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물은 참 무섭다. 물이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물은 심판의 한 증거로 받
아들여지곤 했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그렇고 우리나라
의 장자못 전설이나, 홍수 속에 유일하게 살아 남은 두 남매가 산꼭대기
에서 맷돌을 굴려 그것이 하나되는 것을 보고 부부의 연을 맺어 다시 사
람을 퍼뜨리게 됐다는 이야기 등도 대홍수로 인한 참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사상가 왕양명은 '수오훈', 즉 물이 주는 다섯 가지 가르
침을 통해 우리가 물에서 어떤 것을 배워야 하는가를 일깨워준다.
첫째, 물은 항상 자기가 나아갈 길을 찾아 멈추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 앞에 바위가 놓여 있든 높은 언덕이 가로막혀 있든 가다가 흐름을 멈
추는 물줄기는 없다. 앞에 물길을 막고 있는 것의 틈새를 반드시 찾아내
어 그 사이를 찾아 흐르거나, 안 되면 앞에 놓여 있는 것의 둘레를 에돌
아서라도 아래로 흘러내려간다.
바다로 가는 물줄기, 강줄기의 그 수 없는 곡선들은 어떻게든 자기의 길
을 멈출 수 없던 물의 몸짓과 걸어온 흔적이기도 하다.
둘째, 물은 스스로 움직여 다른 것을 움직인다. 물은 언제나 살아 움직
인다. 생명체로서 살아 있고 움직여 흘러가면서 살아 있다. 그래서 그속
에 살아 있는 것들을 키우고 그 곁에 온갖 풀과 꽃과 나무와 생명체들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스스로 살아 움직여 다른 것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이 힘은 아무것도 아
닌 것 같지만, 스스로 타올라 모든 것을 불에 태워 죽게 만드는 불의 속
성과는 너무도 다르다.
셋째, 물은 장애를 만나면 그 세력을 몇배로 한다. 그래서 물의 힘을 인
위적으로 막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줄기를 막아 놓은 둑이나
저수지 그리고 댐은 인간이 물을 다스리기 위해 지혜를 모아 쌓은 것들
이다. 그러나 댐도 물의 수위가 높아지기 시작하면 아래로 물을 흘려 보
낸다. 물이 넘치도록 그냥 내버려두면 터져버리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 또한 그렇다. 한 사람의 성냄이든 다수 민중의 원성의 폭발이
든 막아두고 덮어두려고만 하면 고인 물처럼 터져버린다는 것이다.
넷째, 물은 스스로 맑으려 하고 다른 것의 더러움을 씻어준다. 또 맑고
더러움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래서 사람이 이런 물의 마음만큼만
될수 있다면 득도의 경지에 들었다 할 수 있으리라. 저는 맑지 않으면서
다른 이의 더러움만을 손가락질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운 것까지 받아들
여 맑게 만드는 힘을 물은 가지고 있다.
다섯째, 물은 넓은 바다를 채우고, 때론 비가 되고 구름이 되고 얼음이
되기로 하지만 그 성질은 바뀌지 않는다. 사람은 그 손에 채찍을 쥐어주
거나 칼을 들려 놓으면 성품이 달라진다. 그 머리 위에 황금관을 씌워주
면 걸음걸이와 목소리가 달라진다. 사람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
비가 되든 얼음이 되든 본래의 자기 성질을 잃지 않는 물에서 우리 인간
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배운다. 어디에 가서 어떤 모양을 하고 있
든 자기의 평상심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곧 깨달은 사람의 모습이라
하지 않는가.
-- 도종환 에세이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中
넓은 바다를 채우고 비가 되도 그 성질이 변하지 않는 물이 되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