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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들의 범죄[The Weakness of God's Servn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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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 

 

 

'성경이 어떤 책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현실적인 책'이라고 대답합니다. 성경은 낭만주의나 이상주의와는 반대됩니다. 성경은 인생에 대해 낙관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낭만주의는 충분한 근거가 없으면서도 낙관적인 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세상에서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현대의 종교적인 개념과도 반대됩니다. 20세기에 들어서 사람들은 종교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신앙적인 진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현대의 사실주의와도 다릅니다. 인간의 딜레마에 대해 정직한 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정말 거칠게 쓰여졌지만 현실적인 진리(a realistic truth)입니다. 인간의 실제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고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낭만주의와 이상주의

 

성경은 인간을 죄인이지만 영광스러운 존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존엄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현재 죄인입니다. 인간을 낭만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낭만주의자들처럼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데도 세상의 모든 일이 다 잘 되어가리라고 생각한다면 세상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를 미워하며 정죄하시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합니다. 죄에 대해서, 이 세상의 타락에 대해서, 우리는 낭만주의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현실주의를 볼 때에 우리는 종교개혁가들이 왜 정부의 형태를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많은 나라에서 견제와 균형을 위해 민주주의를 만들었습니다. 칼빈(John Calvin)은,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한 인간이 독재정치를 하는 것보다 여러 명이 다스리는 것이 낫다고 지적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아래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타락한 세상에서는 자유와 사랑뿐만 아니라 어떤 구조와 징계도 필요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는 아이들을 사랑해 주는 것뿐만 아니라 종종 벌을 줄 필요도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대로 아이들도 타락의 일부분이라면, 우리는 그들에게 자유와 함께 이 타락한 점에 대해 구조와 형식을 갖추어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이 현실적인 책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결코 이론적인 명제나 형이상학적인 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이나 교회 혹은 사회에서의 실제의 삶에서 현실을 의미합니다. 죄는 죄입니다. 죄는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하며 결코 축소되어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죄에 대해 강하게 말합니다. 죄는 단지 심리적인 실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죄인이며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인간은 자신과의 문제, 타인과의 문제, 그 어느 문제에 있어서도 그러한 문제들을 갖고는 절대로 하나님 앞에 그대로 설 수는 없습니다. 죄는 그야말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에게는 구세주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상주의나 낭만주의는 사실 매우 잔인합니다. 이상주의는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생각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불가능한 것을 기대합니다. 그들이 누구인가는 생각지 않습니다. 부부생활에 있어서도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불가능한 이상적인 것을 요구하는 것보다 더 잔인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완전하기를 요구하고, 자녀가 부모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도 부모와 자녀 모두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목사와 교인들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합니다. 서로에게 이상주의적인 것을 요구해서는 안됩니다. 관계 형성에 있어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제외하고는 완전한 관계란 없습니다. 완전한 것만을 찾는다면 아무 것도 갖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상주의는 결국 가정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를 파괴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죄인이며 구원을 받은 후에도 에수님이 다시 오실때까지는 현재의 삶에서 완전치 않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성경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반 정도만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현실적입니다. 성경의 현실주의는 책상에 앉아 이론적으로 사고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냉소주의적인 접근를 하거나, 인간을 우연의 산물로 보거나, 혹 인간을 낭만주의적으로 바라 본다면 인간을 바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냉소주의도 낭만주의도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축소하지 않아야 인간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인간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죄를 변명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요한일서 2:1,2을 봅시다;"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죄치 않게 하려함이라. 만일 누가 우리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함이라." 우리의 소명은 죄를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죄를 범하더라도 우리에게는 대언자가 있습니다. 얼마나 아릅답습니까? 하나님은 그리스도때문에 우리의 심각한 죄를 보시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지도자들의 범죄

 

대개 종교적인 책이나 이상주의적인 책들은 언제나 위인들을 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간혹 아이들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가르칠 때에 상당히 당황스러운 말씀도 기록되어 있는 책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사실만을 말하기때문에 위인들의 범죄에 대해서도 현대의 어떤 책보다도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인들은 하나님을 의지한 사람들이며,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위인들에게도 다른 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들에게도 연약한 점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연약하다는 사실에 전혀 당황하시거나 놀라지 않으십니다. 로마서 3:23에는 그러한 점을 지적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라는 말은 성경의 지도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노아는 위대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던 문화 전체에 대항한 유일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술에 취하여 벌거벗었던 사실을 변명하거나 감추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노아도 우리와 똑같은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거듭 거짓말을 하였고, 이 거짓말은 이삭에게 이어져서 적장 앞에서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사라도 하나님께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었는데도 웃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야곱은 형을 속였습니다. 모세는 화를 잘 내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아 내려오다가 백성들의 금으로 만든 우상을 보았을 때 십계명이 적힌 돌판을 던져 부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모세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화가 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후에 그가 화가 나서 지팡이로 바위를 친 것은 문제가 되었습니다.

