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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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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 3:24) 

타락하지 않은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는 에덴동산의 환경을 전혀 알 수 없다.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강물이 흘렀다는 것,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 좋은 과일나무와 생명나무와 그리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는데 안개가 땅으로부터 올라왔다는 정도이다.

어쨌든 아름답지 못하고 좋지 못한 것들이 죄 때문이라면, 죄가 없었던 그곳은 아름답고 좋은 곳이라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 얼마나 아름답고 어떻게 좋았는지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그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추방될 때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아쉬움에 자꾸 뒤돌아보았을까? 에덴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워서 나무를 붙들고 안 나가겠다고 버티었을까? 어쩌면 엉엉 눈물을 흘리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을 수 있겠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눈물관을 만드셨지만, 본래 눈물은 안구를 부드럽게 하는 윤활제 기능을 하기 위해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타락으로 눈물이 본래의 용도 외로 사용되기도 한다. 사람이 운다는 것은 비가 내리는 것보다 세상에서 더 오래되고 근원적인 삶의 부분이다. 아담이 눈물을 흘릴 때 아직 세상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눈물과 빗물은 많은 공통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공기 중 압력의 변화와 관련하여 구름이 과포화 상태가 될 때 비가 내린다. 눈물은 우리가 고통이나 기쁨으로 과포화 상태가 될 때 흐른다. 빗물이 땅을 적시고 기름지게 하는 것처럼, 눈물이 흐르면 내면에 쌓였던 압박감에서 해방된다. 마음의 상처가 눈물로 치유되기도 한다.

대부분 사람은 눈물을 감추려 한다. 압박감이 마음속에 쌓이는 것을 느낄 때도 그것을 감추려 한다. 눈물을 통제하면 고통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특히 타인의 고통이 있을 때 눈물을 보이셨다.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다. 마리아의 눈물과 혼란을 보면서 긍휼의 눈물을 흘리셨다.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그 멸망이 임박했음을 아시고 눈물을 흘리셨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살아 있다는 것을 울음소리로 알린다. 영적으로 살아 있다는 것도 그가 흘리는 눈물로 증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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