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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목사는 100번을 생각하고 한번 말 할 수 있는 重量이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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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변이 銀이라면 침묵은 金이라고 하였다. 일상 생활의 대화는 너무 과묵하여도 좋지않고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하는 것이 친교에 좋다. 그러나 교회 행정상 중요한 안건을 내어놓을 때에는  상대가 거부하거나 기분 나뿐말을 할 때도 있는데 거기에 대한 즉답을 피하고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100번을 생각하고 다음에 대응하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실수가 적고 目的達成을 쉽게할 수가 있다. 쉽게 즉답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목회에 있어 가장重要한 人間關係가 부서지는 함정에 빠저들고 상호 상처만 입고 일을 그르칠 수 가 있다.

본 교단이 아닌 타 교단 친구목사가 있는데 교회를 개척하여 400여명 중형교회로 성장 발전 시켰다.
목 사님은 자녀가 6명 인데 4명이 다 명문대학에 다니고 또 들어갔다. 년말 당회때 한 장로님이 안을 내었는데 목사님 자녀들이 4명이나 대학을 다니는데 목사님 생활 비로는 어려우니 등록금은 교회 장학금으로 전액을 드리자고 재안을 하였다.

다른 한 장로님이 부레이크를 걸었다. 그 자리에 있던 담임목사는 신중하지 못하고 섭섭한 마음이 치밀어 올라와서 “목사 아이들 잘 되는것 배가 아파서 반대합니까?” 라고 불만의 즉답을 토하였다. 이 얼마나 무서운 暴言인가?
필자가 들어도 그 말은 아주 잘못된 맛대응의 즉답이였다. 그 다음에 분위기와 목회에 미친 영향이 어떠 했겠는가는 독자 여러분의 생각에 맡긴다.

필자의 속삭임을 지난시간에 말씀드렸지만 참고 집에와서 입만 비식거리며 속으로 개색기 상년하면서 혼자 색인다고 하였다 그렇게라도 하는것이 폭언 보다는났다. 분노로 맛대응 즉답 하는것은 아주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가능한 한 목회자의 가정에 재정지원에 관한한 말이나오면 별것 아닌것은 동석하여 수용하지만 의논의 필요성이 있는 중요한 것은 나 없는 자리에서 의논 하라든지 하는것이 좋다. 앞에 앉아서 반대 의견을 어떻게 자유롭게 하겠으며, 한다 하더라도 앞에서 들을때에 기분이 좋을리 없고 위와같은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아니면 겸양의 사양을 하던지 하는것이 아름답다.
사양 한다고 줄것을 안주거나 달라고해서 주기 싫은것을 주는것도 아니 잦는가? 필자는 도움 달라고 한적 없지만 장로님들이 다 알아서 해주서서 자녀 3남매 전액 교회 장학금으로 대학공부시켰다.

필지는 예산 위원회에 있었던 말은 일체 내게 들리지 말게하라고 당부한다. 누가 목사사례 증액주장, 반대주장 했다는 소리들으면 시험들수있다. 목사도 그런데서 편을가르고 파벌을 조성할수있다.

앞서말한 목사를 위하여 발언한 장로도 생각을 잘못 하였다. 목사자녀 장학금 전액 줄 생각이 있으면 사전에 장로들끼리 먼저 의논하여 보아야지 그 자리에서 불숙 내어놓을 안이 아니다. 그런고로 신중치 못하고 목사가 불득 골이 있어 큰 실수를 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가능한 한 담임목사는 매사에 말을 아끼고 신중히 하는것이 유익하다.

행정에 관한 말이나 중요한 말은 말수를 적게하고 오래 생각하고 사리 판단을 분명히하고 육하원칙에 의하여 안건을 내어 놓고 별 문제없이 합의 도출을 하여내야 훌륭한 담임 목사의 자격이 있다. 별것아닌것 내어놓고 시비만 하는것은 리더십의 자격이 부족하다.

야고보사도는 혀는 불이라고 하였다, 말은 그렇게 중요하다.

약3:8-18
혀는 능히 길 드릴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다.
이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형제를 저주한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다.
샘은 한 구멍에서 두가지 물이나오지 않은다.
너희중에 지혜총명 있는자가 누군인가?
그는 선행으로 溫柔함으로 그 行함을 보일지니라.
너희마음이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잘란척 하지말라.
        *선한 말 한마디가 천국을 만들고 잘못한 말 한마디가 지옥을 건설한다.
15.이러한 지혜는 하나님으로 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라”.
魔鬼적이니라. 魔鬼적이니라. 魔鬼의 종이니라. 어떤 변명으로도 魔鬼의 하수인임을 부정 할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담임 목회자는 聖靈하나님의 종이여야 한다.

17.오직 하나님으로 부터 온 지혜는 聖潔하고 和平하고 寬容하고 良順하며 矜恤과 善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이런 자들은 和平으로 심어 義의열매를 거두리라.
이런것이 聖靈의 뜻을 따르는 자의 열매이다.
이상과 갖지 않은자는 惡의 열매만 거두리라.

