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나님께서 친히 영감을 통해 기록하셨지만,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그 말씀이 기록된 시대적 배경과 문화적, 종교적 상황 등을 폭넓게 살펴보아야만 한다.
당시 문화와 종교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었던 주체들은 유대교와 헬레니즘, 로마의 제국주의였다.
그중 유대교는 기독교의 뿌리가 되었고, 헬레니즘은 기독교를 성장시킨 지적 토양이 되었으며, 로마의 제국주의는 교회 형성과정에 도움을 주고 기독교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 즉 로마의 안정된 정치와 법률, 건축물, 조직력 등을 제공하였다.
그렇지만 이 세 가지 문화적 요소는 역설적으로 기독교를 적대시하는 가장 무서운 세력이 되었다.
◇유대교=1세기 팔레스타인 인구는 150만∼200만명이었으며, 그중 유대인은 3분의 1 정도 되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유월절 예루살렘에 모여드는 유대인은 무려 270만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들이 예루살렘을 찾은 것은 짐승을 잡아 드리는 피의 제사(1년에 18만5000여 마리)가 요시야의 종교개혁 이후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려야만 하는 것으로 제도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이 관례를 따라 유월절에는 예루살렘을 방문하셨으며, 오순절에 각 나라에서 찾아왔던 유대인들은 제자들이 ‘자기들의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크게 놀라워하였다(눅 2:42, 행 2:6).
주후 70년, 예루살렘을 점령한 로마의 티도 장군은 성전을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유대인들의 반발을 의식하여 “모든 것들은 다 죽이고 불태우되 성전만은 남겨두라”고 명령하였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몇몇 로마 군인들이 명령을 무시하고 성전 문 곁에서 불을 피우고 쬐다가 크게 번져 성전 전체가 불타버렸다고 한다.
이때 성전 안에 붙여 있던 많은 금이 녹아 돌 틈으로 스며들었고, 군인들은 금을 얻기 위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마 24:2) 다 무너뜨렸다.
이로써 예수님의 예언이 정확히 이루어졌다.
◇헬레니즘=헬레니즘, 특히 헬라 철학은 기독교 사상이 확대·발전되는 과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사도 바울은 이미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 서로 교차되었던 가말리엘 문하에 있었고, 어거스틴은 교리적 기초를 세우는 데 신플라톤 철학을 많이 이용하였다.
그리고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연결시켜 가톨릭 신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헬라 철학의 이원론적 사고방식과 신비주의는 초대교회를 큰 혼란에 빠뜨렸던 영지주의(Gnosticism)와 각종 이단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게 했다.
그 밖에도 쾌락이 최고의 선이라고 주장한 에비크로스파와 완전한 자기 절제와 금욕을 강조한 스토아파(행 17:18), 개인주의적인 냉소주의, 상대주의적인 회의주의 등이 있었다.
◇로마의 제국주의=특히 로마의 법률과 모든 제도는 초대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고 당시 건축양식이나 음악 등은 중세까지 계승되었다.
더욱이 로마의 세계적인 통일은 온 세계를 한 이웃으로 만들면서 교통과 언어와 문화 등의 통일을 가져다주었으며, 기독교의 복음 전파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유대교와 헬레니즘, 로마의 제국주의는 단지 성경의 배경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것들은 마치 그림물감이나 악기와 같았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성경이라는 캔버스와 악보에 친히 구원의 역사라는 위대한 그림을 그리셨고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연주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