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언
기독교 신앙의 원천과 중심 그리고 확실성은 신약의 역사적인 그리스도에 두고 있다. 1:1~3, 14에 제시되고(참조 1:1~3, 14 주석), 신약 전체를 통해 한결 같이 확인되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절대적이고도 무조건적인 의미에서 참 하나님이며, 죄를 제외한 모든 면에서 참된 인간이다. 성육함으로써 유일한 신-인(神人)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은 불가분적으로 연합되었다(참조 마 1:1 주석).
그러나 또한 성경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라고 선언한다(신 6:4; 막 12:29). 이렇게 기독교에 넘겨진 진리의 유산에는 삼위일체적 유일신 사상(tribune monotheism)이라는 역설과 육신을 입은 하나님의 신비가 포함되어 있는 바, 이 두 가지 개념들은 모두 유한한 이해력을 초월하며 결정적인 분석과 정의를 거부한다. 그러나 사도 시대의 열렬한 그리스도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렸으나 부활하여 살아 계신 주님에 관한 역동적인 사실을 직접 보고 들었기 때문에(참조 요 1:14; 벧후 1:16; 요일 1:1-3) 이와 관련된 신학적 문제들을 중요한 자리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세대가 지나면서(참조 계 2:4; 수 24:31), 살아 계신 주님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고 본래의 순수함과 헌신이 쇠퇴되면서 사람들은 점차로 복음의 실제적인 내용에서 돌이켜 호기심을 돋우는 이론적인 국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행여나 복잡한 철학의 부속물로써 하나님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환상 때문이었다(참조 욥 11:7; 롬 11:33). 다양한 이단들이 생겨나 교회에 어려움을 야기했으나 그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본성(nature)과 인격(person)에 관한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없었다. 이 문제에 대한 논쟁이 수세기 동안 교회를 흔들어 놓았고, 오랫동안 이단, 종교회의, 종파 분열로 얼룩지게 했다.
이 논쟁에 관한 상세한 연구는 교회사를 연구하는 학생이 아니라면 흥미와 실제적인 가치가 없는 일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사도 시대 못지 않게 오늘날에도 기독교 신앙의 확실성은 신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역사성에 중심을 두고 있다. 또한 이러저러한 모습으로 가장한 고대의 이단들이 살아나거나 부활했다. 초기의 이 논쟁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봄으로써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수세기 전에 그들의 경건한 형제들을 혼란스럽게 했던 오류들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그것들을 경계할 수 있게 될 것이다(참조 요 8:32; 요일 4:1).
오래 끌었던 이 논쟁의 두 국면은 일반적으로 삼위일체와 기독론 논쟁으로 알려진다. 첫째는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 신분에 관계되는 것이며, 둘째는 그분의 성육신에 나타난 신성과 인성의 관계이다. 1세기부터 4세기 사이에 교회는 삼위일체 논쟁으로 가현설(Docetism), 단일신론(군주론, Monarchianism), 아리우스주의(Arianism)와의 싸움에 휘말렸으며, 5세기부터 7세기 사이에는 기독론 논쟁으로 네스토리우스주의(Nestorianism), 단성론(Monophysitism), 단의론(Monotheletism)과 대결해야만 했다.
II. 기독론의 역사적 발전
1. 사도 교회
예수에 관한 사도 교회의 신조는,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이라는 베드로의 증언과 “예수를 주(고전 12:3, 여기서 헬라어 퀴리오스[Kurios]는 히브리어 야훼[Yahweh]에 해당하는 말임)”라고 바울이 인용한 단순한 신앙 선언 속에 잘 요약되어 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그분을 최고의 의미에서 하나님으로 믿었으며, 이 신조를 신앙의 초석(礎石)으로 삼았다(참조 마 16:18 주석). “혈육”은 이 진리를 드러내 주거나 설명할 수 없고, 따라서 그것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참조 마 16:17).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인(神人) 본성에 관한 초기교회의 이 절대적인 확신은 예수와 그분의 사도들의 명백한 가르침에 기초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승천한 후 여러 해가 지나지 않아 “흉악한 이리”들이 양떼를 황폐화시키기 시작했고, 교회 안에서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나 제자들을 이끌고 나갔다(참조 행 20:29, 30).
2. 가현설과 영지주의
(1) 에비온파와 초기 영지주의
그리스도의 본성(nature)과 인격(person)에 관한 첫 번째 오류는 일반적으로 가현설(Docetism)이라고 불린다. 이 명칭은 “~으로 보이다”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단어에서 유래한다. 가현설은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하는데 그 기본적 사상은, 그리스도가 단지 육체를 가진 것처럼 보였을 뿐, 그는 유령이었지 결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말씀(Word)은 단지 겉모습만으로 성육신했다는 주장이다. 이 이단은 사도 시대에 일어나 2세기 말까지 존속했다.
가현설은 특히 에비온파(Ebionites)와 영지주의자들(Gnostics)과 같은 무리들의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전자는 유대인 기독교도들로서 의식(儀式)과 유대교 관습을 엄격하게 고수했다. 후자는 주로 이방인 기독교도들이었다. 영지주의는 기독교적인 용어로 가장(假裝)한 여러 가지 이교 철학의 혼합물에 불과했다.
