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定)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審判)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擔當)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救援)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罪)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7-28)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定)해진 것이요
그것은 주 하나님께서 정해진 예정(豫定)되신
섭리(攝理)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무척오래 살려고 노력(努力)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 장수(長壽) 하는 것은 돈이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무엇이 던지 잘 먹고 산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노력(努力)하고 잘 먹고 편안(便安)히 산다고 해도
사람에게는 주어진 세상의 삶의 기간(期間)이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주 하나님께서 내리신 수명(壽命)입니다.
그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정해진 천수(天壽)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뭘! 그러느냐고 하겠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천수(天壽)를 누리는 사람도 있고
사고사(事故死)나 자연(自然)재해(災害)로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일은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애(生涯)처럼 슬프고 허무(虛無)한 게 없습니다.
태어나고부터 사람에게는 고난(苦難)이 시작(始作)되고
그 고난(苦難)은 끝이 없이 이어 지다가
생(生)을 마칠 때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이 가운데 우리에게 주어진 행복(幸福)이라는
그 순간(瞬間)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 모든 것은 사람에게 죽음이라는 슬픈 운명(運命)이
우리 모두에게 있고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어느 젊은 사람이 “내가 왜? 죽어” 하면서 옆 사람을 돌아보며
푸념을 하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늙고 병든 사람들에게만 있는 걸로
착각(錯覺)을 하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죽음은 늙고 병든 사람만 가지고 있는 고유권한(固有權限)이 아닙니다.
그것은 누구나 올 수 있으며 인생이라면
한번은 짚고 넘어야 할 숙명적(宿命的)인 운명(運命)입니다.
그 사람들과 기타 모든 사람들은 늙으면 병들고
죽음에 이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이지만
젊은이들에게는 그 뜻의 깊이 있는 것은 모르고
세상(世上)을 살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죽음이라는 것이 없으면
얼마나 신이 나고 좋은 세상입니까?
하고 싶은 것이 많이 있고 가고 싶은 것도 많이 있습니다.
먹고 싶은 것도 많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무엇이 던지 한계(限界)라는 것이 있습니다.
먹을 것이 아무리 많아도 배가 부르면 못 먹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욕심(慾心)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던지 가지고 있으면 더 가지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하여 세상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돈은 많을수록 더 많이 갖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무엇보다도 돈을 더 사랑 하고 있습니다.
내 평생(平生)에 얼마의 돈이 있으면 편안(便安)히 살 수 있습니까?
우리 돈의 액수(額數)로 얼마나 있으면 됩니까?
미화원(美化員)이나 경비원(警備員)의 월급(月給)이
우리 돈으로 백만 원 이쪽저쪽이 됩니다.
그 사람들은 그 돈을 받고도
아무 불만(不滿) 이 없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재벌(財閥)이나 그 외에 고소득자(高所得者)들은
돈을 더 가지려고 사력(死力)을 다 해 노력(努力)을 합니다.
정부(政府)에서 고소득자(高所得者)들에게
세금(稅金)을 더 내게 하려고 하면
이 사람들은 대 놓고 불만(不滿)을 토로 합니다.
모두 쓸데없는 욕심(慾心) 때문이지요?
어느 재벌총수(財閥總帥)는 천문학적(天文學的) 수자(數字)로
재산(財産)을 쌓아 놓고 병원(病院)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병원(病院)에 누워 있는 사람은
의식(意識)이 돌아오지 않아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家族)들의 마음을
애타게 만들고 있습니다.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그 사람은 생전(生前)에 자기(自己)가 하고 싶었던 일을
모두 했었을 까요?
먹고 싶었던 것을 많이 먹었을까요?
이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과거(過去)의
한 추억(追憶)으로만 생각 되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다시 소생(疏生)한 다고 한들 젊었을 때처럼
활발(活潑)하게 움직일 수 있을까요?
누구나 사람의 삶은 죽음의 문턱으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는 누구나 가리지 않고
주 하나님의 심판대(審判臺) 앞에 서게 될 터인데
그 때는 세상의 삶을 가지고 묻고 따지게 될 것입니다.
주의 심판대 앞에서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모두 들어 나 있을 터인데
변명(辨明)도 거짓말도 통하지 않은 그런 곳이 하나님의 심판대(審判臺)입니다.
그 곳에는 우리가 갈 곳이 지옥(地獄)이냐?
아니면 구원(救援)의 천국(天國)이냐? 의 둘 중에 하나입니다.
이 세상에서 생명처럼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生命)은 재물(財物)과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생명을 한번 잃으면 그 생명(生命)은 다시 소생(疏生)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명은 언제인가는 한번은 죽습니다.
그 일을 성경(聖經)은 이렇게 기록(記錄)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定)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審判)이 있으리니 (히9:27)☚
죽음의 직전에 우리는 죽음의 후에 오는 것을 생각 하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삶은 살아생전(生前)에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것은 크게 밑천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하면 됩니다.
구세주(救世主)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迎接) 하십시오!
죽음의 후에는 영원한 하늘나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獨生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滅亡)하지 않고
영생(永生)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世上)에 보내신 것은
세상(世上)을 심판(審判)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獨生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審判)을 받은 것이니라.(요 3:17-18)☚
우리의 육신(肉身)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肉身)은 진토(塵土)에서 나서
진토(塵土)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肉身)은 하나의 티끌이 모아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 3:19)
우리는 이 세상을 살다가 결국에는 누구나 죽습니다.
위의 성경(聖經) 말씀대로 우리는 진토(塵土)에서 태어나서
진토(塵土)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많은 것을 접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인 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번 죽음을 맛보고
그다음에 천국(天國)에서 다시 태어나서
영원(永遠)히 영생(永生)을 한다면
그 다음에 무엇이 부럽고 아쉬운 것이 있습니까?
우리의 생애(生涯)에 그리스도만 영접(迎接) 하시면
우리의 사망(死亡) 후에도 영원(永遠)한 세상에서
영생(永生)하며 살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진리(眞理)이고 우리가 전하는 복음(福音)입니다.
길고 긴 말씀이 필요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迎接) 하시고
천국(天國)에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감사(感謝) 합니다. 종(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