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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猜忌), 어떻게 다스릴까?
시기심의 본질은 타인의 소유, 특별히 자신이 소유한 것보다 더 휼륭한 소유에 대한 슬픔과 불쾌의 감정으로서, 그로부터 그것을 탈취하려는 욕망을 수반한다. 시기자는 왜곡된 렌즈를 통해 다른 사람을 일그러진 모습으로 보고, 왜곡되게 해석되고, 나쁘게만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이 깨어진 관계의 회복은 시기하는 사람에게 달려있으나, 시기하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회복을 원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시기는 시기자의 눈멀게 하고 시기받는 자를 당황하게 만들어 시기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끔직한 경험이며, 두려운 경험이다.
시기심은 인간의 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장소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 사소한 일 속에 존재하고 있으며, 보통 사람들의 일상사 안에 있다. 이러한 시기심의 중요성은 인간 모두가 어떤 형태로든 시기하거나 시기 받는다는 사실에 있다. 심지어 John Bunyan의 저서 「천로역정」에 따르면 신앙의 원리를 지켜 사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의 시기와 공격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다.
성경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시기심 때문에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최초의 살인자였던 가인도 시기 때문에 동생 아벨을 죽이게 되었고, 사울 왕도 이스라엘 중에서 가장 키가 크고 잘 생긴 사람이었지만 자기보다 키가 작은 사람이 자기보다 더 높은 칭송을 받게 되자 그가 잘 생겼거나 자기보다 가진 것이 많아서 질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는 것으로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였다.
자신보다 상대방이 더 잘되는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하며 축하해 주고, 축복해 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혹시 말로는 축하한다고 하더라도 마음 속에서 매우 불쾌한 감정이 그를 사로잡게 되는 것이 인간 본연의 감정이다. 그래서 서양 속담에 "내가 실패할 때, 나를 동정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면, 내가 성공할 때, 나를 시기하는 사람은 백 사람쯤 된다."고 했다. 이렇듯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여 기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한 직장에 승진 대상자가 여러 명이 있는데 다 승진되고, 자신만 누락되었다고 가정한다면, 승진된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진정으로 축하한다고 격려를 보내줄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진심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며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시기는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어 지금까지 인간을 괴롭혀 온 매우 뿌리깊은 죄악이다. 가인은 그 동생 아벨의 제사가 하나님께 열납되고, 자신의 제물은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게 되자 가인은 분노하게 되었고 시기와 질투가 발동하게 되었다.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동생 때문에 자신의 제물이 거부되었다고 생각해서 결국 동생을 때려 죽인 것이다. 이것은 바로 시기와 질투에서 비롯된 살인이다. 그래서 형제 간에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에 대해서 심리학 용어까지 생기게 되었는데 그것을 "가인적 컴프렉스(Cain's complex)"라고 한다. 가인이 가졌던 시기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이렇듯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차면 추잡하고, 악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탈무드(Talmud)에 어떤 나이 많은 성자가 홀로 외롭게 광야 길을 가고 있는데 도중에 뜻밖에도 두 젊은 사람을 만났다는 내용의 글이 있다. 세 사람이 동행하여 길을 가다가 가만히 보니, 두 젊은 친구 중 한 사람은 욕심이 너무 많고, 한 사람은 시기와 질투가 마음에 꽉 가득 차 있었다. 어느덧 해질녘이 되자 성자는 두 사람이 자기와 동행해 준 것이 고마워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자네들 소원을 들어주겠네! 그런데 딱 한 가지만 말해야 하네! 한 사람이 소원을 말하면 그 다음 사람은 자기가 구하지 않아도 자연히 먼저 소원을 구한 사람의 두 배의 것을 가지게 되네!" 그런데 처음 말한 사람은 하나를 받고 그 다음 사람은 배를 받게 된다니까 서로 말을 하지 않는다.
