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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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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seman
댓글 0건 조회 129회 작성일 22-05-04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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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롬 3:27~29)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이 오해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율법주의자이며 유대교를 행위의 종교로 아는 것이다. 일부 그런 경향의 유대인이 있었지만, 그들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신앙인이었다.


유대교가 공로의 종교가 아니었으므로 본문에서 말하는 ‘자랑’은 유대인 자신들이 민족적, 문화적, 종교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유대교의 자신만만함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유대인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특권적 지위에 대단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보호와 총애를 받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바울은, 그들이 율법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지하며’ 그들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 ‘자랑한다’라고 규정한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외적 특권만을 자랑한 것은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자신의 개인적 의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회심하기 전 유대교에 있었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유대적 혈통과 개인적으로 성취한 것을 한데 결합해서 ‘육체’라고 말한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기까지 그 ‘육체’를 신뢰했었다.


성경은 이어서 자랑하는 행위는 유대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님을 말한다. 이방인 역시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였다. 사실상 우리도 자랑하는 자들이 아닐까? 모든 인간은 상습적으로 자랑하는 자들이다. 자랑이란 곧 우리의 타락한 자기중심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지만 믿음으로 의롭함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자랑이란 있을 수 없다. 의는 우리에게 자랑할 근거를 제공해 줄 수 있는 ‘행위의 법’으로 아니라, ‘믿음의 법’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확신은, 죄인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오직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다. 율법의 행위는 음식물에 관한 것이든, 도덕적인 것이든, 그것들은 하나님의 호의나 용서를 얻지 못한다. 


구원은 ‘행위에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하려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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