초기의 믿을 만한 전승은, 시몬 마구스(참조 행 8:9-24)를 그리스도의 본성과 인격에 관한 오류를 처음으로 제창한 자이며 따라서 첫 번째 기독교인 영지주의자라고 지적하여 밝힌다. 몇 해 후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케린투스(Cerinthus)라는 기독교인이 일어났는데, 어떤 이들은 그를 에비온파로, 다른 이들은 영지주의자로 분류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라는 것은 겉모습만 그렇게 보였을 뿐, 실재는 아니라고 함으로써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주장을 했다. 에비온파는 영지주의자들은 아니었지만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하여는 견해가 비슷했다. 에비온파는 그리스도를 단지 요셉의 실제적인 아들로 여겼으며, 그가 경건함과 율법을 준수하는 일로 두드러졌기 때문에 하나님에 의해 메시야로 선택받았고, 따라서 그의 침례 시에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고 간주하였다. 에비온파의 한 무리인 엘케사이파(Elkesaites)는 그리스도가 오랜 세기 전에 글자 그대로 아버지로부터 “낳”음을 받았고, 따라서 아버지보다 열등하다고 가르쳤다.
(2) 영지주의에 대한 대응
그리스도를 본질적으로 우월한 유형의 인간 존재로 간주하는 에비온파와는 대조적으로, 전반적인 면에서 영지주의자들은 그가 인간이었음을 완전히 부인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보통 인간인 예수라는 존재를 일시적으로 소유한 유령 즉 “아이온”(aeon)이었다는 개념을 갖는다. 신성이 실제로 성육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영지주의가 기독교에 미친 엄청난 영향력에 관하여 교회사가인 래투릿은, ”얼마 동안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여기던 자들 가운데 다수가 여러 가지 영지주의 형태 중 이런저런 형태를 고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K. S. Latourette, A History of Christianity, 123). 사도 시대에 점차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영지주의는 교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2세기에는 절정에 달했다. 교회는 영지주의의 심각한 위협을 인식하고 영웅적으로 싸워 이겼다.
이레내우스는 2세기 후반에 쓴 글에서, 요한이 케린투스의 가현설적인 견해들을 반박하려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복음서를 기록했다고 말한다(Irenaeus Against Heresies xi. 1, in Ante-Nicene Fathers, vol. 1, 426; 참조 요 1:1-3, 14; 20:30, 31). 요한은 자신의 편지에서 이단적인 가현설에 대하여 더욱 분명하게 경고하면서 그 지지자들을 “적그리스도”로 낙인찍는다(요일 2:18-26; 4:1-3, 9, 14; 요이 7, 10). 바울은 로마에서 첫 번째 투옥기간 중에(AD 62년경) 골로새에 있는 신자들에게 가현설의 오류에 관하여 경고하였고(골 2:4, 8, 9, 18), 거의 동시에 베드로는 더 강력하게 경고의 음성을 높였다(벧후 2:1-3). 유다도 가현설의 이단에 대하여 언급한다(유 4절). 계 2:6의 “니골라당”은 전적으로 가현설 주창자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영지주의자들이었다(Irenaeus Against Heresies xi. 1, in Ante-Nicene Fathers, vol. 1, 426).
(3) 2세기 영지주의 발전과 이에 대한 대응
2세기 초반에 여러 영지주의 교사들이 일어나서 유해한 이설들로 교회를 괴롭혔다. 그들 중에 두드러진 이들은 알렉산드리아 출신 바실리데스(Basilides)와 발렌티누스(Valentinus)였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영향력 있고 성공적이었던 가현설 사상의 주창자는 2세기 후반의 마르시온(Marcion)이었을 것이다. 그는 결코 영지주의자가 아니었지만, 그리스도에 관한 그의 견해는 영지주의자들과 매우 흡사했다. 그는 예수의 출생과 육체적인 생애 그리고 죽음은 실제가 아니었고, 단지 실제 같은 모습을 보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가현설의 심각한 오류에 대항하여 교회는 용감히 투쟁했다. 2세기 후반에 이단에 대항하는 위대한 정통파 수호자로서 이레내우스가 용감하게 나섰다. 그의 논쟁적인 저서 이단들에 대항하여(Against Heresies)는 특히 영지주의 이단을 겨냥한 것으로서 오늘날까지 보존되었다. 이레내우스는 하나님의 통일성(unity)을 강조했다.
3. 단일신론 (군주론, Monarchianism)
이름이 암시하는 대로 군주론은 신성의 통일성을 강조한다(“군주”[monarch]는 문자적으로 ”유일한 통치자“이다). 이것은 사실상 영지주의의 많은 신과 마르시온의 두 신(神) 개념-그가 악한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던 구약의 하나님과,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여겼던 그리스도-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반작용적인 운동이 종종 그러하듯이 그것은 극단으로 나아갔으며 그 결과 나중에는 교회가 단죄할 수밖에 없다고 여길 정도로 이단이 되었다. 단일신론의 특징을 이루는 경향은 대부분 교회로부터 영지주의적인 가르침을 몰아내고자 하는 것이었으나, 이 치료책은 예상과는 달리 그 질병을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큰 황폐를 야기했다. 단일신론과의 싸움은 2세기 말에 시작되어 3세기까지 계속되었다.
