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언
기독교 신앙의 원천과 중심 그리고 확실성은 신약의 역사적인 그리스도에 두고 있다. 1:1~3, 14에 제시되고(참조 1:1~3, 14 주석), 신약 전체를 통해 한결 같이 확인되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절대적이고도 무조건적인 의미에서 참 하나님이며, 죄를 제외한 모든 면에서 참된 인간이다. 성육함으로써 유일한 신-인(神人)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은 불가분적으로 연합되었다(참조 마 1:1 주석).
그러나 또한 성경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라고 선언한다(신 6:4; 막 12:29). 이렇게 기독교에 넘겨진 진리의 유산에는 삼위일체적 유일신 사상(tribune monotheism)이라는 역설과 육신을 입은 하나님의 신비가 포함되어 있는 바, 이 두 가지 개념들은 모두 유한한 이해력을 초월하며 결정적인 분석과 정의를 거부한다. 그러나 사도 시대의 열렬한 그리스도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렸으나 부활하여 살아 계신 주님에 관한 역동적인 사실을 직접 보고 들었기 때문에(참조 요 1:14; 벧후 1:16; 요일 1:1-3) 이와 관련된 신학적 문제들을 중요한 자리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세대가 지나면서(참조 계 2:4; 수 24:31), 살아 계신 주님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고 본래의 순수함과 헌신이 쇠퇴되면서 사람들은 점차로 복음의 실제적인 내용에서 돌이켜 호기심을 돋우는 이론적인 국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행여나 복잡한 철학의 부속물로써 하나님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환상 때문이었다(참조 욥 11:7; 롬 11:33). 다양한 이단들이 생겨나 교회에 어려움을 야기했으나 그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본성(nature)과 인격(person)에 관한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없었다. 이 문제에 대한 논쟁이 수세기 동안 교회를 흔들어 놓았고, 오랫동안 이단, 종교회의, 종파 분열로 얼룩지게 했다.
이 논쟁에 관한 상세한 연구는 교회사를 연구하는 학생이 아니라면 흥미와 실제적인 가치가 없는 일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사도 시대 못지 않게 오늘날에도 기독교 신앙의 확실성은 신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역사성에 중심을 두고 있다. 또한 이러저러한 모습으로 가장한 고대의 이단들이 살아나거나 부활했다. 초기의 이 논쟁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봄으로써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수세기 전에 그들의 경건한 형제들을 혼란스럽게 했던 오류들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그것들을 경계할 수 있게 될 것이다(참조 요 8:32; 요일 4:1).
오래 끌었던 이 논쟁의 두 국면은 일반적으로 삼위일체와 기독론 논쟁으로 알려진다. 첫째는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 신분에 관계되는 것이며, 둘째는 그분의 성육신에 나타난 신성과 인성의 관계이다. 1세기부터 4세기 사이에 교회는 삼위일체 논쟁으로 가현설(Docetism), 단일신론(군주론, Monarchianism), 아리우스주의(Arianism)와의 싸움에 휘말렸으며, 5세기부터 7세기 사이에는 기독론 논쟁으로 네스토리우스주의(Nestorianism), 단성론(Monophysitism), 단의론(Monotheletism)과 대결해야만 했다.
II. 기독론의 역사적 발전
1. 사도 교회
예수에 관한 사도 교회의 신조는,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이라는 베드로의 증언과 “예수를 주(고전 12:3, 여기서 헬라어 퀴리오스[Kurios]는 히브리어 야훼[Yahweh]에 해당하는 말임)”라고 바울이 인용한 단순한 신앙 선언 속에 잘 요약되어 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그분을 최고의 의미에서 하나님으로 믿었으며, 이 신조를 신앙의 초석(礎石)으로 삼았다(참조 마 16:18 주석). “혈육”은 이 진리를 드러내 주거나 설명할 수 없고, 따라서 그것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참조 마 16:17).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인(神人) 본성에 관한 초기교회의 이 절대적인 확신은 예수와 그분의 사도들의 명백한 가르침에 기초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승천한 후 여러 해가 지나지 않아 “흉악한 이리”들이 양떼를 황폐화시키기 시작했고, 교회 안에서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나 제자들을 이끌고 나갔다(참조 행 20:29, 30).
2. 가현설과 영지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