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미술, 바둑, 수학, 과학 등 모든 분야에는 천재가 존재합니다. 모짜르트는 다섯 살 때 작곡했고, 이창호 국수는 어릴 때부터 천재 기사였습니다. 과학 분야에는 세계적으로 십대, 이십대 박사가 수두룩합니다. 그러나 이제껏 나이 어린 천재를 배출한 적이 없는, 아니 앞으로도 절대 배출할 수 없는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문학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천재적인 십대 시인이나 십대 소설가는 없습니다.
도스트에프스키가 20대 중반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그의 대표작인 '죄와 벌' '백치' '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등은 모두 40대 이후의 작품입니다.
문학에 십대 천재가 있을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문학이란 인간과 인간의 삶을 다루는 영역이기에, 삶의 경험과 경륜 없이는 문학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머리가 뛰어난 십대가 삶의 경험이 없이 시와 소설을 쓸 수는 있지만 그것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문학 작품이 될 수 없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목회도 삶의 경험이 결여된 천재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목회 역시 그 대상인 인간과 인간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3-4)
삶의 경륜이 없이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말씀을 통달했던 열두 살 때부터 목회를 시작했더라면, 인간 심령 밑바닥으로부터 솟아나는 이런 말은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설령 이와 비슷한 말을 할 수 있었다 해도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삶의 경륜을 지니지 못한 자의 말은 그것을 지닌 자의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인생의 경륜이 정대적으로 필요했다면, 하물며 우리야 두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상담가는 자신이 겪어 보지 않은 아픔을 공감하기가 어렵고 교사도 자신의 삶의 깊이에서 나오는 교훈이 아니라면 학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매일의 경건한 삶에서 나오는 신앙의 능력, 매주 공과를 실천함에서 나오는 진지한 공부가 필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