두 유형의 단일신론이 있었는데, 하나는 예수가 자신의 고유한 신성을 갖지 못하고 참된 인간 영혼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신성한 능력이 예수의 인간 육체에 생기를 넣어 주었다고 가르치는 역동적 단일신론주의자들(Dynamists, “권능”을 뜻하는 헬라어에서 유래함)이고, 다른 하나는 한 하나님이 자신을 서로 다른 양태(樣態)로 나타냈다는 개념을 가진 양태론적 단일신론자들(Modalists)이다.
(1) 역동적 단일신론
역동적 단일신론자들은 신성의 통일성을 견지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을 완전히 부인하여, 그를 단지 하나님이 택하여 메시야가 되게 하고 신성의 위치에까지 격상된 단순한 인간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이 이론의 변형된 형태인 양자론(Adoptionism)에 따르면, 인간 예수는 완전에 도달했고 침례 시에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
(2) 양태론적 단일신론
양태론적 단일신론자들은 한 하나님이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냈다고 가르쳤다. 그들은 인격의 구분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삼위일체적인 성격에 관한 신조를 완전히 버렸다.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의 참된 신성을 인정했으나, 그 둘은 동일한 신적 존재에 대한 서로 다른 명칭에 불과하다는 설명을 서둘러 첨가했다. 이 견해는 종종 성부수난설(Patripassianism)이라고 불리는데, 그것은 아마도 성부가 성육하여 아들이 되었고 그 후에 그리스도로서 고난을 받고 사망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와 비슷하게 부활 시에 아들은 성령이 되었다. 이 학설은 가장 유명한 지지자인 사벨리우스(Sabellius)의 이름을 따라 사벨리우스주의(Sabellianism)라고 불린다. 사벨리우스주의자들은, 동일한 신적인 개체가 삼위(三位)의 명칭들을 가지고 다양한 우주적 기능을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성육하기 전에는 그 신적 존재는 아버지였고, 아버지는 성육신 때에 아들이 되었고, 부활 시에 아들은 성령이 되었다.
3세기 초에 테르툴리아누스는 양태론적 단일신론을 반박하면서, 하나님의 아들의 인격성과 신성의 통일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는 하나님보다 서열이 낮은 지위에 속한다고 제안했는데, 이것이 종속론(Subordinationism)으로 알려진 이론이다.
4. 종속론 대두
3세기 중엽에 오리겐(Origen)은 ‘영원한 세대’라는 이론을 내놓았는데, 그것은 아버지만이 최상의 의미에서 하나님이라는 주장이다. 아들도 아버지와 영원히 공존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파생되었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이다. 오리겐이 잘못 생각한 대로, 인간의 모든 영혼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영혼도 선재하였으나, 순결하고 타락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른 모든 영혼들과 달랐다고 믿었다. 로고스 즉 신적인 말씀은 예수의 인간 영혼과 해체할 수 없는 연합을 이루게 되었다. 오리겐은 요 1:1에 나오는 하나님(데오스[theos])과 그 하나님(호 데오스[ho theos])을 구분한 후에, 아들은 근본적이고도 절대적인 의미의 하나님이 아니며, 단지 호 데오스가 아닌 데오스라고 부를 수 있는 제2등급의 신성이 주어짐으로써 “하나님”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피조물과 창조되지 않은 것의 중간이 될 것이다. 오리겐은 아리우스주의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질 수 있다.
(1) 아리우스주의(Arianism)
4세기 초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장로 아리우스는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중간 존재가 있음을 부인하는 것을 제외하고서는 오리겐의 로고스 이론을 받아들였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아들은 어떤 의미로도 신성이 아니며, 비록 만유 중에 최고요 최초의 존재이긴 하지만 엄격히 말해서 피조물이요 “그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고 추론했다. 그는 무시간적 존재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아버지밖에 없는데, 아버지는 무(無)에서 아들을 창조하였으며, 따라서 아들은 아버지의 뜻에 따른 행위로 인해 발생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리우스에게, 그리스도는 인간의 영혼이 없었기 때문에 참 인간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이 없었기 때문에 진정한 하나님도 아니었다. 그리스도는 단지 모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높임을 받은 존재였다. 인간 예수는 그의 위업에 대한 하나님의 예지로 말미암아 선택받아 그리스도가 되었다.
