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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다 보면 동풍이 부는 때도 있고, 남풍이 부는 때도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동풍을 ‘헛된 것, 쓸모없는 것.’으로 묘사되어있습니다. 즉,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으며, 괴로울 때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문제는 동풍이 불어 슬프고, 괴로울 때를 붙잡고 살아간다는데 있습니다. 남풍과 같이 기쁨과 행복한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너무도 쉽게 날려버릴 때가 많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싸우면서 살 때 보다, 서로 기뻐하며 살 때가 더 많은 법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좋은 상태 보다, 마음의 상처로 찢어진 곳만 파헤치면서 그것만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마음의 병이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잠언17:22)말씀을 보니 “마음이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합니다. 마음이 즐거움이 얼굴을 빛나게 하지만, 마음의 근심은 내 심령을 상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근심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내 몸만 축내고, 살아감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리게 만들뿐입니다. 행복에 관해 논문의 써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해도, 그 사람이 반드시 행복한 사람이라 라고 할 수 없습니다. 생명에 대해 논문을 써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퓰리처상을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생명으로 충만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에 관해서 아는 것 보다, 그것을 누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행복과 생명은 이론이 아닙니다. 실제적인 선택이며 실천인 것입니다. 바로 그 행복과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은 한 가지 공통적인 증세가 있는데, 감사와 기쁨에 예민하게 반응하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신약성경에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야고보서2:18) 이 얼마나 멋있는 말입니까? 제가 간혹 찬양을 하다가 이런 멘트를 합니다. “지금 내가 즐거울 것이냐, 아니면 불쾌할 것이냐 이것은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아무도 나의 심령의 상태를 주장하지 못한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의 마음은 결정되기 때문이다. 찬양을 하기 싫으면 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이 괴롭고 부르고 싶지 않은 상태이지만, 찬양을 부를 수도 있는 것이다. 찬양은 부르고 안 부르고는 전적인 내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에 의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것인가 아닌 가를 판가름 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선택을 잘 해야 합니다. 이왕이면, 내 마음의 동풍을 제거해 버리고, 남풍이 불게 하십시오. 이왕이면, 내 마음의 근심을 제거해 버리고, 기쁨이 불게 하십시오. 그 기쁨이 습관이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불행은 나쁜 습관에 불과 합니다. 반대로 행복은 좋은 습관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내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찬 생활을 선택한다면, 생활이 충만해 질 것입니다. 찬양을 선택하는 것, 행함입니다. 찬양을 얼마나 뜨겁게 드릴 수 있느냐? 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야고보서2:18)있는 말씀으로 너무도 소중한 말씀입니다. 오늘도 최선의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
칼럼
동풍과 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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