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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가수 ‘비버리 실즈’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첫 아이를 낳았는데 ‘선천성 귀머거리’였습니다. 그녀는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깁니까? 하며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둘째를 낳았는데 ‘선천성 박약아’랍니다. 그 후로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녀의 아픔이 자신에게서 아이들에게 옮겨가 어렵게 얻은 명성을 포기하고 신체장애자, 정신장애자들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노년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 인생은 참 많이 아팠지만, 보람이 있는 삶이었고 나를 필요로 했다.” 내가 만약 정상적인 아이들을 나았다면, 신체장애자들의 아픔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고통을 준 것은 이 고통으로 인해 이웃의 아픔을 알고 그들을 도와주라고 내게 준 사명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혼자 설 수 있는 동물이 아닙니다. 한문의 ‘인’자도 작대기 두개가 서로 의지해야 인간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노래는 가난한 이들의 아픔을 아시고 희망의 소리로 만들어 지는 노래입니다. 지친 영혼의 갈급함을 채우시는 영혼의 노래인 것입니다.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끼고 다가가 위로해 주는 영혼의 노래인 것입니다. 상대의 아픔을 내가 체험해야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주님의 고통당하심을 천만분의 일이라도 느낄 때 영적으로 살아나는 체험의 노래인 것입니다. 여러분, ‘궁따리 사바라’란 노래로 유명한 클론이란 듀엣 가수를 아시지요,. 한명은 머리를 밀어서 빛내리 인 구준엽이고, 또 한 명은 참 못생긴 강원래란 사람입니다. 그런데 강원래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나 전신마비 장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포기하지 않고, 꾸준한 재활을 통해 비록 휠체어에 의존하지만 다시 가수로 나와 휠체어를 밀고 다니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인생자체가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주위에 눈을 돌리게 되면, 가장 가까운 곳에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찬양은 이보다 더한 죽음에서 구원으로 이끄는 소망의 다리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 유명한 카라얀이 조수미는 신이 주신 목소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조수미가 친구들 하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렀는데 70점 나왔답니다. 어땠을까요? 기분이 나빠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었을까요? 아니면 신경질을 내면서 뭐 이런 게 있냐며 박차고 나왔을까요? 아닙니다. 함께 한 사람들이 재밌다 며 깔깔거리며 함께 웃었다는 겁니다. 노래방 점수로 울고 웃고 할 위치가 아니란 걸 알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가 그런 사람들입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의 찬양은 소망이며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찬양은 세상에 점수가 매겨져 있지 않지만 대신에 하늘에 상급이 쌓여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찬양에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집중된 찬양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능력이 되며 공중권세 잡은 자를 제어할 강력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강력한 하나님의 힘을 통해 내 자신의 한계를 이겨 낼 수 있는 능력이며 하나님을 체험하는 실제적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찬양은 내 삶을 직접적으로 터치하실 뿐 아니라 소외된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거나 죽어가는 영혼에 대한 선교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며 세상을 뒤집는 역사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입니다. |
칼럼
오늘도 주님안에서 좋은 하루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