(2) 니케아 종교회의
아리우스 논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AD 325년에 소집된 제1차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정통파의 아버지”로 나서서,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나 있었고 그는 이전의 무존재로부터가 아니라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에서 왔다고 주장하였다. “동일 본질”(same substance)을 뜻하는 호모우시오스(homoousios)라는 용어를 그리스도에게 적용하면서, 그가 아버지와 하나이며 동일한 본질을 가졌다는 신조가 이 회의에서 확인되었다. 호모우시오스는 다른 뜻으로 이해될 수 없었다. 이 회의는 아리우스주의와 사벨리우스주의를 정확한 진리로부터의 두 가지 주요 이탈이라고 단죄하였으며, 삼위일체를 주장한다고 신성의 통일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며 신성의 통일성을 주장한다고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것도 아니라고 천명하였다. 그리하여 니케아 신조는,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난 자 […아버지의 본체, 하나님의 하나님], 빛의 빛, 참 하나님의 참 하나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난 바 된 아버지와 동일 본질(호모우시온[homoousion])이다”라고 선언하였다(Phili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vol. 1, 29에 인용됨). 이 신조는 삼위일체 정통 교리의 결정적인 시금석이 되었다.
(3) 유사본질론
아리우스주의자들은 회의의 결정을 거부하고 분파를 이루어 나갔는데, 수 세기 동안 아리우스주의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장 무서운 적이었음이 입증되었다(참조 단 7:8 주석). 1차 니케아 종교회의 이후에 때때로 반(半)아리우스주의자라고 하는 무리가 교회를 괴롭혔다. 그들이 사용한 주요 단어는 호모이우시오스(homoiousios)였는데, 이 단어로써 그들은 니케아 총회 때 결정한 호모우시오스(homoousios, “동일 본질”)와는 대조적으로, 아들은 아버지와 “유사 본질”을 가진 분이라고 설명하였다.
5.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
니케아 총회 후에 정통 교리 반대자들 가운데 두드러진 사람은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와 마르첼루스(Marcellus)였다. 두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이 통일된 것을 인정했으나, 신적인 것이 예수의 인성을 수동적인 도구로 만든다고 주장하면서 그의 참된 인성을 부인하였다. 이런 여러 가지 문제는 381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또 다른 종교회의를 열도록 했다.이 회의는 니케아의 신조를 재확인하고 그 의미들을 명백하게 설명했으며, 그리스도 안에 두 가지 참된 본성이 존재함을 선언하였다.
5. 네스토리우스주의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 이후에 교회의 관심은 소위 그리스도의 본성과 인격(person) 문제에 관한 기독론적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요소들의 본질을 정의하고,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어떻게 두 개의 본성이 한 인격 안에 함께 존재할 수 있는가?
이 논쟁 국면은 각각 알렉산드리아와 수리아의 안디옥에 있던 서로 상반되는 두 학파로 집중되었다. 두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의 진정한 통일성을 인정했으나,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두 본성의 통일성을 강조하면서 신성의 중요성에 역점을 둔 반면에, 안디옥 학파는 두 본성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인간적인 국면의 중요성에 역점을 두었다. 안디옥 일파들은 신성과 인성이 끊임없는 공존과 협력관계에 들어가긴 했으나 실제적으로 결합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한 인격 안에 있는 두 본성을 분리하고 완전한 결합이 아니라 단지 영구적인 교제가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그리스도와 인간의 아들로서의 그리스도를 예리하게 구분하였으며, 인성을 더욱 뚜렷하게 인식하였다. 그들은 두 본성의 연합이 각자의 의지의 연합을 통하여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인간 본성은 실제적이고 온전했다는 이론을 견지했으나, 인격의 통일성을 위태롭게 했다. 인격의 통일은 불완전하고 불충분하고 확고하지 않고 무의식적인 연합이었으며, 이로써 두 본성은 자의식을 가진 단일 인격의 참된 연합을 이루지 못했다. 이와 달리,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두 본성이 기적적이고도 완벽하게 혼합되었는데, 인성은 신성과 하나로 융합되지만 신성에 종속된다고 보았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이 인성 속으로 들어갔고, 이러한 신성과 인성의 연합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인류를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 두 학파의 충돌은 5세기 초에 있었던 네스토리우스 논쟁에서 절정에 달했다. 안디옥 출신의 네스토리우스는 참 신성과 참 인성을 인정하였으나, 그것들이 자의식을 지닌 단일 인격 속에서 연합된다는 점은 부인하였다. 네스토리우스가 생각하는 그리스도는 실제로는 도덕적 및 공감적인 연합을 누리는 두 인격이지만, 상대 인격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다. 신성은 비하(卑下)되지 않으며, 인성은 승귀(昇貴)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있고 사람도 있지만 신인(神人)은 없다.
안디옥 학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 사이의 논쟁을 진정시키기 위한 제3차 기독교 총회가 431년에 에베소에서 소집되었다. 이 총회는 네스토리우스와 그의 가르침을 단죄하였으나, 니케아 신조를 대체할 새로운 신조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상호간에 골이 깊어지고 이에 따른 논쟁만 격화되어 다른 모든 교리 문제들을 방치하게 되었을 뿐 실제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6. 단성론(Monophysitism)
에베소 총회 후에 단성론 혹은 유튀케스주의(Eutychianism)라고 알려진 또 다른 이론이 일어나 자리를 잡고 그리스도에 관하여 네스토리우스의 주장과 정반대 이론을 발표했다. 이 학설의 주창자인 유튀케스(Eutyches)는, 성육할 때 예수의 본래의 인성이 신성으로 변했으며, 그 결과 인간 예수와 신성을 지닌 그리스도가 한 인격, 한 본성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의식의 통일을 주장했는데, 두 본성이 완전히 융합되어 사실상 각자의 정체성을 상실하였다고 했다.
