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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들 중에서도 두 종류의 교인들이 있습니다.
연기만 피우는 교인이 있는가 하면, 불꽃같은 교인이 있습니다.
연기만 피우는 교인은, 그 속에는 빛도 없고... 불도 없습니다.
그나마 타던 불이 꺼지게 되면 연기만 나게 되는데, 연기만 있는 곳에는 어두움과 눈물만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염려와 근심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되어 함께 어둡게 만들어 버리는 교인이 있는가 하면...
불꽃같은 교인이 있습니다.
그 주변에는 항상 믿음의 빛이 있는가 하면, 뜨겁고 정열적이며 모든 악한 것을 녹이는 힘이 있고, 그래서 그 빛 때문에 주변 사람들도 정금처럼 변화 시키는 뜨거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불은 자기가 타는 것으로 말미암아 빛을 낸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희생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을 빛을 내게 하는 인생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이야기 하자면,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연기만 피우는 인생을 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어려움과 시련 앞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살았던 믿음의 사람은 주님과 사람 앞에서 불꽃같은 성도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어려운 일들을 얼마나 많이 당하게 됩니까?
결혼한 지 10년 된 주부가 참으로 어려운 시련을 당했습니다.
남편은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가 나자 도피를 하러간다며 어디론가 떠나버렸고, 법원 담당자들이 나와서 집안을 벌집처럼 쑤셔놓고 아이들은 창피하다고 학교 못 다니겠다며 방구석에만 있고,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눈물만 흘릴 때 친정엄마가 생각나 무작정 엄마를 찾아갔답니다.
엄마 앞에 하소연도 하면서 사는 것이 힘들다며 울음을 터트리자 친정엄마는 조용히 부엌에서 두 개의 냄비에다 물을 끓이며 얘기를 합니다.
잠시 후 첫 번째 끓는 냄비에 당근을 넣고, 두 번째 냄비에는 계란을 하나 넣고, 한동안 말없이 지켜보다가 불을 끄고 딸에게 말을 했습니다.
얘야, 이 두 개의 냄비에는 끓는 물이 있단다. 어찌 보면 끓는 물이 바로 역경이지, 그러나 이 두 개의 물질은 다르게 반응한단다. 당근은 단단하고 강하고 힘이 넘치지만 끓는 물을 만났을 때 곧 약해지고, 흐믈 거리고 결국은 죽이 될 정도로 풀어져 버린단다.
하지만 계란은 약하게 보이고, 금방이라도 깨질듯하게 보이지만 끓는 물을 만났을 때, 그 물을 견디어내면서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 단단하고 오히려 더 강하게 굳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단다.
힘들고 어렵지, 눈물이 나오고 고통스럽지, 이런 환경과 어려움 속에서 너는 당근이길 원하니, 아니면 계란이고 싶니?
이 물음에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좌절하거나 고통이 찾아올 때 어떻게 이기십니까?
저는 꽃꽂이를 할 때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꽃꽂이를 하시는 분이 꽃줄기를 자를 때 일직선이 아니라 대각선으로 자른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답니다.
꽃의 수명을 연장하게 하기 위해 비스듬히 잘라야 물을 흡수하는 면적이 훨씬 넓어져서 싱싱하게 꽃을 오랫동안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랍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병이 들까봐 자른 그 자리를 불로 지진다고 합니다.
그러면 물을 흡수하는 힘이 강해질 뿐 아니라 나무의 부패도 막아주고 주변의 꽃들에게도 병균을 옮기지 않게 된답니다.
그래서 노련한 정원사는 어떻게 해야 생명이 길게 갈 수 있는지를 알고, 가위질을 해야 할 부분을 안다고 합니다.
이처럼 고난당할 때 고난으로만 끝나지 말고 더 깊은 것을 경험하시면 오히려 더 강하게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찬양의 힘은 깊은 골짜기라도 메아리 칠 수 있는 힘이 있고, 찬양은 죽을 영혼들을 소생케하는 능력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61장에는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에게 재 대신 화관을 씌워주시고, 슬픔 대신 기쁨의 기름을 발라주실 뿐 아니라 통곡대신 찬양의 옷을 입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찬양은 이런 것입니다.
아무리 고통 중에 있는 환경이라고 해도 슬퍼하는 자에게 승리의 화관을 주고, 기쁨의 기름을 발라주실 때 죽은 것 같은 우리에게 찬양을 옷을 입혀 주시는 분이 주님이시라는 겁니다.
이처럼 고난과 역경 속에서 오히려 찬양하는 삶은 더 강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찬양을 부르는 삶을 선택하십시오.
누구나 다 인생의 광야 같은 40년 인생이 있지만 그 안에서 주님을 발견하고 불꽃같은 성도의 삶을 살 뿐 아니라 끓는 인생 속에서 당근이기 보다 삶을수록 단단해지는 계란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요즘 부르는 찬양 중에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라는 찬양곡이 있습니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다. 나의 가고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주님 나를 이끄소서.
(후렴 부분은 더 은혜가 됩니다.)
주님 뜻하신 그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오주님 나를 이끄소서...