시기, 질투가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받는다고 하니 말을 안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윽고 성자와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이제 더는 소원을 미룰 수 없었다. 그러자 욕심 많은 사람이 시기, 질투 많은 사람에게 협박을 한다. "야 임마! 네가 먼저 말해! 안하면 죽여버리겠어!" 그랬더니 이 시기, 질투 많은 사람이 뭐라고 소원을 말했는가 하면 "내 눈을 하나 빼주세요!" ! 정말 눈 하나가 빠졌다. 그리고 그 두 배를 받을 사람은 눈이 둘 다 빠졌다. 이것이 인간의 시기, 질투이다.
미국의 Yale(예일)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Peter Salovey(피터 살로비)는 미국에서 발생된 범죄의 20%가 시기와 질투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에서 이혼하여 가정이 깨지게 되는 원인 가운데 30%가 질투 때문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시기와 질투란 참으로 무서운 인간 심리이다. 마귀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라도 접근해서 시기와 질투를 품도록 하고, 그럼으로써 스스로 멸망하도록 하고 공동체를 해체시키는 존재이다. 시기를 꺾기 위해서 깨어 기도하는 자가 아니라면 이 시기의 유혹과 시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사람은 없기 때문에 늘 조심해야 한다.
시기와 질투가 한 사람의 마음에 스며들게 되면 모든 것이 불건전해지게 된다. 그의 말이 불건전하고, 그의 표정이 불건전하고, 그의 생각과 행동이 불건전해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주변에서 볼 때, 일단 말을 곱게 하지 못하는 사람의 심리 저변에는 이 시기와 질투가 깔려있는 경우가 많다. 이 시기와 질투는 대부분은 다른 사람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말을 하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시기와 질투의 원인은 바르지 못한 자아개념을 가지고 건전치 못한 비교의식에서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자신에게 조금 나은 것이 발견되면 금방 교만해져서 자랑하고 싶어 견딜 수 없어 괴로워하게 된다. 또 다른 사람보다 자신에게 조금 모자라는 것이 발견되면 열등의식에 빠지고 그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험담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만히 있지 않고 우리의 마음 속에 죄로 나타나게 되는데 질투로 인해서 상대방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험담을 하고, 깎아 내리는 죄를 짓게 된다.
결국 비교의식이 시기를 낳게 하는데 이에 대해서 C. S. Lewis(루이스)는 인간을 타락시키는 사단의 방해도구 중에 비교의식이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했다. 이것은 인간을 파괴하며 성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신앙의 방해 요소이다. 인간의 심성은 타락 이후에 죄성으로 인하여 불건전해 진 상태이다. 따라서 비교의식은 사람들 사이에 질투와 시기심을 유발시키며 자신에게 무엇인가 나은 것이 있을 때, 곧 교만으로 작동되며 자신에게 무엇인가 없을 때는 곧 열등감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21장 22절 베드로의 비교의식에 대하여 야단치신 일이 있으셨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실 때, 베드로는 요한을 의식하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는 말씀을 하셨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도 비교의식을 부추기거나 자극하면 일시적인 열심을 낼 수는 있어도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소멸하게 되며 성도들의 정신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주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각자를 다르게 창조하셨고 하나님 앞에 각자는 유일하며 독특한 존재들이기에 그 개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삶의 모습이 다른 것으로 인식하여 수용할 줄 아는 것이 신앙적이고 은혜로운 삶이다.
야고보서 3장 13절-18절에 보면 시기라는 단어 앞에 수식어가 붙어 있는데 그것은 "독한" 시기라고 했다. 시기에는 다 독(毒)이 있다. 선한 시기심이라는 것은 없다. 어떤 종류의 시기든지 시기에는 반드시 독이 있어서 자신을 헤치고,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고 마는 것이다. 독을 품고 사는데 건강할 리가 있겠는가? 병도 여기서 생길 수 있다. 우리 말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퍼진다"고 했다. 왜 배가 아퍼지는 것인가? 마음 속에 독이 생겨서 그런 것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야고보서 3장 14절에 보면 "이런 독한 시기의 마음이 있을 때는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이 때, 자랑하다가 독이 튀어 나와서 자신을 마음을 쓰리게 하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쓰라리게 하기 때문이다.