7. 칼케돈 종교회의
네스토리우스주의와 단성론에 대하여 토론하기 위해 451년에 열린 칼케돈 종교회의는 그 두 이론에 모두 반대하는 결정을 내렸다. 네스토리우스와 유튀케스는 총회의 결정을 거부하고, 아리우스가 약 1세기 전에 그랬듯이 독립된 기독교 분파를 창설하였다. 칼케돈 회의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확인하고, 그의 신성은 아버지와 같은 본질이요, 인성은 죄를 제외하고는 우리와 동일한 본질이라고 선언하였다. 각 본성의 정체성이 보존되었으며, 따라서 그 둘은 구분이 되며 섞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분리할 수 없다고 천명했다. 그리스도의 인격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인성이 아니라 신성임이 인정되었다. 한 인격 안에 두 본성이 연합되었기 때문에 신인(神人)의 고통은 진정 무한했으며, 그리스도는 신성이 아니라 인성으로 고통당했으나 그 인격이 무한한 존재였으므로 수난도 무한하였다. 후일에 칼케돈 신조로 알려진 문서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교부들을 따라서 모두가 한 마음으로 동일하신 한 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곧 신성이 동일하게 완전하고 인성 또한 완전하신 분을 시인하도록 사람들에게 가르치노니, 그분은 이성을 갖춘 영혼과 몸을 지닌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며, 신성을 따라서는 아버지와 동일 본질(consubstantial)이요 인성도 우리와 동일 본질이신 분이다. 또한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되 죄는 없으시고, 신성을 따라서는 만세 전에 아버지께로부터 났고, 인성을 따라서는 근일에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어머니(Mother of God)이신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으며, 아들이요 주님이요 독생자요 동일하신 한 분 그리스도는 두 본성을 가졌으나 혼동되지 아니하고 바뀌지 아니하고 분리되지 아니하는 분으로, 이 본성들은 연합에 의하여 개별성이 사라지지 않고 도리어 각 본성의 특질이 보존되며 한 개체요 한 실체 안에서 협력한다”(Phili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vol. 2, 62).
칼케돈 종교회의는 동방 교회의 분열을 영구화하고 격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마침내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 황제는 제국이 안전하려면 이 문제가 해결돼야 할 것이라 확신하고 논쟁의 두 중심지인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의 학파를 영원히 폐쇄하였다. 553년에 열린 제2차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에서 교회는 단성론을 탄압하기로 결정하였고, 그것은 분리를 영구화하여 오늘날까지 야곱파(Jacobites), 콥트 교도, 아비시니아파 등이 남아 있다. 칼케돈 신조를 재확인함으로써 교회는 정통과 이단의 확실한 구분을 이룩하였다.
8. 단의론(Monotheletism)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인성과 신성의 두 본성은 두 가지 본성을 주관하는 한 의지에 의하여 행동하는가 아니면 두 의지에 의하여 움직이는가? 단의론자들은 신성의 의지가 우세하여 인성의 의지는 그 속에 잠기게 된다고 여겼다. 680년에 열린 제3차 콘스탄티노플 총회에서, 의지는 한 인격에 관한 문제라기보다는 두 본성에 관한 문제라고 교회는 결정하였고, 의지를 가진 한 인격 속에 두 의지가 있다는 편을 옹호하였다. 이 결정으로, 서방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본성과 인격에 관한 정통적 정의가 완결되었으며, 오래 끌어왔던 삼위일체와 기독론에 관한 논쟁들이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730년경에 다메섹 사람 요한은 동방 교회 내에서 이 교리들을 다시 집약하였다. 동방과 서방 교회에서 종교회의의 결정들은 교의(敎義)가 되었다.
9. 종교개혁 시대
종교개혁은 로마 교회와 개신교 분파들 모두에게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문제에 근본적인 일치가 있음을 보았다. 니케아 신조와 칼케돈 신조는 양측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것임이 입증되었다. 루터는, 두 본성의 속성들이 상호 교류될 수 있고 따라서 각각의 속성들이 서로를 공유한다고 가르쳤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적인 모든 요소는 신적인 본성이 점유하였으며,인성은 신성에 속한 것들을 받았다. 개혁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성과 인성의 협력을 강조하였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두 소수 집단은 니케아 총회의 결정과 다른 입장을 취했다. 그중 하나는 소지니파(Socinianism)인데, 그들은 신성의 삼위일체를 터무니없는 생각으로 보는 단일신론 주창자들의 기본 사상을 되살렸다. 현대의 유니테리안파(Unitarianism)가 이런 개념을 고수하고 있다. 둘째 집단은 아르미니우스파로서 그들은 아들이 아버지보다는 하위라고 주장하는, 어떤 면에서 이전 시대의 어떤 집단들과 유사한 견해를 취했다. 이 견해는 마찬가지로 오늘날 다양한 기독교 종파들에 반영되었다.
