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결편) — 휴스턴 서울교회 찬양대 지휘자 김영관 형제
앞서 음악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이야기를 뒤바침하기 위해 음악사적인 측면과 음악학적 측면을 살짝 엿보았다. 마지막으로는 존재론적인 측면을 이야기해 보고 싶다. 여기서 존재론 적인 측면이라는 다소 고상해 보이는 말로 포장 했지만, 풀어 말하자면 개인적이고 고백적인 측면에서 출발하여 보편적 가치로 확대 해보려 한다.
언젠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언제 였는지 돌아 볼 기회가 있었다.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중학생 시절 합창단에 들어가 찬양하고 노래할 때 였다. 마냥 노래가 좋았고 찬양의 은혜도 만끽했던 순간들이다. 다음은 찬양 사역을 하던 시간들이다. 찬양을 통해 내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었다. 많은 주의 자녀들이 찬양을 통해 회복되고, 감격하고, 하나님 앞에 두손들고 나오는 장면들은 지금도 내 가슴을 뛰게 한다. 이러한 일련의 기억들이 교회음악을 공부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했고 찬양사역자의 길로 인생을 드릴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 때 내가 그렇게 결정 할 수 있던 용기는 하나님께서는 나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그것을 위해 나를 이끄신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지으신 목적은 당신을 위하여 당신의 이름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이사야 43장 21절의 말씀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존재론적 대답이 오늘을 살게 하는 큰 동력원이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그런 존재론적 목적을 두고 만드셨다는 것을 어떻게 찾아 볼수 있을까? 나는 아들 사무엘을 통하여 그 답을 찾았다.
나는 서두에 공기의 떨림은 하나님의 음성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그 증거를 아들 사무엘을 갖게되면서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사무엘이 아내의 태중에 있을 때 그는 공기의 떨림 혹은 음에 반응하는 것을 알수 있었다. 나는 매일 잠들기 전에 그에게 축복의 노래를 들려 주었다. “하나님은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그 얼굴로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네. 사랑의 하나님 평강의 하나님 그얼 굴 네게로 드사 평강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빠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때로는 즐거워 발을 구르기도 하고 때로는 평안 가운데 주목하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태아는 어떤 음에 반응하게 되어있다. 이 것은 의학적으로도 증명이 되어 있다. 심지어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알아서 특정한 음들이 특정한 태아의 어느 영역에 발달을 돕게 하기 위해 음을 이용한 태교를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특히 궁중에서… 태아는 그야 말로 아무런 기존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순수한 피조의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태아들이 공기의 떨림에 반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설계에 의한것이 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다. 서두에 음악의 감정론에 대해 이야기한 것 과 같이 사람은 음의 떨림과 화음의 특성에 따라 자연적으로 다른 감정을 느낀다. 그것은 교육받은 것도 훈련되어 진것 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설계되고 만들어 진것이다.
언젠가 예배를 통해 크게 공감한 말씀이 있다. 인간은 만들어 진 목적을 이루는 삶을 살아갈 때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있다는 말씀이었다. 진정 주옥과 같은 말씀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를 지으신 목적에 따라 살아갈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 기본적인 목적 중 하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게 하는 것이다. 이 존재론적 목적은 세상이 끝나고 영원한 천국에 까지 연결된다. 우리가 이땅에 보내어진 목적은 하나님의 소원인 복음전하여 제자삼아 교회를 이루는 것이고 그 사명이 이땅에서 완성되면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목재목적을 이루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 곳에서 우리의 존재 목적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기에 행복의 극치를 맛보며 살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그곳은 그야말로 천국이 될 것이다.
이제 ‘음악의 하나님의 것’ 이라는 소제의 이야기를 맺으려 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비단 음악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음악은 하나님의 음성의 속성을 닮은 하드웨어와 같다. 사람을 영혼에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닮았다. 물론 현재의 세속음악들은 세상 권세 잡은 악한 영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더 음악의 원래 주인인 하나님께로 돌려드려야 한다는 결심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원래 하나님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음악사 적인 측면에서 그러하고 음악학 측면에서 그러하고 인간의 존재론적 측면에서 그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것을 원래의 자리로 돌리려는 것이 우리의 존재론적 사명이기 때문이다. 원래 하나님의 것이 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나서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그래서 다시 회복된 우리는 우리의 존재 목적인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이다. 음악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곳에 쓰일 때 가장 빛이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위대하게 된다. 그것을 되찾아가는 우리의 여정도 행복으로 물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