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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러고도 찬양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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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이라는 것은, 예수 믿고 혼자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같이 나누면서 신앙생활을 하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통해 우리 가정에, 직장에 일터에 오기 때문입니다.

‘혼자 예수 믿고 혼자 신앙 지키겠다.’ 하시는 분을 종종 만나는데, 그 이유를 물어보면 대게 교회에서 상처 받고 다시는 교회에 안가고 나 혼자 믿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지체를 통해 온전히 연합하여 온 몸을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온 머리로 하여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해 도움을 입고, 연락하고, 상합하여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인 교회를 자라게 하고 세워 간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몸의 구조로 성명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한 TV에서 인간의 몸을 따로 따로 잘라서 보관해 둔 자료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생명입니다. 생명이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지, 생명이 없다면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팔은 몸에 붙어 있을 때 가치가 있는 것 입니다. 이것은 돈으로 평가될 수 없는 값어치를 가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팔이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나 혼자 살겠다고 하면, 이미 팔은 아무 쓸데없게 되는 것입니다. 썩어 없어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없이 신앙생활 하겠다고 하면 떨어진 팔과 같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주님을 떠난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란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 같습니다.
이지선 자매에 관한 얘기입니다.
이지선 자매는 2000년 7월 30일 밤 11시 30분. 한강로 1가에서 한 음주운전자가 모는 자동차가 6중 추돌의 대형 교통사고를 냈고, 사고의 최대 피해자는 당시 23살의 이화 여대생이던 이지선자매입니다.
전신 55%의 화상, 4-5년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의사들마저도 포기한 중환자 중의 환자로 분류되어 있는 자매입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났지만 무릎 위로 온몸에 화상을 입어 얼굴의 형체를 알아 볼 수 없고, 양손의 손가락까지 절단해야만 했던 자매인데....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 2003년도부터는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밝은 모습으로 ‘자신의 간증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얼굴과 온몸 전체에 화상을 입은 화상 환자들의 경우 대개 자살을 생각하며, 은둔해 있지만, 이지선 자매를 거리를 당당히 걸어 다니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현재 Boston University 재활상담 석사과정에 합격해 유학생이 된 이지선은 그의 글에 이렇게 말합니다.

5년 전 사고 나고... 온몸을 붕대로 감고 진물을 흘리면서도...
고통가운데서도 유학의 꿈을 꾸게 하셨던 하나님..
유학 오게 만드시고..

이전의 나도 가지 않았을... 못 왔을 '미국대학원'에 원서도 넣게 하시고
이렇게 합격소식도 듣게 해주셨습니다.
보세요. 저는 꿈꾸고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이지선 자매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는 하루 5천명이상, 연100만 명 이상이 글을 보고 남기고 간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자신이 쓴 책 ‘지선아 사랑해’란 글의 내용에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저는 짧아진 여덟 개의 손가락을 쓰면서
사람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1인 10역을 해내는 엄지손가락으로 생활하고 글을 쓰면서는
엄지손가락을 온전히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눈썹이 없어 무엇이든 여과 없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며
사람에게 이 작은 눈썹마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알았고
막대기 같아져 버린 오른팔을 쓰면서
왜 하나님이 관절이 모두 구부러지도록 만드셨는지,
손이 귀까지 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온전치 못한 오른쪽 귓바퀴 덕분에 귓바퀴라는 게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나님이 정교하게 만들어주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잠시지만 다리에서 피부를 많이 떼어내 절뚝절뚝 걸으면서는
다리가 불편한 이들에게 걷는다는 일 자체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건강한 피부가 얼마나 많은 기능을 하는지,
껍데기일 뿐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피부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남겨주신 피부들이 건강하게 움직이는 것에 감사했으며
하나님이 우리의 몸을
얼마나 정교하고 세심한 계획아래 만드셨는지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감히 내 작은 고통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백만분의 일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고,
너무나 비천한 사람으로, 때로는 죄인으로,
얼굴도 이름도 없는 초라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그 기분 또한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지난 고통마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 고통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남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할 가슴이 없었을 테니까요.

그 누구도, 그 어떤 삶에도 죽는 게 낫다는 판단은 옳지 않습니다.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장애인들의 인생을 뿌리째 흔들어놓는
그런 생각은, 그런 말은, 옳지 않습니다.
분명히 틀렸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추운 겨울날 아무런 희망 없이 길 위에 고꾸라져 잠을 청하는 노숙자도,
평생을 코와 입이 아닌
목에 인공적으로 뚫어놓은 구멍으로 숨을 쉬어야 하는 사람도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 자라나는 이름 모를 들풀도,
하나님이 생명을 허락하신 이상
그의 생명은 충분히 귀중하고 존중받아야 할 삶입니다.


"저러고도 살 수 있을까...?"

네...이러고도 삽니다.
몸은 이렇지만 누구보다 건강한 마음임을 자부하며,
이런 몸이라도 전혀 부끄러운 마음을 품지 않게 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런 몸이라도 사랑하고 써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감사드리며...
저는 이렇게 삽니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얼마나 우리는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까?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행복하게 사십시오.
[이 게시물은 Wise man님에 의해 2012-12-18 00:05:41 게시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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