III. 재림교의 그리스도론 개요
재림교회 성경 주석의 필자들과 편집자들은, 성경에는 유한한 이해력의 한계를 초월하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로는 명백하게 표현할 수 없는 위대한 신비들이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이 그러한 신비들 중 하나이다. 이러한 종류의 신학적인 문제들을 다룰 때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도들은 그들의 말로 성경의 가르침을 흐리지 않기 위해 사변이나 세밀한 철학적 설명을 삼가고자 노력해 왔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신 29:29).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주신 그분 자신에 관한 계시는 우리의 연구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은 우리가 간파할 수 없다. 가장 높은 지성이 지칠 때까지 하나님의 본성에 관하여 추측할지라도 스스로 혹사만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은 허사가 될 것이다. 이 문제는 우리에게 해결하도록 맡겨지지 않았다. 어떤 인간의 정신도 하나님을 이해할 수는 없다. 유한한 사람은 그분을 설명하기 위하여 시도하지 않아야 한다. 어떤 사람도 그분의 본성에 관해서 추상적인 생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 여기에는 침묵이 웅변이다. 전지 하신 분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시다.”(8증언, 279)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욥 11:7-9).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의 곳은 어디인고
그 값을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사람 사는 땅에서 찾을 수 없구나
깊은 물이 이르기를 내 속에 있지 아니하다 하며
바다가 이르기를 나와 함께 있지 아니하다 하느니라
정금으로도 바꿀 수 없고
은을 달아도 그 값을 당치 못하리니
오빌의 금이나
귀한 수마노나 남보석으로도 그 값을 당치 못하겠고
황금이나 유리라도 비교할 수 없고
정금 장식으로도 바꿀 수 없으며
산호나 수정으로도 말할 수 없나니
지혜의 값은 홍보석보다 귀하구나
구스의 황옥으로도 비교할 수 없고
순금으로도 그 값을 측량하지 못하리니
그런즉 지혜는 어디서 오며
명철의 곳은 어디인고…
멸망과 사망도 이르기를
우리가 귀로 그 소문은 들었다 하느니라
하나님이 그 길을 깨달으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
이는 그가 땅 끝까지 감찰하시며
온 천하를 두루 보시며…
비를 위하여 명령하시고
우레의 번개를 위하여 길을 정하셨음이라
그 때에 지혜를 보시고 선포하시며
굳게 세우시며 궁구하셨고
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하셨느니라” (욥 28:12-28).
하나님의 존재의 신비를 통찰하기 위하여 땅의 깊은 곳을 살핌으로써도, 헛되게 노력함으로써도 지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분께서 주고자 하시는 계시를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생애를 그분의 뜻에 일치시킴으로 그것은 발견된다.”(8증언, 279-280)
영감받은 성경 기자들이 신적인 신비들에 관하여 세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영감받지 못한 필자들이 그런 시도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영감은, 구원의 계획에 관한 신비를 우리가 일부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했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는 다음의 내용들을 믿는다.
1. 신격(Godhead)
신격 즉 삼위일체는 세 분의 개체로 구성되는 바, 영원한 아버지, 영원한 아버지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이다(참조 요 1:1-3, 14 주석; 마 28:19; 요 1:1, 2; 6:27; 14:16, 17, 26; 행 5:3, 4;엡 4:4-6; 히 1:1-3, 8).
“하늘에는 살아 계신 아버지와 아들, 성령이라는 세 인격으로 구성된 삼인조(三人組)가 있다”(복음전도, 615). 그리스도와 아버지는 “본성과 품성과 목적이 하나”(부조와 선지자, 34)이지만, “인격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교회증언, Ⅷ, 269; 참조 교회증언, Ⅸ, 68). 성령은 “하나님이 한 인격인 것처럼 한 인격이다”(복음전도, 616).
참조 롬 1:20-25 주석.
2. 그리스도의 신성과 선재
그리스도는 최고의 절대적인 의미-본성과 지혜와 권위와 능력-에서 하나님이다(참조 미 5:2; 마 1:1, 23; 눅 1:35; 요 1:1-3; 16:28; 빌 2:6-8; 골 2:9 주석; 사 9:6; 미 5:2; 요 1:1-3; 8:58; 14:8-11; 골1:15-17; 2:9; 히 1:8).
“그리스도는 선재하고,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분이 영원한 하나님과 친교 하지 않았던 때는 한번도 없었다. 그분은 하나님과 동등하며 무한하시고 전능하시다”(복음전도, 615; 참조 시대의 소망, 469, 470; 복음전도, 614; 부조와 선지자, 38, 63).
“그리스도는 본질적으로 또한 최고의 의미에서 하나님이셨다. 그분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유의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복된 분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부터 계셨으며, 아버지와 하나이나 구별되는 인격이다”(EGW RH 1906년 4월 5일; 참조 시대의 소망, 19).
참조 요 1:1-3, 14; 골 2:9; 3:10 주석.
