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선목사)
목사란 무엇인가? 이 시대에 중요한 명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목사들이 욕을 많이 먹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4:1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일꾼”과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했다. 사도라는 직분이 대단한 존재도 아니고 하찮은 존재도 아니라는 것이다.(오덕호 저, 목사를 갈망한다, 규장.)
“일꾼”과 “맡은 자”란 대단한 존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일꾼”과 “맡은 자”가 “사람의 일꾼”이나 “사람의 비밀을 맡은 자”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일꾼”이고,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이기 때문에 하찮은 존재도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은 사도라는 직분이 너무 지나치게 과대평가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또 너무 과소평가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목사도 마찬가지이다. 대단한 것도 아니고, 하찮은 것도 아니다. 오늘날 어느 누구도 목사를 하찮은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문제는 목사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이 오늘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장로교는 민주주의와 정치체제가 비슷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것이 왕정하였고, 또 가부장적 사회, 권위주의적 사회였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민주주의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교회정치가 민주주의체제와 같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왕정치체제처럼 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목사가 임금이라도 되는 양, 장로를 당상관으로, 집사를 당하관으로 거느리고 군림하려고 한다.
목사란 무엇인가?
첫째, 목사와 평신도는 신분상 다르지 않다. 즉 목사와 평신도를 구분해서는 안 된다. 평신도라는 표현 자체가 중세기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 목사와 평신도가 모두 다 성도이고, 모두 다 하나님의 일꾼이며, 하나님의 종이다.
목사가 다른 성도들과 다른 것은 신학을 했다는 것뿐이다. 목사와 장로, 집사는 서로 다른 일을 맡은 사람일 뿐이다. 가난한 신학생들이 프라이드를 갖게 하기 위하여 목사를 대단한 직분으로 말하는 신학교수도 있다. 그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목사 자신은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는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는 목사를 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마치 다른 모든 사람들은 흙으로 만들었고, 자신은 금으로 만든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목사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누구나 신학을 하면 목사가 되는 것이다. 오늘 장로나 집사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신학을 하면 목사가 되는 것이다.(이것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목사란 특별한 소명을 받아야 한다고... 위의 글은 이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소명을 받는다는 것은 극히 주관적인 것이 아닌가.)
둘째, 목사는 다른 성도에 비하여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아니다. 더 나은 사람이면 좋겠지만 안수를 받는 순간에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은 사람을 선택하여 안수를 하여야 하지만, 현재 목사를 세우는 시스템에서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젊은 목사는 여전히 한 사람의 젊은 성도일 뿐이다.
내가 본 신학생들, 즉 목사후보생들은 그 나이의 다른 성도들에 비하여,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더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더 낫다고 볼 수도 없었다. 교회에는 신앙의 연조가 깊은 장로님, 권사님들이 있다. 그들은 영적, 도덕적인 면에서 젊은 목사들보다 훨씬 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장로님, 권사님들도 목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목사는 그것을 전공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젊은 목사는 장로님, 권사님으로부터 도덕성과 영성을 배워야 한다. 목사가 되는 순간 모든 면에서 성도들을 압도하는 수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셋째, 그렇다고 해서 목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목사를 존중하여야 한다. 존경까지 할 수는 없을 지라도 존중해야 한다. 그 직분에 대하여, 성경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 이상, 일을 맡긴 이상 존중해야 한다. 목사의 고유의 권한에 대하여는 목사에게 맡겨야 한다. 그것이 맘에 들지 않으면 목사를 바꿀 수는 있지만 그 일 자체에 대하여는 간섭하여서는 안 된다.(이 말은 목사에 대하여 정당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까지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사모는 무엇인가? 한국 교회에는 성경에도 없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직분이 있다. 사모라는 것이다.
사모라는 직분은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나 있어서는 안 된다. 신학을 한 사람은 그 사람의 남편이지 그 사람 자신이 아니다. 남편이 목사라고 해서 사모도 목사의 권한을 갖는 것이 아니다.
사모는 한 사람의 성도일 뿐이다. 목사도 한 사람의 성도이고, 다만 말씀을 맡은 자일뿐인데 하물며 그 부인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 교회에는 사모가 없다. 내 아내는 현재 서리집사이고, 성도들이 인정하면 권사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모는 없다.
성도들도 목사의 부인에 대하여 특별한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 똑 같은 성도로 생각하여야 한다. 신앙 수준이 높을 수도 있고 낮을 수도 있다.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한 사람의 성도로 대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사모가 이렇다, 저렇다 하여 목사의 목회에 시비를 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시비를 하면 결국 사모라는 직책을 인정하는 것이 되고 만다.
한국교회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목사관이 바로 정립되어야 한다. 지나치게 우상화해서도 안 되지만 목사를 무시해서도 안 된다. 나는 평신도 같은 목사, 목사 같은 평신도로 구성된 교회(아니, 평신도라는 말 자체가 사라진 교회)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