대한 신앙의 삶을 살게 한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꿈을 통하여 주신 신앙의 확신 때문이다. 오늘의 본문은 요셉이 형들을 만났을 때 그에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그들과 관련된 꿈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셉이 그들에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요셉이 꾼 꿈은 그로 하여금 어떤 환경에 처한다 하더라도 절망과 좌절에 빠지지 않게 막아 주었다. 또한 그 꿈은 유혹 속에서 그를 넘어지지 않게 지켜 준 기준이요 힘이었다. 그리고 그 꿈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이후도 마지막까지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게 만들어 준 영성의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


요셉의 꿈은 욕심에 근거한 개인적 차원의 것이 아니고, 위로부터 주어지는 계시적 차원의 꿈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머리로 설계한 개인적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실 섭리적 역사의 청사진이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그런 종류의 꿈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들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은 그런 순수한 동기의 꿈들이다.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바른 신앙은 우리들에게 바른 하나님의 꿈과 희망을 심어 준다. 그리고 그런 꿈들은 우리들의 삶과 신앙을 거룩하게 지켜 주며 이끌어가는 원천적 힘이다. 신앙의 또 다른 속성은 날마다 새로움을 경험하는 지속적인 성장과 성숙인데, 그런 성장의 새로움 속에서 우리들의 꿈도 함께 커지면서 구체적인 결실들을 맺게 된다. 신앙과 꿈은 서로를 밀고 끌어올려 주는 상생의 역학적 관계가 있다.


우리들은 어떤 종류의 꿈을 소유하고 있는가? 그 꿈은 지속적으로 우리들을 성장시키며 구체적인 결실을 맺게 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우리들의 신앙이 바른 좌표와 궤도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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