3. 그리스도의 인성
주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온전한 인간이었으며, “죄를 알지도 못하신” 것 외에는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았다(고후 5:21; 참조 마 1:23; 요 1:14; 빌 2:6-8 주석; 눅 24:39; 요 1:14; 롬 1:3, 4; 5:15; 갈 4:4; 빌 2:7; 딤전 2:5; 히 2:14, 17; 요일 1:1; 4:2; 요이 7장).
“그리스도는 실재하는 인간이셨고”(EGW YI 1898년 10월 13일), “완전한 인성을 지니신 분”(EGW ST 1897년 6월 17일), “우리의 본성을 함께 나눈 자”(EGW RH 1890년 2월 18일)였다. “그분은 우리가 지닌 인성을 가진 무력한 아기로서 오셨고”(MS 21, 1895), “인간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분은 죽을 존재였다”(EGW RH 1900년 9월 4일). “그분은 자기 제자들과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셨고, 그리하여 우리의 필요와 연약함과 결점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셨다”(교회증언, Ⅱ, 508; 참조 치료봉사, 422).
참조 요 1:1-3, 14; 골 1:26, 27; 히 2:14-18 주석.
4. 그리스도의 성육신
성육신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참으로 온전하게 불가분으로 연합한 것이지만 각 본성은 손상되지 않고 상호 구별될 수 있도록 보존되었다(참조 마 1:18; 요 1:14; 16:28; 빌 2:6-8 주석; 마 1:20; 눅 1:35; 요 1:14; 빌 2:5-8; 딤전 3:16; 요일 4:2, 3).
“그리스도는 실재하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분은 육신을 입은 하나님이었다”(EGW YI 1898년 10월 13일). “그분의 신성은 인성으로 가려졌으며, 볼 수 없는 영광은 보이는 인간의 형체 속에 가려졌다“(시대의 소망, 23). ”그분은 이중의 본성, 곧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지니셨다. 그분은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이다”(MS 76, 1903).
"마리아의 아들의 인간적인 본성이 하나님의 아들의 신적인 본성으로 바뀌었는가? 아니다. 두 본성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 안에서 신비스럽게 조화되었다“(EGW letter 280, 1904). ”인성이 신성을 대신하지도 않았고, 신성이 인성을 대신하지도 않았다“(EGW ST 1899년 5월 10일). ”신성이 인성으로 강등되지 않고, 신성은 제 위치를 유지했다(EGW RH 1890년 2월 18일).
“그분은 신성과 연합된 완전한 인성을 드러냈으나, 각각의 본성은 별개로 보존되었다”(EGW GCB 1899년 4기, 102).
“그리스도의 인성은 그분의 신성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었다”(MS 106, 1897).
참조 요 1:1-3, 14; 엡 3:8; 빌 2:6-8; 골 2:9 주석.
5. 그리스도의 종속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 때 자원하여 인간 본성의 한계를 취함으로써 지상 봉사 기간 동안 자신을 아버지께 종속시켰다(참조 눅 1:35; 2:49; 요 3:16; 4:34; 빌 2:7, 8 주석; 시 40:8; 마 26:39;요 3:16; 4:34; 5:19, 30; 12:49; 14:10; 17:4, 8; 고후 8:9; 빌 2:7, 8; 히 2:9).
하나님의 아들은 “자기의 왕복과 왕관을 내려놓고”(교회증언, Ⅸ, 68), “아버지의 손에 홀을 돌려드리고 우주의 보좌에서 내려오기로 선택했다”(시대의 소망, 22, 23). “그분은 자원하여 인간 본성을 취했다. 그것은 그분 자신의 행위였으며, 그분 자신의 동의에 의한 것이었다”(EGW RH 1900년 9월 4일). “예수는 자신을 비하(卑下)하여 인간 본성을 취했다”(EGW ST 1890년 1월 20일; 참조 교회증언, Ⅴ, 702). “그분은 자신을 비하하여 죽을 운명을 취했다”(EGW RH 1900년 9월 4일).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의 뜻에 순복하였으며, 그분의 능력에 의존하였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온전히 비웠기 때문에 자신을 위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그분은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수용했으며, 아버지는 매일 당신의 계획을 펼쳐 보이셨다”(시대의 소망, 208; 664). “인간의 본성을 지닌 동안 그분은 자기의 생애를 위하여 전능하신 분께 의존하였다. 그분의 인성 가운데서 그분은 하나님의 신성을 굳게 잡았다”(EGW ST 1897년 6월 17일).
참조 눅 1:35 주석
6. 그리스도의 죄 없는 완전(sinless perfection)
예수는 시험을 받을 수 있었고,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전혀 “죄는 없으”신 분이었다(참조 마 4:1-11; 26:38, 41; 눅 2:40, 52; 히 2:17; 4:15 주석; 마 4:1-11; 롬 8:3, 4; 고후5:21; 히 2:10; 4:15; 벧전 2:21, 22; 요일 3:5).
우리 구주는, ”시험과 시련에 처할 수밖에 없는 인간 본성의 연약함을 취하셨다”(EGW ST 1905년 8월 2일. 참조 시대의 소망, 49, 117, 131). ”아담의 모든 후손들처럼 그분은 유전법칙의 작용과 결과를 수용하였다“(시대의 소망, 49).