 

아론은 제사장이었지만 우상을 만들고 변명을 하였고, 미리암은 하나님이 임명한 지도자에게 불평하다가 한동안 문둥병자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정복하라고 하신 나라들을 다 내쫓지 않고 타협을 하였으며, 기드온은 훌륭한 일을 많이 하였음에도 에봇을 만들어 왕처럼 섬김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신하의 아내와 간음을 하였으며 그의 남편을 간접적으로 살인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살인이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좋은 것을 다 받았으나 아내들을 위해 우상을 만들고 숭배했습니다.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도 낙담할 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안디옥에서 이방인들과 한 자리에서 식사하다가 예루살렘에서 감독들이 온다니까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여 유대인과 타협했다가 바울의 책망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성경적인 원리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종들의 연약함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리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지도자와 범죄

 

첫째, 인간은 모두, 심지어 위인들이라 할찌라도, 구원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지도자들, 비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으로서 아름다운 덕을 쌓고 훌륭한 일을 많이 하였다고 할찌라도, 역시 그들도 구원받아야 하는 죄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죄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아니면 속죄될 수 없습니다.

 

둘째, 죄는 정죄되어야 합니다(고린도전서 5:1-5). 하나님은 특히 지도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의 죄를 꾸짖으십니다. 사라가 거짓말을 했을 때는 "네가 거짓말을 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미리암은 문둥병으로 벌을 받았고, 베드로는 바울의 질책을 받아야 했습니다(갈라디아서 2:11). 다윗은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했으며, 하나님은 그에게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라"(시편 32편)고 꾸짖으셨습니다.

 

셋째, 성경이 지도자들의 죄를 지적한다고 해서 그들의 지도력의 상실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죄를 범했다고 해서 무조건 그 순간에 지도력의 종말을 가져온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어떤 인간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다윗이 양을 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가 앞으로 하나님의 일을 완전하게 행하리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도자로 부르실 때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낭만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도자들이 범죄한 후라도 회개하면 대개의 경우에는 지도력이 지속되었습니다. 아론, 다윗, 베드로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죄를 숨기면 매를 맞지만 회개하면 회복되었습니다(시편 32:3-5, 요한일서 1:9).

 

2. 지도자의 자세

 

하나님은 그의 종들을 부르실 때 그들을 알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낭만적으로 완전하게 보시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실제 모습을 보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된 후에도 계속 범죄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도자로서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첫째, 지도자는 겸손해야 합니다. 이것은 범죄로 인해 자기에게 쏟아지는 모든 비판을 다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앉아서 하나님의 비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지도자가 범죄했으면 다윗이 매를 맞았던 것처럼 매를 맞아야 합니다. 지도자라 해서 범죄를 덮어둘 수는 없습니다. 징계를 달게 받으십시오.

 

셋째, 지도자라고 해서 회개가 필요없는 것(요한일서 1:9)은 아닙니다. 목사이든, 장로이든, 교사이든, 모든 지도자는 다른 사람들처럼 회개하여야 합니다. 오히려 서둘러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의 일에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사울처럼 됩니다.

 

3. 백성들의 태도

 

성경은 지도자들에게 낭만적인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지도자들을 훌륭하다고해서 우상화하지도 않으며, 연약하다고해서 멸시하지도 않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모든 인간, 특히 지도자들의 연약함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첫째, 지도자들이 회개한 후에는 그들을 회복시켜주고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죄는 죄이며 정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받아들여진 후에는 사랑해야 합니다(고린도후서 2:2-4). 이것이 성경이 가지고 있는 균형입니다.

 

둘째, 지도자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상징물(symbol)로 취급하고 있지 않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지도자들은 나무막대기가 아닙니다. 그들이 죄를 지었을 때 충격을 받지 마십시오. 그들도 당신과 똑같은 인간입니다. 만약 아이들이 자기 부모를 어떤 이상으로 정해 놓고 부모가 그렇지 못할 때에 미워한다면, 누군가가 그 아이들에게 부모도 인간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들도 인간입니다.

 

셋째,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데살로니가 후서 3:1). 지도자들을 나무막대기처럼 앞에 세워놓고 뒤로 빠져나가지 마십시오. 그들이 범죄치 않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들을 완수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지도자들의 범죄는 백성들과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들의 범죄는 심각한 문제로서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그들도 당신과 같은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는 우리 모두가 결코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현실주의이며, 지도자를 포함한 모든 인간을 이런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L'Abri Cassettes No.X225, Francis A. Schaeffer, 'The Weakness of God's Servnats', 성인경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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