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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의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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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는 거대한 야생동물의 대이동이 일어나는데 매년 5월부터 12월까지 150만 마리의 누, 20만 마리의 얼룩말, 그리고 50만 마리의 가젤이 대 이동을 한다고 합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물을 찾아다니는데... 이 동물들이 이동하는 거리가 약 3,200km나 된다고 합니다.

동물만 물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26장에 보면 이삭이 물 때문에 이웃 사람들과 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막에서의 오아시는 생명줄과도 같은 것입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을 채워줄 영적인 물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막의 물은 오아시스라고 한다면, 인생의 물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물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는 것처럼,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실 분이 하나님이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전에 불렀던 찬양중에 ‘생수의 강’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생수의 강이 내게서 흐르네 저는 자 걷고 눈먼자 보겠네 옥문열고 갇힌자 푸시는 생수의 강이 내게 흘러 넘치네 우물물아 솟아나라 솟아나라 넘치도록, 솟아나라 넘쳐나게 솟아나서 날푸소서...

우리를 갈망하게끔 만들어 놓는 것이 바로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갈망을 해결 해 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그 어느 곳에서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유명한 극작가 ‘헤밍웨이’의 소설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들이 집을 나간 어느 스페인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간 아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아들을 용서하기로 작정을 하고 한 신문에 이런 광고를 냈습니다.

“파코, 화요일 정오에 몬타나 호텔에서 만나자. 아버지는 널 다 용서했다. 아빠가”
‘파코’란 이름은 스페인에서 아주 흔한 이름입니다. 마치 철수야 영희야 부르는 것 같은 이름입니다.

아버지가 약속한 몬타나 호텔에 나갔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거기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파코’란 이름의 젊은이들이 800여명이나 모여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 시대에도 은혜에 목말라 세상을 방황하며 살아가는 ‘파코’같은 젊은이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절망하고, 가망이 없고, 괴로워 몸부림치다가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목말라 죽어가기 직전에 희망을 가지고 찾아 나온 ‘파코’의 젊은이처럼, 지금 이 시대에 마지막 기회를 아버지께 나오면 잡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절대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사람들이나... 사랑하는 남편까지도, 우리의 아이들과 명예와 부도... 지식도 채울 수 없는 공간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한 동안 심취해서 불렀던 찬양이 있었습니다. 주님 한분밖에는... 이란 찬양입니다.

주님 한분밖에는 아는 사람 없어요 가슴 깊이 숨어 있는 주를 사랑하는 맘
주님 한분밖에는 기억하지 못해요 처음 주를 만난 그 날을 울며 고백하던 말

주님 한분밖에는 사랑함이 없어요. 작은 가슴 뜨거웁게 주님 피가 흘러요
주님 한분밖에는 약속한 이 없어요 나를 믿고 따르는 자 반석위에 서리라

나는 행복해요 죄 사함 받았으니 아버지 품안에서 떠나 살기 싫어요
나는 행복해요 사랑이 샘솟으니 이 세상 무엇이든 채우고도 남아요

수많은 사람들은 너무도 엉뚱한 곳에 가서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으로 아무리 채워도 만족함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찾아 헤매이는 사람들을 보면, 죽을 줄 알면서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은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이곳 미국에서도 황금만능주의 시기였던 때에 미국 최대 부호 9명이 한 자리에 함께 했을 때 각 언론들은 ‘20세기의 신화’라고 놀라워했습니다.
그 후 25년이 지난 당대 부호였던 이들을 조사해 보니... 9명 모두 한결같이 한 사람도 행복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겠습니까? 이들은 삶에 대한 갈증을 돈으로 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생수의 근원을 어디에서 찾느냐가 중요합니다.
찬양의 근원이 아버지에게서 나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오늘도 찬양의 복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 게시물은 Wise man님에 의해 2012-12-18 00:04:12 게시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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