"그분은 죄를 지을 수도 있었다. …그분의 마음속에는 한 순간이라도 악한 성향이 있지 않았다“(EGW letter 8, 1895). 그분은 “인간의 본성은 취하였으나, 인간의 죗됨(sinfulness)은 취하지 않았다”(EGW letter 1901년 5월 29일). “그분은 에덴동산에서 사단이 승리를 얻었던 바로 그 본성으로 사단을 이겼다”(EGW YI 1901. 4. 25).
“예수는 사람들이 그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얻을 수 없는 특성들을 나타내거나, 능력들을 행사하지 않았다. 그분의 완전한 인성은 그분을 따르는 모든 자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시대의 소망, 664; 참조 24).
“그분은 인간적 본성 안에서 자신의 거룩한 품성의 순결성을 유지하였다”(ML 323). “죄의 어떤 흔적도 그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시키지 않았다”(시대의 소망, 71; 참조 123).
참조 마 4:1-11; 눅 2:40, 52; 골 2:9, 10; 히 2:14-18; 4:15 주석.
7. 그리스도의 대리적 죽음(vicarious death)
그리스도의 희생은 세상의 죄를 위한 온전하고 충분한 속죄를 제공했다(참조 사 53:4; 마 16:13 주석; 사 53:4-6; 요 3:14-17; 고전 15:3; 히 9:14; 벧전 3:18; 4:1; 요일 2:2).
“그분은 우리의 몫이 아닌 그분의 의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다 여기기 위해 자기 몫이 아닌 우리의 죄를 위해 정죄를 당했다. 또한 그분은 당신에게 속한 생명을 우리가 얻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 속한 죽음을 당했다”(시대의 소망, 25).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리스도는 인류를 대신하여 고통을 당했으며, 하나님의 아들의 인성은 죄(guilt of sin)의 무서운 공포 아래서 비틀거렸다”(EGW MS 35, 1895). “하늘로부터 보냄을 받은 천사가 그 고뇌를 견디도록 그분에게 힘을 북돋아 주지 않았더라면, 죄악감의 공포 아래 인간 본성은 그때 그곳에서 죽고 말았을 것이다”(EGW MS 35, 1895).
“인간을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은 충분하고도 온전한 것이었다. 속죄의 조건은 이행되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이루고자 했던 일은 완수되었다”(사도행적, 29; 참조 교회증언, Ⅴ, 575).
참조 마 26:36-46; 27:50; 골 2:9; 딤전 2:5 주석.
8.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스도는 그분의 신성 속에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을 권세뿐만 아니라, 그분의 아버지가 무덤에서 올라오라고 부르셨을 때에 다시 생명을 취할 권세도 있었다“(참조 요10:18; 행 13:32, 33; 롬 1:3, 4; 고전 15:3-22; 히 13:20; 벧전 1:3; 마 28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당신의 아버지께서 당신을 부르십니다’고 말하는 천사의 강한 음성이 그리스도의 무덤 앞에서 들렸을 때에, 구세주는 자신 속에 있던 생명으로 말미암아 무덤에서 나왔다. 그분의 신성 속에 그리스도는 죽음의 사슬을 끊어버릴 능력이 있었다”(시대의 소망, 785; 참조 780).
참조 막 16:16 주석.
9. 그리스도의 승천
우리의 구주는 영광스런 몸으로 승천하여, 그곳에서 우리를 위하여 봉사한다(참조 행 1:9-11 주석; 막 16:19; 눅 24:39; 요 14:1-3; 16:28; 20:17; 행 1:9-11; 롬 8:34; 딤전 3:16; 히 7:25; 8:1, 2; 9:24; 요일 2:1, 2).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주셔서 인간 가족의 일원이 되게 하시고, 영원토록 그분의 인간 본성을 간직하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아들의 개체 속에 인간 본성을 받아들이셨으며, 그것을 가장 높은 하늘까지 가지고 가셨다”(시대의 소망, 25).
“모든 사람은 하늘 성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속죄 사업에 대하여 더 잘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다”(교회증언, Ⅴ, 575).
참조 행 1:9-11; 히 2:14-18 주석.
10. 그리스도의 승귀(昇貴)
그리스도는 하늘로 돌아가 성육신 이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위치를 되찾았다(참조 빌 2:9 주석; 마 28:18; 요 12:23; 17:5; 엡 1:19-22; 빌 2:8, 9; 골 1:18; 딤전 2:5; 히 1:3; 2:9; 벧전 1:11).
“그리스도께서 하늘 문들을 통과하셨을 때, 그분은 천사들의 찬미 속에 보좌에 올랐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가지셨던 당신의 영광으로써 진정한 영광을 받으셨다. 그분은 제사장이요 왕으로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다”(사도행적, 38, 39; 참조 교회증언, Ⅷ, 268, 269).
이런 것들과 구속의 경륜과 관련된 기타 수많은 위대한 신비들이 구속받은 자들의 영원한 연구 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