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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 : 철저하게 낮은 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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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장 1~10절

 

1.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누가복음 17장 1절)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권고하셨다. 이때의 어조는 제자들을 양으로 생각하시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향후 목자가 될 것을 예비하여 하시는 말씀이다. "너희들이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파할 때에"라는 문구가 생략된 채 오늘의 본문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하신다. 너희들이 부족하고 혹 실수로 누군가를 실족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없을 수는 없지만, 실족하게 하면 화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너무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람이 살다 보면 한 번쯤 실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누군가의 목자가 된다는 것은 그들의 생사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번의 실수가, 한 번의 실족이 영원한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결과에 대해 알 수 없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결과를 담당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뿐이다. 그 믿는 믿음으로 복음 앞에 완전해야 한다. 비록 내 육신은 실패일지 모르나 내 영혼은 거룩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실족하게 했다는 것의 의미는 인생의 가벼운 일이 아니다. 연자맷돌을 목에 달고 바다에 던져질 만큼의 무거운 문제다. 이를 인식하고 교회 공동체 내에서의 언행에 신중을 가해야 한다. 내 한마디 말이 누군가의 상처가 되고, 내 가벼운 행동 하나가 누군가의 아픔이 된다면, 이 화를 감당치 못할 것이다.

 

 

2.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누가복음 17장 3절)

 

  그러나 우리는 상처를 받고 아픔을 받기 전에 경고하고 용서하기를 힘써야 한다. 실수로 그와 같은 일이 있어났을 수 있다. 부지 중에 그런 일이 일어났을 수 있다. 그러니 그것을 알리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것이 서로 연결된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다. 누군가의 목에서 연자맷돌을 풀어 줄 수 있는 기회다. 누군가의 화를 없앨 수 있는 위대한 사랑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닌가 한다. 화목 제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로마서 3장 25절)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에베소서 4장 32정)

 

  우리가 무슨 일을 만나든지 피차 용서하기를 힘쓰자. 누군가에게 화가 미치는 것을 불쌍히 여겨 용서하기를 힘쓰자. 오늘 본문의 1~2절과 3~4절은 바로 이렇게 짝이 된다. 누군가를 아프게 하지 말라. 아픔을 받았다면 용서하기를 힘쓰라. 나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서로 간에 사랑이 있는 것이다. 일방적인 것은 사랑이 아니다.

 

 

3.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누가복음 17장 5절)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음을 구하였다. 이들은 왜 믿음을 구하였는가? 믿음은 무엇인가? 사도들은 이 문제가 얼마나 현실적인지 인식했을 것이다. 서로 정치적 성향도 다르고 자라온 배경도 다르니 얼마나 많은 부딪힘이 있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이미 그들은 자신이 연자맷돌을 목에 달아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에게 아픔을 준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용서의 기회를 주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 생사의 갈림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구원에 대한 믿음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에 어떤 대단한 믿음이 아니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고 말씀하신다. 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고 하셨을까?

 

  어떤 대단한 믿음이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님을 제자들이 깨닫기를 바라시는 것 같다. 그것은 무엇인가 대다한 것이 주어져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나에게 이 만한 믿음이 있으면 할 수 있을텐데, 나에게 이 만한 능력이 있으면 할 수 있을텐데. 벌써 이 생각에는 하고자 하는 의지나 결심 등이 없다고 본다. 그러니 이하 주인과 종의 비유가 나오는 것이다.

 

 

4.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누가복음 17장 10절)

 

  어떤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믿음의 소유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생사의 갈릴길에서 어느 누가 죽음을 선택하겠는가. 우리는 당연히 생명을 선택할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답은 하나밖에 없다. 이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시는 것이 그저 권고가 아니라 명령이라는 것에 있다. 능력이니 믿음이니 논하기 전에 이를 명령으로 받고 그저 종으로서 행하라는 것이다. 자신이 믿음 있다 하고 행하는 것, 능력 있다 하고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길이 아니다. 그저 명하셨으니 하는 것의 종의 의무다.

 

  어떤 대단한 것을 구하는 사람의 모습은 항상 이와 같다. 그런 의미에서 "한 사람을 품을 수 있는 것이 능력"이라고 말했던 청년이 기억난다. 실로 그렇다. 어떤 대단한 무엇을 품어도, 인류 구원의 꿈을 품어도, 지금 당장 내 곁의 사람이 실족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도들의 믿음을 구하는 요청에 예수 그리스도의 꾸짖음의 음성이 귀에 선하다. 이 꾸짖음이 비단 사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있으니, 오늘 이 말씀 붙잡아 명령에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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