오늘도 이끄시는 대로 찬양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 게시물은 Wise man님에 의해 2012-12-18 00:04:12 게시판에서 이동 됨] 연기만 피우는 교인이 있는가 하면, 불꽃같은 교인이 있습니다.
연기만 피우는 교인은, 그 속에는 빛도 없고... 불도 없습니다.
그나마 타던 불이 꺼지게 되면 연기만 나게 되는데, 연기만 있는 곳에는 어두움과 눈물만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염려와 근심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되어 함께 어둡게 만들어 버리는 교인이 있는가 하면...
불꽃같은 교인이 있습니다.
그 주변에는 항상 믿음의 빛이 있는가 하면, 뜨겁고 정열적이며 모든 악한 것을 녹이는 힘이 있고, 그래서 그 빛 때문에 주변 사람들도 정금처럼 변화 시키는 뜨거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불은 자기가 타는 것으로 말미암아 빛을 낸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희생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을 빛을 내게 하는 인생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이야기 하자면,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연기만 피우는 인생을 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어려움과 시련 앞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살았던 믿음의 사람은 주님과 사람 앞에서 불꽃같은 성도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어려운 일들을 얼마나 많이 당하게 됩니까?
결혼한 지 10년 된 주부가 참으로 어려운 시련을 당했습니다.
남편은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가 나자 도피를 하러간다며 어디론가 떠나버렸고, 법원 담당자들이 나와서 집안을 벌집처럼 쑤셔놓고 아이들은 창피하다고 학교 못 다니겠다며 방구석에만 있고,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눈물만 흘릴 때 친정엄마가 생각나 무작정 엄마를 찾아갔답니다.
엄마 앞에 하소연도 하면서 사는 것이 힘들다며 울음을 터트리자 친정엄마는 조용히 부엌에서 두 개의 냄비에다 물을 끓이며 얘기를 합니다.
잠시 후 첫 번째 끓는 냄비에 당근을 넣고, 두 번째 냄비에는 계란을 하나 넣고, 한동안 말없이 지켜보다가 불을 끄고 딸에게 말을 했습니다.
얘야, 이 두 개의 냄비에는 끓는 물이 있단다. 어찌 보면 끓는 물이 바로 역경이지, 그러나 이 두 개의 물질은 다르게 반응한단다. 당근은 단단하고 강하고 힘이 넘치지만 끓는 물을 만났을 때 곧 약해지고, 흐믈 거리고 결국은 죽이 될 정도로 풀어져 버린단다.
하지만 계란은 약하게 보이고, 금방이라도 깨질듯하게 보이지만 끓는 물을 만났을 때, 그 물을 견디어내면서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 단단하고 오히려 더 강하게 굳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단다.
힘들고 어렵지, 눈물이 나오고 고통스럽지, 이런 환경과 어려움 속에서 너는 당근이길 원하니, 아니면 계란이고 싶니?
이 물음에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좌절하거나 고통이 찾아올 때 어떻게 이기십니까?
저는 꽃꽂이를 할 때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꽃꽂이를 하시는 분이 꽃줄기를 자를 때 일직선이 아니라 대각선으로 자른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답니다.
꽃의 수명을 연장하게 하기 위해 비스듬히 잘라야 물을 흡수하는 면적이 훨씬 넓어져서 싱싱하게 꽃을 오랫동안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랍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병이 들까봐 자른 그 자리를 불로 지진다고 합니다.
그러면 물을 흡수하는 힘이 강해질 뿐 아니라 나무의 부패도 막아주고 주변의 꽃들에게도 병균을 옮기지 않게 된답니다.
그래서 노련한 정원사는 어떻게 해야 생명이 길게 갈 수 있는지를 알고, 가위질을 해야 할 부분을 안다고 합니다.
이처럼 고난당할 때 고난으로만 끝나지 말고 더 깊은 것을 경험하시면 오히려 더 강하게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찬양의 힘은 깊은 골짜기라도 메아리 칠 수 있는 힘이 있고, 찬양은 죽을 영혼들을 소생케하는 능력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61장에는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에게 재 대신 화관을 씌워주시고, 슬픔 대신 기쁨의 기름을 발라주실 뿐 아니라 통곡대신 찬양의 옷을 입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찬양은 이런 것입니다.
아무리 고통 중에 있는 환경이라고 해도 슬퍼하는 자에게 승리의 화관을 주고, 기쁨의 기름을 발라주실 때 죽은 것 같은 우리에게 찬양을 옷을 입혀 주시는 분이 주님이시라는 겁니다.
이처럼 고난과 역경 속에서 오히려 찬양하는 삶은 더 강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찬양을 부르는 삶을 선택하십시오.
누구나 다 인생의 광야 같은 40년 인생이 있지만 그 안에서 주님을 발견하고 불꽃같은 성도의 삶을 살 뿐 아니라 끓는 인생 속에서 당근이기 보다 삶을수록 단단해지는 계란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요즘 부르는 찬양 중에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라는 찬양곡이 있습니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다. 나의 가고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주님 나를 이끄소서.
(후렴 부분은 더 은혜가 됩니다.)
주님 뜻하신 그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오주님 나를 이끄소서...
오늘도 이끄시는 대로 찬양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