미국 속담에 "심장에 좋지 않은 두 가지 것"이 있다고 한다. 그 두 가지는 영어로 "running up(위로 올라가는 것)"과 "running down(밑으로 내려가는 것)"이라고 했다. "running up"이란 "계단을 오르는 것"이며 "running down"이라는 것은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깍아 내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시기와 질투를 가지고 있으면 독을 품는 것이기 때문에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없다. 늘 다른 사람에 대해 민감하여 시기, 질투하면서, 긴장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저절로 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시기와 질투는 가장 에너지가 많이 소요되는 정신적 긴장감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은 늘 피곤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넓은 의미에서 신경 정신증(psycho-neurosis)"라고 볼 수 있다.
시기와 질투가 한 개인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한, 우리는 마음의 평안을 얻기 어렵다. 바로 시기와 질투가 마음의 평안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 속에 시기와 질투가 있으면 이것을 숨기지 말고, 그대로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한다. 고백하는 데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마귀는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고 자꾸 위장하고, 숨어 들어가려고 한다. 시기와 질투를 어쩔 수 없는 일로 합리화시킨다든지, 누구나 다 범하는 죄라고 일반화시킴으로써 이 죄가 마음 속 깊은 속으로 숨어 들어가서 회개하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므로 시기와 질투를 해결하는 방법은 솔직하게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이 해결의 첩경이다.
"시기심이 무슨 죄나 되나? 아마 세상에 시기심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거야!" 그 말은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게 됨으로써 절대로 회개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죄를 죄로 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점점 더 깊은 시기와 질투의 늪에 빠져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기와 질투를 직시하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시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시기의 대상을 축복하는 것이다. 시기와 질투를 잘 분석해 보면 대체로 이것은 자기와 관계없는 사람에게서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가령 문구점을 하는 사람이 어떤 광부가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해서 질투하지는 않는다. 같은 동네 신발 가게가 잘 되도 질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웃 문구점이 자리를 넓혔다는 것은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시기와 질투는 일반적으로 동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직장에서 승진, 진급 발표가 나면 누군가 되고, 누군가 안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명단을 보면서 '김 아무개'라는 사람이 승진되었다고 했을 때,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그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 동기생 윤 아무개가 승진된 것을 발견했을 때는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게 된다. 목사는 교인들이 잘되는 것에 대해서 질투하지 않다. 누구도 시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시기로부터 극복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시기를 대적해야 한다. 이 때, 시기에 빠지지 않고 시기를 극복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면서 시기를 물리쳐야 한다. "하나님! 제가 시기에 빠지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시지요? 제가 시기하지 않고 늘 온유한 생각을 하며 살기를 원하시지요?" 주님의 뜻을 물으면서 스스로 시기하지 않는 평안한 모습을 마음 속으로 그려야 한다.
아울러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 5:8-9)." "너희는 열매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엡 5:11)."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는 말씀대로 자신의 마음을 시기로 인해서 흔들어 놓으려는 악한 영(evil Spirit)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하고, 책망하며, 물리쳐야 한다. 하지만 한 번 시기를 대적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음에는 더 고차원적이고 지능적으로 사단이 인간을 시기에 빠뜨려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을 분산시킬 것이다. 시기에 압도되어 하루 하루를 살다보면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모습이 흐려지고 그 음성도 점점 작아지게 된다. 그럴 때, 마다 계속적으로 대적해야 한다. 이것은 대단히 실제적인 것이어서 마귀를 대적할 때에 시기에 빠지려는 마음이 물러가게 될 것이다. "나를 시기에 빠뜨리려는 악한 영! 나는 그리스도안에서 성실함과 담대함으로 승리할 것이다. 이것을 앗아가는 영! 나를 시기에 빠뜨리려는 너의 궤계에 나는 빠지지 않을 것이다. 너는 나? 渶?예수의 이름으로 묶임을 받고 쫓겨날지어다!" 이와 같이 시기가 생길 때마다 외치고 선포하고 대적하면서 성령을 의지해야 한다. 이러한 논박과 대적이야말로 시기로부터 그리스도인을 지키는 성경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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