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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속의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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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해 한 때 많이 불렀던 찬양이 ‘내 맘속에 있는 참된 이 평화’란 찬양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찬양 보다도 더 행복한 찬양이란 생각이 듭니다.

비록 장애를 가진 분이라도 참된 천국소망을 가지고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얻고 산다면
그것 보다 더 행복한 삶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빌리 그래함 목사를 돕고 있는 한 시각 장애인 여성이 다음과 같은 간증을 했습니다.
“저는 보시다시피 맹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를 도와 길을 안내해 주는 사람들은 백 미터나 이백 미터 앞에 무엇이 있는가 하는 것까지는 말해 주지 않습니다. 단지 제 발 한치 앞에 무엇이 있는지를 말해 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저는 저의 10년 뒤나 20년 뒤의 모습은 꿈꾸지 않습니다. 단지 오늘 제게 주어진 하루를 기쁨과 감사로 살뿐입니다.”

여러분, 평안을 얻기 위해 오늘만 기뻐합시다. 오늘만 행복해 하고, 오늘만 성실하게 살아갑시다.

유대인들이 인사할 때 ‘살롬’이라고 인사하는 것은 ‘평안’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니기에 마음에 근심도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고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평화는 세상에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왜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까?
이 땅위의 삶이 평안이 없기 때문에... 힘들기 때문에... 참된 기쁨을 맛보지 못하기 때문에... 하늘에서 찾는 기쁨이야 말로 진정한 평안이란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게 하실 때 방주 옆으로는 창문을 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오직 위에만 창문을 내게 하셨는데, 만일 옆으로 난 창문을 통해서 물이 온 세상에 가득 찬 것을 보면 두려워 떨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기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의 가족들은 홍수가 나고 비가 그쳐 물이 빠질 때까지 무서운 물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직 하늘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무서운 일이 보이지 않았기에 배안에서 평안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만일 바라보면서 살았다면 얼마나 많은 날들을 불안 가운데 살았겠습니까?

이처럼 하늘에서 주는 평안만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란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어느 권사님이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경로당에서 배웠다고, 그걸 부르며... 웃음이 나서 죽겠더라는 겁니다.
노래를 부르면 부를 수록 기쁨이 있고, 자꾸 부르고 싶답니다. 살맛이 난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뭔가 봤더니 거기에는 가사가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우리들의 인생은...-

(1절)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언제나 행복감에 살아갑니다.
칠십에 우리들을 데리러 오면, 지금은 안 간다고 전해주세요.

(2절)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언제나 기쁨 안에 살아갑니다.
팔십에 우리들을 데리러 오면, 아직은 빠르다고 전해주세요.

(3절)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언제나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구십에 우리들을 데리러 오면, 재촉하지 마시라고 전해 주세요.

(4절)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언제나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백세에 우리들을 데리러 오면, 서서히 가겠다고 전해주세요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허락한 인생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 모릅니다. 오늘도 이러한 평안 속에 늘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기쁘게 살아갑시다.
[이 게시물은 Wise man님에 의해 2012-12-18 00:04:12 게시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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