나는 義의 열매?
또는 惡의 열매?  하나님은 분명히 審判의 칼날로 정확하게 갈라주실 것이다.

그날에 깜작 깜짝 놀랄일들이 많을것이다. 천국 갈줄 안 교회에서 높은 사람이 지옥가고 지옥갈줄 안 사람이 천국가고 교회서 이름도없이 직분도없이 제직회도 참여 못하고 다니던분이 천국에서 가장좋은 영광된집 또는  영광된 보좌에 나사로와 같이 앉은 것을 보고 깜작 놀랄 것이다. 눅복음에 부자가 나사로 보고 부자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는가? 기절초풍을 하였다. 나사로님 어찌거기에 갔습니까?  날좀 거기가게 해주소. 너무뜨겁다. 너무뜨겁다. 아아! 허허 아이고 아이고! 아참 내가잊었다. 아 나사로님 세상에 내 형제 5명있는데 당신가서 전도좀해주오 형님이 지옥와서있다고. 이럴줄 내가 몰랐다 이럴줄 알았더면. 아이고 아이고 아아허허 악! 일렇게 소리치며 놀랐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 불상한 무자한 90난 女노인 한분이 교회 안식관에 계신다. 이 노인은 북한간첩으로왔다가 사형선고에서, 무기형, 무기형에서, 23년,간을 감옥생활하고 감옥에서 예수님영접하고 모범수로 나온 분인데  믿음이 아주 돈독하고 좋은것이 목사의 눈에 환히보일 정도다. 필자는 나는 개똥 벌레불 같다면 저 할머니는 태양 같으리라.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이 되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된다.

앞에 말한 그 목사님이 원로목사로 추대받고 은퇴하게 되었는데 인사말로 은퇴후 후임 목사를 위하여  2년동안은 본 교회에 출석을 않겠다고 하였다. 식이 다 끝나고 악수로 인사를 나누는데 장학금을 반대하던 그 장로님과도 악수로 인사를 하게되었다. 서로 웃는 얼굴로(속으로는 증오 했을수도?) 인사를 나누는데 이번에는 장로님이 큰 폭언으로 목사에게 전에당한 답변을 한 것이다. (목사아들 잘되는것 배아파요를?)

그 폭언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목 사님 2년 동안만 안 오시겠다고 말씀 하셨는데  아주오지 마세요” 하더란 것이다. 이 말은 폭언보다 더한 말아다. 얼마나 섭섭 하였겠는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는가? 교회를 개척하여 혼신을 다해 교회를세우고 그 장로까지 세웠는데 떠나는 마당에 그가 그렇게 인사를 하였으니 얼마나 츙격이 컷겠는가? 

장로님 또한 긴 세월 共同牧會를하면서 얼마나 불만이 사무쳐스면 그런말이 불숙 튀어 나왔겠는가? 그 정도면 긴 세월동안 심적 갈등은 얼마나 심했겠는가? 당회는 복음을 위한 좋은당회, 즐거운 당회, 은혜의 당회가 아니라 지옥같은 당회가 아니였겠는가? 그 장로님도 집에 돌아가 아! 내가 실수하였구나 하였을 것이다.

후배 목사여러분!
양편에 입장을 客觀적으로 생각하여 보면서 원인을 類推하여 분석하고 평탄한 목회를 위하여 자신을 살펴보자!.

얼마나 살벌한 분위기 인가? 얼마나 지옥같은 당회였는가? 얼마나 예수믿는 즐거움보다 괴로운 신앙생활이 였겠는가? 얼마나 증오하며 죄를 지었겠는가? 보기싫은 얼굴을 매주보는 것이 얼마나 힘 들었겠는가? 그 장로를 보고 설교하는 목사와 그 목사의 얼굴을 처다보고 설교를 듣고있는 장로가 드,리는 예배가 일마나 힘들고 괴로워겠는가? 아무리 합리화 한다하여도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었겠는가?
서로가 깊이 신중하지 못한 말의 결과가 그여기까지 온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명심 할 것은 장로는 그렇게 말할수 있다 하더라도 목사는 그 수준에서 말을 하여서는 아니된다. 최소한 목사의 상식수준은 지켜야 한다. 그레야 목사이다. 목사가 무엇인가?

목사는 일상 대화는 자연스럽게 하지만 중요한 말, 행정에 관한 重要 안건은 100번을 생각하고 한번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야야 실수를 작게하는 담임목사가 될수있다.

어떤 경우도 나는 속이 상하더라도 상대의 감정이 상할것 같은 言辭나, 얼굴을 붉히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야 한다. 속이상할때는 침묵하는 것이좋다.
목사도 感情에 動物인 사람이지만 많은 사람을 리더하는 담임 목사는 조금은 달라야하지 않겠는가?. 平信徒와 똑 같으면 무엇을 배우겠는가?

담임 목사는 경솔하면 아니된다. 100번을! 100번을! 그리고 重量있는 한마디!!!!!!!!!!!!!!!!!!!.

   장달윤목사 [이 게시물은 Admin님에 의해 2016-09-20 22:54:26 목회자료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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