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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하나님의 것-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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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속성이 배어있는 배음들 ; 하모닉스) —- 휴스턴 서울교회 찬양대 지휘자 김영관 형제
‘공기의 떨림은 하나님의 숨결’ 이라는 말에 동감 할 수 밖에 없었던 두번째 이유는 화음이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알게 되었을 때였다. 음악을 전공하게 되면 기초과목으로 듣는 몇 가지 과정 중에 하나가 ‘화성학’이다. 사람들은 어떤 화음을 들었을 때 일련의 특정한 감정을 갖게 된다. 소위 말하는 주요 3 화음을 듣게 되면 맑고 밝고 깨끗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이것은 누구에 의해 훈련된 것 도 아니고, 누군가가 그렇게 하자고 약속한 것도 아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드는 느낌이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주요 3화음 중에 1도 화음이라고도 하고 으뜸화음이라고도 하는 ‘도, 미, 솔’이다. 이 화음을 듣게 되면 불편하지 않고 완전하고, 맑은 느낌을 갖는다. 그러나 ‘Cm’화음을 듣게 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우울한 것 같기도 하고, 탁한 느낌도 들고, 불완전하고 불안함과 같은 느낌들이 들게 된다. 이 또한 누구에 의해 정해 진 것도 아니고, 약속 되어 진 것도 아니다. 이렇게 울림이라는 것은 사람의 영혼에 어떠한 영향을 주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화음, 혹은 화성들은 영혼을 움직이는 속성을 가졌다. 그래서 나는 화음은 하나님의 음성에서 배어 나오는 잔향, 혹은 울림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왜냐하면, 화성 속에는 하나님의 속성을 닮은 몇 가지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로 하나님의 속성을 닮은 중요한 근거는 배음으로 이루어진 화음의 비밀이다. 배음(harmonics)이라는 것은 한음이 울릴 때 그 한음만 울리는 것이 아니라 배수의 음들이 동조하는 현상을 일컷는 말이다. 이것을 화성학에서는 배음렬[1]이라고 한다.
한 음은 16개의 배음을 갖게 되는데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배음은 6번째까지의 배음이다. 즉 ‘가온 다’를 울리는 원음으로 할 때 ‘도, 미, 솔’이다. 그래서 으뜸 화음, 혹은 1도 화음을 들었을 때 부딪히거나 불편함이 없는 완전한 음으로 들리는 것이다. 즉 ‘도다.
C음을 울리게 되면 ‘미’와 ‘솔’도 함께 동조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세음은 한음(혹은 울림)에 속해 있는데 ‘도’는 ‘미’가 아니고, ‘미’도 ‘솔’이 아니고 ‘솔’도 ‘도’가 아니다. 세 음은 한음에 속하지만 각각 다른 음들이 아니란 이야기 이다. 이쯤 되면 신학적 조회가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속성을 설명하는 어떤 것과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삼위일체론’이다. 나는 이것을 깨달았을 때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학을 공부할 때 삼위일체론을 설명하는 가장 완벽한 도식이 라고 하면서 조직신학 교수님께서 그려주던 그림이 바로 이것이다. 이 도식은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설명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속성을 설명하려는 어떠한 가설들이 맞는지 틀리는지 가려내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어떠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가설이라도 이 도식에 맞추어 볼 때 오류가 나온다면 그것은 바른 설명이라고 볼 수 없다.
이 도표는 라틴어로 되어있지만 번역하면 이와 같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이 아니고, ‘아들’은 ‘아버지’가 아니고, ‘아버지’는 ‘성령’이 아니고, ‘아들’도 ‘성령’이 아니다.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삼위일체 속성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예들을 찾아왔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것이 ‘물’이다. ‘물’은 세가지 형태(수증기, 액체, 얼음)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오류인 양태론에 빠질 위험을 제공해 왔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 이런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신비를 가장 근접하게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아직 나는 이보다 더 근접한 예를 아직 찾지 못했다. 평소 존경하는 조직신학 교수님께 이러한 나의 견해를 말씀 드리고, 조언을 구했을 때 그분 또 한 이렇게 명료하게 삼위일체의 속성을 설명할 수 있는 예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뿐더러, 화성 속에 그러한 하나님의 신비를 설명할 수 있는 속성이 숨어있는지 처음 알았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학술적 체계를 갖춘다면 놀라운 신학적 발견일 수 있다고 격려해 주셨다; 저자 주) 바로 이 화성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 이 보다 더 완벽하게 하나님의 삼위 일체의 속성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의 목소리는 그 사람의 속성을 드러낸다. 이와 같이 음악의 기본단위가 되는 화성 속에 하나님의 속성이 녹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음악은 하나님의 속성을 담은 하나님의 목소리라고 비유했던 영화 속 대사가 다시 한번 내 설레는 가슴을 두드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음악은 원래 하나님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부인 할 수 없게 되었다.
두 번째로 화성은 사람의 영혼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음성의 속성과 닮아 있다. 서두에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화음은 사람의 영혼에 감흥을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오랜 옛날 위대한 어떤 음악가가 그러기로 약속한 것도 아니고, 그것에 의해 사람들이 훈련되어진 것도 아니다. 불렵화음을 들을 때 사람의 마음은 불안해 진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음을 ‘환타스틱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은 불안에서 오는 자극을 인간 본성이 반응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양음악사의 사조들 중에 ‘바로크 음악[2]’ 사조가 있었다. 이미 이시기 음악가들은 음에 감정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로 화성과 음(tone)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이를 음악사에서는 ‘감정론’이라 한다). 예를 들어 천국을 묘사하기 위해 맑고 밝은 화음들과 높은 톤을 사용한 반면, 지옥 혹은 마귀 등을 표현하기 위하여 마이너계열의 음 혹은 저음들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음들 속에는 원래부터 가졌던 독특한 사람의 영혼이 감지하는 보편적인 느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랬다고 여겨진다. 이와 같이 공기의 떨림, 과학적으로는 주파수,는 사람의 영혼을 움직이게 하는 이세상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3차원을 초월하는 어떤 것 중에 하나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닮아있는 공기의 떨림을 ‘하나님의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비유했던 ‘카핑 베토벤’의 베토벤의 고백은 참으로 진실에 가까운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에게 선물로 남겨주신 음악이라는 신비의 도구를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찬양이다. 믿는 우리들은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엿듣기도하고, 치유되기도 하고, 우리의 영혼이 성령에 사로잡혀 인생을 드리겠노라는 거룩한 고백도 하게 된다. 이러한 거룩한 도구로 남겨진 음악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려드리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회복되는 것과 더불어, 우리 믿는 자의 영원한 의무이자 기쁨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찬양은 복음의 사명이 끝난 후에도 천국에서도 계속 되어 질 우리의 사명이자 존재 목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함이라” 이사야 43:21절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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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음렬(倍音列)은 임의의 음의 배음을 나열한 것이다. 거의 모든 악기는 현이나 공기의 column 등 조화떨개를 사용하므로, 한 음을 연주하면 그 음의 배음이 같이 들리게 된다. ( http://ko.wikipedia.org/wiki/%EC%82%BC%EC%9C%84%EC%9D%BC%EC%B2%B4)
[2] 바로크 음악이란 17, 18세기의 유럽 음악을 말한다. 원래 바로크란 17, 18세기의 미술양식을 말하는 것이었으나, 일반적으로 1600년경부터 1750년경의 음악에 대해서도 이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http://ko.wikipedia.org/wiki/%EB%B0%94%EB%A1%9C%ED%81%AC_%EC%9D%8C%EC%9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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