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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이 복음찬양의 가사처럼, 우리는 지금 불확실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신문과 공중파가 너무도 많은 것들을 쏟아놓기 때문에, 사실상은 내일일은 모르고 살아간다는 대답이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계십니다. 세세한 것 까지도 계획하시고 간섭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향한 계획뿐만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개인이건, 세계적이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사건이 우연이 아닙니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사실 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깨어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사건을 만나도 답답할 정도로 무딘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지난날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아무도 모르게 심령이 괴로울 정도로 한숨 짖고 답답해하며 눈물지은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렇게도 하나님께서 계획적으로 인도하셨을까? 깨닫게 되지 않습니까? 저도 내 삶을 돌이키면, 정말 기가 막힌 방법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죽을 것 같은 환경 속에서도, 피할 수 없는 낭떠러지 앞에서도, 그리고 더 이상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의로운 길로 인도하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고린도전서2장9절 말씀에 “하나님의 섭리는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계획을 몰랐습니다. 알지도 못했고,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과거에 인도하신 것처럼, 현재에도 미래에도 인도하실 것이란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호와 이레’란 뜻을 아시지요, 아브라함이 아들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려고 할 때, 아브라함이 칼을 들고 내리치려는 순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급히 부르시며, ‘이제야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는 줄 알겠다.’하시면서 수양 한 마리를 대신 제물로 드릴 수 있도록 준비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때, 아브라함이 고백한 말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셨다, ‘여호와 이레’ 외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셨다...” 얼마나 확신에 찬 말씀입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나 섭리를 깨닫지 못하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 그것은, 내 경험이나 지식이나 내 생각과 판단에 의해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시편139편에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이 나를 다 알고 계신다.’라는 말씀을 확실히 믿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습니다. 어느 분이 홀로된 할머니에게 그랬다잖아요. '할머니, 항상 얼굴이 밝으시니 보기가 좋아요. 저는 자주 찾아뵙지 못하지만 예수님이 날마다 찾아와 주시니까 외롭지는 않으시죠.' 그러자 그 할머니는, 고개를 설래 설래 흔드시면서 '아니요 그 말씀은 틀린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날마다 나를 찾아와주시는 분이 아니시고, 여기서 나와 함께 살고 계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말했다 합니다. ‘날마다 함께 하시는 주님’ 얼마나 확신에 찬 말씀 입니까? 이처럼 뚜렷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 없습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라는 찬송의 가사처럼, 우리의 인생이 어떤 상황에서도 만사형통할 수 있는 비결을 주님은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걱정하는 것은, 내일에 대한 염려입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주님은 마태복음 6:34말씀에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내일 일은 내일 가서 염려해도 괜찮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영어성경에서는 이 말씀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For tomorrow will worry about itself(내일 일은 내일 그 자신이 스스로 염려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원문에는 내일이라는 단어가 의인화되어 있습니다. “내일 일은 내일이 알아서 스스로 처리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에게는 ‘여호와 이레’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에벤에셀”로 돌보아주신 하나님은 “임마누엘”로 지금도 우리를 돌보아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와이레”로 우리의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앞으로도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내일 일을 위해서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은 결코 내일 일을 위해서 염려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주와 더불어서 날마다 매순간 마다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
칼럼
내일일을 어떻게 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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