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전 8:17)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지난 봄에 약속한 모임이 있는 날 아침부터 눈이 왔다. 모임 장소에 먼저 도착해서 길에 쌓인 눈을 치웠다. 약 1.5km가 되는 산길의 눈을 치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45년도 더 된 군대 생활이 회상되었다. 넉가래로 쌓인 눈을 치우면서, 제대하면 다시는 눈을 보고 낭만에 젖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모임에 참석하는 지인들의 안전을 위해 4시간 동안 시간을 다투며 제설 작업을 했지만, 지인들의 차는 모임 장소에 올라갈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인근 모텔로 숙소를 옮기기로 하고, 나는 차(JEEP, 랭글러 루비콘)를 타고 산 밑으로 내려가야 했다.
그런데 저녁에 기온이 내려가서 잔설이 살얼음으로 변했다. 내리막 급 경사길이 빙판이 되면 루비콘(험로에 특화된 자동차)이라고 해도 황천(黃天)길이 된다. 하는 수 없이 차를 산에 두고 걸어서 내려왔다. “루비콘이 가는 길이 곧 길이다.”라고 하지만 빙판길 급경사에서는 꼬리를 내려야 한다.
한계를 아는 것이 지혜다. 자기가 가진 자동차의 성능만이 아니다. 자기 신체 능력의 한계를 알아야 하고, 소유의 한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오를 수 없는 산이 있다. 하나님만이 오르실 수 있는 산이 있다는 말이다. 생계를 유지하고 사업을 경영하는 일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운행할 수 없고, 세상을 지탱할 수도 없다. 더구나 자기의 무덤이나 자기의 죄책에 부딪힐 때면 우리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다.
죄로 얼룩진 과거의 삶을 회개하여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깨끗게 하면, 그 시점에서 세상이 끝나면 좋을 텐데, 마치 십자가의 한 강도처럼 회개하고 용서받자 곧바로 세상이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회개한 후에도 삶은 계속되고, 또다시 넘어지고 실수한다.
두 주먹 불끈 쥐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노라고 결심하지만, 작심삼일(作心三日)이다. 나는 오래전에 하루라도 죄짓지 않고 살아보려 했던 체험을 통해서 이 사실을 알았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은 타락한 본성을 소유한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