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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이성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 수많은 약속들을 만들어 놓고 믿음을 세워 가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성은 내 생각과 경험을 의지합니다. 내 생각과 맞지 않으면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실이라고 할지라도 경험하지 않으면 믿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성적인 판단입니다. 그렇다고 믿음은 이성을 무시합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포기합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이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의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이성은 사건이나 환경에서 시작하지만 믿음은 하나님에서 시작합니다. 이성적인 판단보다 하나님의 약속인 말씀을 더욱 신뢰해야 하다는 것입니다. 따질 것도, 저울질 할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결과를 하나님 손 안에 맡기고 순종의 길로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좋은 예로서 누가복음 5장에서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에 베드로를 찾아오신 장면입니다. 베드로를 만난 주님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밤이 맞도록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았어도 얻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이것이 믿음입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허사였고 이제는 그물을 다 씻어 놓았고 낮에는 고기가 잡히지 않는 것을 잘 알지만 순종하는 것,” 이것이 이성을 포기한 믿음의 자세인 것입니다. 불순종은 무엇이냐면, 하나님 말씀에 주저하고, 이성에 의존하여 지배를 받기 때문에 순종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없을수록 불순종하는 사람이 된 다는 말입니다. 찬양의 사람이 된 다는 것은 믿음의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찬양은 이성으로 부르는 노래가 아닙니다. 내 입술의 고백이 천성을 향해야 하기 때문에 믿음 없이 부를 수는 없습니다. (이사야 45:9)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툴찐대 화 있을찐저 진흙이 토기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으며 너의 만든 것이 너를 가리켜 그는 손이 없다 할 수 있겠느뇨” 여기에 그릇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릇을 만든 사람이 있다고 할 때, 이 그릇은 왜 만들어졌으며,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그 그릇은 알 수 없지만, 만든 사람만이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만든 사람의 목적대로 사용되어지게 되면 그 그릇은 쓸모 있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인생도 사람을 만든 창조주만이 인생의 목적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분만이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있고, 인생의 올바른 목적은 창조주에게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의 뜻을 알고 쓸모 있는 인생으로 살려고 할 때 의미 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찬양의 삶은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내 작은 머리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곧잘 구분합니다. 물론 이성적인 판단으로 그것은 얼마든지 구분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은 그 이성까지도 하나님께 맡깁니다. 비록 실패하고 지쳤어도 이제 곧 보여주실 하나님의 역전드라마를 기대하면서 주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로 강한 긍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찬양은 믿음의 가장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믿음의 얼굴을 한다는 것은 찬양이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믿음의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을 하나님이라 외치는 함성을 올려드립시다. |
칼럼
이성을 포기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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