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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싸움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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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도 이기는 방법이 있듯이, 신앙의 영적전쟁에서도 승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마치 불은 물로 꺼야하는 것처럼, 불로 끄는 미련한 사람이 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세상적 방법, 육체적 방법으로 살아간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의식에서 떠나서는 안 됩니다.
모든 생각, 모든 이론, 모든 언행을 그리스도의 말씀에 복종케 한다면, 이것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태국이 한국보다 400년 먼저 기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태국이 지금은 불교국가가 되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태국으로 들어간 처음 선교사들이 타협을 했기 때문입니다. 불교가 강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면서 ‘절에도 가고, 교회에도 와라, 아침에는 교회에 오고, 저녁에는 절에 가라.’이렇게 전도했다고 합니다.
결국 영적싸움에서 태국은 실패한 것입니다.

반면 우리 민족은 어떻습니까?
완전히 일사각오입니다. 순교의 정신, 우상을 불태우고 제사를 안지내고 영적싸움에서 타협을 안했습니다. 죽이면 주를 위해서 죽겠다는 각오가 있기 때문에 그 결과로 한국교회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찬양 생활에도 영적인 흐름이 있습니다.
찬양 자체가 하나님의 기쁨인데, 세상의 흐름은 이것을 차단시키려고 갖은 모든 것을 동원하여 비슷하게 만들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찬양은 궁극적으로 구원의 노래요, 하나님께 드리는 산제사와 같은 희생의 노래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예수의 구원의 빠져있고, 하나님이 빠져 있고 희생이 사라지고 대신 노래의 곡조와 편한 멜로디와 감각적인 가사들로 채워져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노래라고 하더라도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좋은 노래라고 할 수 없듯이, 아무리 좋은 찬양이라고 해도 하나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찬양은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양은 영적인 싸움의 노래인 것입니다.

찬양의 방법은 다를 수 있습니다. 시대마다 문화권마다 그리고 음성이나 연주법에 의해 다양한 세태의 변화로 인해 다양하게 변할 수 있습니다.
그 달라짐 속에 변하지 않는 중심은 말씀이어야 합니다.
찬양 자체가 모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어야 하고 영적인 말씀이 바탕이 되어있지 않으면 쓸모없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9학년 된 학생이 고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예수님도 열심히 믿고 있는데 말씀 듣는 것 보다 찬양을 더 좋아해서 찬양집회에 더 많이 다니고 찬양에 관련된 것만 즐겨한다고, 이것이 잘못된 것이냐를 물어 온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을 이렇게 얘길 했습니다.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건강한 모습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삶의 중심은 ‘말씀’이 빠지면 ‘치아가 없이 평생을 먹는 사람과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말씀을 통해 기도로 나아가는 것이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는 것이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것이고, 말씀을 통해야만 모든 영적인 일들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삶의 기초는 말씀에서 나온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런 말씀의 기초가 없다면, 기도는 기복으로, 찬양은 감정만 남고, 하나님과의 교제는 일방적이며, 기적과 이적에만 눈을 뜨게 되며 신앙 자체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얘깁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찬양의 생활이 하나님의 은혜를 더 강하게 느낄 수 있게 하며, 찬양을 통해 더 영감 있게 하나님을 높여야 영적승리를 이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게시물은 Wise man님에 의해 2012-12-18 00:05:27 게시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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