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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의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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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많은 물이 있다고 해도 물은 흘러야 썩지 않습니다. 물이 고여 있으면 썩기 마련입니다. 썩은 물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또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전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가 고여 있으면 욕심이 됩니다. 빛이 되지 못하고 소금의 역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통해 쉬지 않고 흘러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살리는 역할을 할 수 있고, 회복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찬송을 부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본래의 자리가 있는데 그 자리를 이탈하게 되면 감사가 끊어지게 됩니다. 감사가 끊어진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찬양하지 않습니다.
찬송의 표현은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끊임없이 찬송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63:3절에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의 입술은 오직 여호와를 찬양할 때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프린스턴 신학교에 신약학 교수인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채플 시간에 전혀 찬송을 부르지 않습니다. 이유인즉슨 본인이 음치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교수의 별명을 ‘찬송 음치’라고 붙여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교수님이 어찌된 일인지 채플시간에 찬송을 힘차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놀란 학생들은 음절도 틀리고 박자도 희한하게 들렸지만 목소리만은 힘차게 나오기에 의아심이 생겼습니다.
후에 강의 시간에 교수님에게 물었습니다.
‘교수님 무슨 일이십니까? 찬송을 다 부르시고...’ 그랬더니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백을 하더랍니다.

그 전날 밤 꿈을 꾸었다는 겁니다.
이 분이 꿈에 천국에 이르러 노크를 했더니 베드로가 나와 누구냐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자신을 어릴 적부터 신자요 지금은 신학교 교수라고 소개를 했더니, 베드로가 무슨 장부 같은 것을 뒤지며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공부는 많이 해서 아는 건 많은데, 찬미의 제사를 올린 기록이 없군요. 천국은 지식이 많은 신학 박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찬송을 하나님께 올려드린 자를 원합니다. 다시 가서 찬송을 많이 부르다가 오시오!’
천국 문이 탕 하고 닫혀서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찬송의 능력, 찬송의 기쁨, 찬송의 기적, 찬송의 제사... 등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 입술의 고백을 가장 받고 싶으신 분이 주님 이십니다.
하나님은 찬송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13:15절 말씀처럼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립시다. 이것은 곧 그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다윗은 일평생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닥치든지 항상 마르지 않는 찬송의 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퍼낼수록 새 물이 솟아오르는 샘물처럼 풍성한 찬송 생활을 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복된 인생의 비결이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신앙생활에 있어 기도도 있고, 헌신도 있고, 찬양도 있고, 말씀도 있지만 평생을 통해 보면 찬양할 때의 감격, 찬양할 때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이 가장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배 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내 영혼이 살아 움직이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때, 가장 복되고 충만한 행복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 우리 삶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예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게시물은 Wise man님에 의해 2012-12-18 00:05:14 게시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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